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일본 총리가 전후 80년 담화는 보류했지만 개인 견해로 ‘메시지’를 내놓는 데 의욕을 보이고 있다고 일본 언론들이 전했다. 참의원(상원) 선거 참패로 자민당 내에서 ‘이시바 끌어내리기’ 목소리가 커진 가운데서도 전쟁에 대한 자신의 소신을 내놓겠다는 것이다.
14일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이시바 총리는 8월 15일 종전(終戰) 80주년에 맞춰 담화 발표 대신 “역대 내각 입장을 계승한다”는 것으로 정부 역사 인식에 대한 언급을 마무리 지을 전망이다. 일본 정부는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총리가 1995년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대한 “통렬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언급한 이래 10년에 한 번씩 각의(국무회의) 결정을 거쳐 총리 담화를 내놨다.
이시바 총리는 전후 80년을 맞은 올해 전쟁 검증과 함께 담화를 내놓는 데에 의욕을 보여왔다. 지난 6일 히로시마 원폭 기념행사에 참석한 뒤에도 “어떻게 하면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까라는 것를 50년 담화, 60년 담화, 70년 담화를 고려한 뒤 생각하고 싶다”고 언급했다. “전쟁을 두 번 다시 일으키지 않기 위해 필요하다”며 총리 개인 자격으로라도 견해를 밝히겠다는 얘기다.
이시바 총리는 실제로 개인 견해를 위한 물밑 검토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요미우리는 이시바 총리가 지난 11일 일본종합연구소 데라시마 지쓰로(寺島実郎) 회장과 도쿄 시내에서 조찬을 하며 의견을 교환했다고 보도했다. 데라시마 회장은 최근 한 월간지를 통해 전후 70년에 내놓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 담화가 전쟁에 이른 경위 등에 대한 인식이 “지나치게 협소”하다는 지적을 해온 인물로 전해졌다.
이시바 총리의 견해 발표 시점으로는 항복 문서에 조인한 9월 2일이 거론된다. 이시바 총리가 직접 참의원 선거 이후에 과거 총리 담화에 관련했던 전문가들에게 해당 일이 적절한지를 물었다는 것이다. 다만 이시바 총리가 견해 발표를 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자민당 내 보수파 반발이 거센 상황이기 때문이다. 도쿄신문은 “(자민당 내 반발의) 배경에는 자신들이 지지해 온 아베 신조 총리에 의한 2015년 전후 70년 담화가 ‘덮어쓰기’ 되는 것은 아닌지 하는 강한 경계감이 있다”고 전했다. 70년 담화에서 아베 전 총리는 “아이들에게 사죄를 계속하도록 하는 숙명을 짊어지게 해선 안 된다”고 했다.
퇴진 위기에 놓인 이시바 총리가 견해 발표에 의욕을 보이는 데엔 정치 신념이 작용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부친 이시바 지로(石破二朗·1908~1956) 전 돗토리지사·전 자치상 영향이 있다는 것이다. 이시바 총리가 평소 “‘패전(敗戦)’을 ‘종전’이라고 하면 본질을 잘못 본다”고 언급하는 데엔 부친의 전쟁 경험이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관료였던 이시바 지로는 전쟁 중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섬에 행정을 위해 부임한 바 있다. 1955년경 부하가 쓴 문서에 결재하며 이시바 지로는‘종전’ 문구를 ‘패전’으로 고쳐 쓸 정도로 반전 의식이 강했다고 한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이시바 총리가 부친이 사망하며 이시바 총리가 정계 입문을 결심했다면서 이시바 총리가 ‘방위전문가(국방족)’이 된 것도 이런 이유에서라고 설명했다.
이시바 총리가 자신의 뜻대로 견해를 밝히는 데 대한 우려도 나오고 있다. ‘준비 없이’하는 메시지 발표는 퇴진 목소리에 기름을 부을 수 있다는 것이다. 도쿄신문은 “취미인 독서 등으로 쌓아온 풍부한 지식에 의지해 독선적인 메시지를 낸다면 자민 보수파 의원만이 아닌 야당 및 여러 해외 국가도 일제히 비판을 강하게 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