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한화 이글스는 지난달 31일 트레이드 마감일에 승부수를 던졌다. 2026 KBO 신인 3라운드 지명권(전체 23순위)과 현금 3억원을 NC에 넘겨주고 올 시즌을 끝으로 FA가 되는 외야수 손아섭(37)을 받았다. 한국시리즈 우승 도전을 위해선 어떻게든 타선 보강이 필요했고, 붙박이 1번 타자가 없는 상황에서 경험 풍부한 손아섭이 마지막 퍼즐이었다.
트레이드 통보를 받고 창원에서 대전으로 이동한 손아섭은 어릴 때 추억을 떠올렸다. 부산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어릴 적 그는 뜻밖에도 대전 연고팀 한화를 응원했다. 초등학교 때 빨간색 유니폼을 입고 야구를 시작한 뒤 모든 종목을 막론하고 강렬한 레드 유니폼 팀을 좋아했다. 한화는 2007년 그룹 CI 컬러 변경에 따라 오렌지로 바뀌었지만 1994~2006년 13년간 레드 유니폼이었다. 1999년 창단 첫 한국시리즈 우승 때도 빨간색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손아섭은 “제가 어릴 때 모든 스포츠에서 빨간 유니폼을 입는 팀을 좋아했다. 농구는 당시 연세대보다 고려대를 좋아했고, 동양 오리온스도 좋아했다. 그래서 야구도 한화를 좋아하게 됐다. 그때 당시 구대성, 장종훈, 정민철 선배님을 보면서 야구했던 기억이 있다”며 “트레이드 소식을 듣고 신기했다. ‘사람 인생 참 모르는구나’ 싶고, 대전 올라올 때 기분이 묘했다”고 말했다.
프로 입단 19년차를 맞아 마침내 어릴 때 응원하던 팀에 왔다. 한국시리즈 우승을 노리는 한화의 승부수가 아직 우승 반지가 없는 손아섭이라 더욱 운명 같았다.
트레이드가 이뤄진 시점에는 옆구리 통증으로 재활군에 있었고, 한화에 와서 6일 동안 엔트리 등록 없이 1군과 같이 움직이며 실전 준비 기간을 가졌다. 지난 7일 대전 KT전에서 8회 대타로 나와 볼넷으로 이적 신고식을 치렀고, 다음날 8일 잠실 LG전부터 1번 타자로 선발 출장하며 본격 가동됐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손아섭이 뛴 날부터 한화는 3연패를 당하며 1위 자리를 LG에 빼앗겼다. 지친 불펜이 흔들리며 역전패했지만 손아섭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트레이드로 와서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밤잠도 잘 이루지 못했다.
[OSEN=잠실, 조은정 기자]10일 오후 서울 잠실구장에서 ‘2025 신한 SOL Bank KBO리그’ LG 트윈스와 한화 이글스의 경기가 열렸다.LG는 손주영, 한화는 문동주를 선발로 내세웠다.7회초 1사 3루 한화 문현빈 1루수 야수선택 출루 때 3루주자 손아섭이 센스있는 슬라이딩으로 득점을 올리고 있다. 2025.08.10 /[email protected]
하지만 10일 LG전에서 3-2로 앞선 7회 기막힌 홈 슬라이딩으로 직접 분위기를 바꿨다. 1사 3루에서 타자 문현빈이 1루 땅볼을 쳤고, 3루 주자 손아섭이 홈에서 100% 아웃되는 타이밍이었지만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을 들어가며 왼팔을 접어 포수 박동원의 태그를 피했다. 동시에 오른손을 쭉 내밀어 홈플레이트를 터치, 허를 찌르는 득점을 올렸다. 손아섭의 놀라운 센스로 쐐기점을 내며 3연패를 끊은 한화는 12~13일 대전 롯데전까지 이기며 3연승으로 반등했다.
한화 주장 채은성도 “(손)아섭이 형은 워낙 좋은 형님이라 적응을 걱정하지 않았다. 제가 뭐 도와드릴 게 없을 정도로 동생들을 이끌며 조언도 많이 해주신다”며 “LG전 홈 슬라이딩 때 누가 봐도 아웃 타이밍이었는데 그 순간 재치로 득점했다. 분위기는 말할 것도 없이 좋았다”고 손아섭 효과를 말했다.
