경찰국이 3년 만에 폐지된다. 존재감은 없지만, 2022년 윤석열 정부가 행정안전부 산하에 만들었다가 경찰 장악 논란을 부른 조직이다. 신설 당시 명분은 ‘경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였다. 민정수석실을 없애면서 경찰을 컨트롤할 마땅한 장치가 사라지자 시행령으로 급하게 만들었다. 과거 내무부 산하 치안본부가 떠올라 어안이 벙벙하다는 사람이 많았다.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으로 권한이 강해진 경찰에 검사 출신 대통령이 조바심을 낸 결과였다. 법적·민주적 정당성이 없는데도 윤 전 대통령은 민주적 통제라고 했다.
시급한 개혁이라 떠들어대지만
국민 아닌 진영 이익에 매몰돼
사기극 오명 벗을 진정성 있나
근본 없는 조직은 금방 한계를 드러냈다. 초대 경찰국장이 ‘밀정 의혹’에 휩싸였다. 과거 노동운동을 하다가 동료를 밀고한 대가로 경찰이 됐다는 의혹이다. 과잉 충성이 우려되는 경찰국장이 대통령의 고교 후배인 복심(이상민 행안부 장관)에게 보고하는 라인이 만들어졌다. 인적 통제가 분명한데 민주적 통제라 우겼으니 사기성이 농후했다.
국가 권력이 국민과 그 대표기관의 견제를 받는 민주적 통제는 민주주의의 당연한 원리다. 제대로 구현되면 더 바랄 게 없겠지만, 경찰국처럼 그 절차와 방법이 오염되기 십상이다. 칼자루를 국민에게 내준다던 권력의 약속이 교묘한 거짓이거나 과장인 경우가 적지 않다.
아이러니하게도 경찰국 폐지의 이유 역시 “경찰의 중립성 및 민주적 통제 강화를 위해서”(윤호중 행안부 장관)다. 국정기획위원회는 국가경찰위원회 실질화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현재 국가경찰위는 법률가, 학자, 경찰·언론·시민단체 인사 등 7인(위원장 포함)으로 구성되는 비주류 조직이다. 위원회를 어떻게 구성하느냐에 따라 민주적 통제는 참이 될 수도, 거짓이 될 수도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민주적 통제가 보이스 피싱처럼 느껴진다. 보수·진보 구분 없이 정권을 잡으면 세상 중요한 것처럼 떠들어대다가 허언으로 귀결되는 일이 부지기수이기 때문이다. 선량한 서민을 겁주거나 꼬드겨 등쳐먹는 ‘김민수 검사’ ‘김미영 팀장’의 사기와 다를 게 뭔가.
그런데 국민주권정부를 표방한 이재명 정부에선 더 강력한 ‘만능키’로 여기는 것 같아 걱정이다. 13일 발표된 국정과제에도 ‘국민의 군대를 위한 민주적·제도적 통제 강화’(국방부), ‘경찰의 중립성 확보 및 민주적 통제 강화’(경찰청) 등이 포함됐다.
더불어민주당의 검찰 개혁 법안은 무소불위 검찰을 없애고 형사사법 절차를 ‘국민의 통제’ 아래 두는 게 대의명분이다. 명분은 그럴싸한데 개혁 속도전엔 벌써 경고등이 켜지고 있다. 두 달도 안 남은 추석까지 만든다는 검찰 개혁 법안은 공청회에서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는 비난에 직면했다. 70년 넘게 유지돼 온 형사사법 체계를 국민의 불편이 없게 뜯어고치는 일이 쉽겠는가. 비전문가들도 대형 공사임을 직감하는데 여당 법사위원들은 천하태평이다. 급기야 공청회 사회를 봤던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은 본회의장에서 차명 주식 거래를 하다 사진에 찍혀 수사 대상이 됐다. 그토록 엄중한 개혁 입법이 그의 관심사이기는 했을까. 가짜 김민수 검사를 영접한 것 같아 서글프다.
공석이 된 자리에 추미애 의원이 투입됐다. 판사 출신인 그는 5년 전 문재인 정부의 검찰 개혁 때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 이어 법무부 문민화(文民化)의 구원투수로도 등판했다. 얼핏 적임자 같아 보이지만, 당시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 공소장을 제출해 달라는 국회 법사위의 요청을 거부해 파문을 일으킨 전력이 있다. 진영 논리를 국회 통제보다 우위에 둔 추다르크 스타일은 이번 검찰 개혁 입법에선 곤란하다. 민주적 통제를 구현한 안정된 형사사법 체계를 만들려면 어느 때보다 균형 잡힌 법률가의 지성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속도전에 급급해 진정성을 놓치면 한순간에 ‘김미영 팀장’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걸 명심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