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13일 국가재정 운용에 대해 “옆집에서라도 빌려 씨를 뿌려 가을에 한 가마니를 수확할 수 있다면 당연히 씨를 빌려다 뿌려야 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확장 재정을 위한 재원 마련을 위해 국채 발행을 시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 대통령은 이날 ‘나라재정 절약 간담회’에서 “해야 할 일은 많은데 쓸 돈은 없고 고민이 많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 대통령은 “밭은 많이 마련돼 있는데 뿌릴 씨앗이 없어 밭을 묵힐 생각을 하니까 참 답답하다”며 “무조건 빌리지 마라, 있는 돈으로 살아라, 그러면 농사를 못 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이 대통령은 그간 국가재정의 적극적 역할을 강조해 왔다. 민생회복 소비쿠폰 정책이 대표적이다. 이날 국정기획위원회(국정위)도 국정과제 123개를 이행하기 위한 추가 재원이 2030년까지 210조원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국정위는 국채 발행 없이 세입 확충 94조원과 지출 절감 116조원을 통해 재원을 마련한다는 구상이다. 다만 국채 발행 없이 재원 조달이 가능할지에는 의문부호가 붙는다.
정부는 올해 세제개편안을 통해 법인세 1%포인트 인상 등 증세를 통해 5년간 누적으로 총 35조6000억원의 세수가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이마저도 후퇴 주장이 나오는 대주주 양도소득세 기준 강화(50억→10억원)가 포함된 액수다. 60조원가량을 더 마련해야 하지만, 경기 부진 장기화 등을 고려하면 세수 확보가 쉽지 않다.
나랏빚을 더 낼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 나오는 배경이다.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지난 3월 이한주 국정기획위원장 등과 함께 쓴 『잘사니즘』에서 “돈이 모자라면 국채를 발행해서라도 과감히 지원해야 한다. 이런 것이 바로 혁신적 재정 운영”이라는 주장을 펼쳤다.
문제는 미래 세대가 짊어지는 나랏빚 부담이다. 고령화에 따라 복지 지출은 빠르게 늘고 있지만, 저출생으로 인구는 급격히 줄고 있어서다. 국제 비교에 많이 사용되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일반 정부부채 비율은 한국이 2023년 기준 51.5%로 미국(118.7%), 일본(249.7%), 독일(62.7%) 등보다 낮긴 하다. 전문가들이 우려하는 건 증가 속도다. 이미 올해 두 차례의 추경으로 국가 채무는 1301조9000억원까지 불었다. 지난해 말과 비교하면 126조7000억원이 늘었다. 1년간 늘어나는 나랏빚 증가 폭은 역대 최대다. 문재인 정부 초기인 2017년(660조원)과 비교하면 국가채무는 약 2배로 늘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 4월 발간한 ‘재정 점검 보고서(Fiscal Monitor)’에서 한국의 국가부채 비율(54.5%)이 올해 말 처음으로 노르웨이·뉴질랜드 등 기축통화를 쓰지 않는 선진 11국의 평균(54.3%)을 넘어설 것이라고 전망했다. 2029년 말이 되면 58.4%로 3위가 된다. 달러·유로·엔화 등을 쓰는 기축통화국은 자국 돈을 찍어 나랏빚을 갚을 수 있지만, 비기축통화국은 과도한 부채가 국가 신용도를 떨어뜨리고, 자본 유출로 이어질 수 있다. 국회예산정책처는 국가채무 비율이 2040년 80.3%, 2050년 107.7%로 가파르게 상승한다는 전망을 내놨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 교수는 “비기축통화국은 국가부채 비율의 상한선을 60% 정도로 보는데, 한국의 저성장과 고령화 상황을 고려하면 상한선에 거의 임박한 상황”이라며 “빚을 내 성장을 도모한다면 규제 완화와 명확한 성장 전략 등을 먼저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