손아섭은 “처음에는 부담감이 역대급이었지만 이제 완전히 적응된 것 같다. 정상적인 멘탈로 돌아와 경기를 즐겁게 하고 있다”며 “그날(10일) 경기 이긴 게 마음의 부담을 내려놓는 계기가 된 것 같다. 선발로 들어가자마자 2연패를 하는 바람에 마음의 짐이 있었는데 그걸 내려놓는 승리였다. 이제는 남은 한 경기, 한 경기 최대한 이길 수 있게 팀플레이에 집중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OSEN=잠실, 조은정 기자]10일 오후 서울 잠실구장에서 ‘2025 신한 SOL Bank KBO리그’ LG 트윈스와 한화 이글스의 경기가 열렸다.LG는 손주영, 한화는 문동주를 선발로 내세웠다.7회초 1사 3루 한화 문현빈 1루수 야수선택 출루 때 3루주자 손아섭이 센스있는 슬라이딩으로 득점을 올리고 있다. 2025.08.10 /[email protected]
말로만 하는 팀플레이가 아니다. 한화에 와서 손아섭은 6경기 타율 2할3푼8리(21타수 5안타) 6타점 2볼넷을 기록 중이다. 타율은 낮지만 선발로 나온 5경기 모두 안타를 치며 순도 높은 타점을 올리고 있다. 10일 LG전에서 3회 1사 2,3루에서 2루 땅볼로 3루 주자를 홈에 불러들여 선취점을 만들었고, 13일 롯데전도 5-0으로 앞선 6회 1사 3루에서 의식적으로 2루에 땅볼을 굴려 또 3루 주자를 홈에 불렀다. 6-0으로 스코어를 벌리며 승기를 굳힌 1타점이 됐다. 이날 승리로 2위 한화는 1위 LG와 격차를 1.5경기로 좁혔다.
손아섭은 “LG전은 1루가 비어있었는데 볼넷보다 1점을 빨리 넣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오늘은 1점만 더 나면 쐐기 점수가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갖고 타석에 들어섰다”며 “야구는 이겨야 하는 스포츠다. 때로는 안타 하나, 볼넷 하나보다 그런 내야 땅볼이 팀 승리에 더 힘이 되는 경우가 많다”며 경기 상황과 흐름에 따라 맞춤형 타격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장타도 하나둘씩 나오고 있다. 이날 롯데전도 2회 2사 1,3루에서 빈스 벨라스케즈의 4구째 한복판에 몰린 체인지업을 밀어쳐 좌측 펜스를 직격하는 2타점 2루타를 만들었다. 그는 “아직 타격감이 올라온 건 아니다. 재활군에서 오래 쉬다 합류했기 때문에 처음에는 몸이 무거웠고, 직구 스피드에 타이밍이 조금씩 늦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계속 경기를 하면서 히팅 포인트가 정상적으로 돌아오는 느낌이다. 결과를 낼 수 있도록 하겠다”고 의욕을 불태웠다.
[OSEN=잠실, 조은정 기자]프로야구 한화 이글스가LG 트윈스를 꺾고 3연패에서 탈출했다.한화 10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2025 KBO리그 LG와 경기에서 5-4로 승리했다. 3연패를 끊은 한화는 1위 LG와 승차를 2경기 차이로 좁혔다. 트레이드 이적생 손아섭이 3타수 1안타 1볼넷 2타점 1득점으로 활약했다. 리베라토는 희생플라이로만 2타점을 올렸다.한화 손아섭이 김경문 감독과 승리를 기뻐하고 있다. 2025.08.10 /[email protected]
손아섭이 한화에 오면서 절친한 후배 노시환과 ‘케미’도 팬들의 큰 관심을 받았다. NC 시절 손아섭은 경기 전 노시환이 춤추는 걸 보면 타격이 잘 되는 징크스가 있었다. 손아섭은 “같은 팀이 되고 나선 아직 춤을 안 추게 하고 있다”며 웃은 뒤 “라커가 옆에 붙어있고, 밥도 같이 먹으면서 (노)시환이랑 보내는 시간이 많다. 저한테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는 후배라 같이 있으면 항상 즐겁다. 좋아하는 후배랑 야구장에서 같은 유니폼을 입고 뛰는 것도 큰 행복이다”고 이야기했다.
올해 4번 타자로 기복 심한 시즌을 보내고 있는 노시환이지만 손아섭은 그럴수록 더 말을 아낀다. 그는 “야구적인 조언은 크게 하는 게 없다. 조언은 코치님들이 해주시는 것이다. 괜히 제가 한 마디 더하면 시환이한테 부담이 될 수 있다. 전 오히려 아무렇지 않게 대한다. 장난 많이 치고, 좋은 에너지를 주려고 한다. 시환이가 좋은 기분으로 경기를 할 수 있는, 그런 환경을 선배로서 만들어주려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후배 김태연에게서 오렌지색 포인트가 들어간 양말도 협찬(?) 받았다는 손아섭은 “제가 또 주황색 컬러를 좋아한다. 방망이도 16년째 거의 주황색만 쓰고 있다. 양말까지 깔맞춤이다”며 웃은 뒤 “폼생폼사다. 이왕이면 프로야구 선수로서 멋있게 보이면 좋잖아요”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한화에 온 지 2주 밖에 되지 않았지만 아주 오래 있었던 선수 같았다.
[OSEN=대전, 민경훈 기자] 한화 손아섭이 외야 수비 훈련을 하며 김태연과 함께 미소짓고 있다. 2025.08.07 /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