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고성환 기자] 루이스 엔리케 파리 생제르맹(PSG) 감독이 놓아주지 않는 이유가 있다. 이강인(24)이 위기에 몰린 PSG를 구해내며 또 한 번 한국 축구 역사를 썼다.
PSG는 14일(한국시간) 이탈리아 우디네의 스타디오 프리울리에서 열린 2025 유럽축구연맹(UEFA) 슈퍼컵 결승에서 토트넘 홋스퍼와 2-2로 비긴 뒤 승부차기에서 4-3으로 승리,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UEFA 슈퍼컵은 유럽대항전 챔피언들끼리 맞붙는 경기다. PSG는 지난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UCL) 챔피언, 토트넘이 UEFA 유로파리그(UEL) 우승팀 자격으로 나섰다. 여기서 PSG가 승자가 되면서 본격적인 시즌 개막도 전에 트로피를 손에 넣게 됐다.
엔리케 감독이 이끄는 PSG는 4-3-3 포메이션으로 시작했다. 브래들리 바르콜라-우스만 뎀벨레-흐비차 크바라첼리아, 데지레 두에-비티냐-워렌 자이르에메리, 누누 멘데스-윌리안 파초-마르퀴뇨스-아슈라프 하키미, 뤼카 슈발리에가 선발로 나섰다. 이강인은 벤치에서 시작했다.
토마스 프랭크 감독이 지휘하는 토트넘은 3-5-2 포메이션을 꺼내 들었다. 히샬리송-모하메드 쿠두스, 제드 스펜스-파페 사르-주앙 팔리냐-로드리고 벤탄쿠르-페드로 포로, 미키 반 더 벤-크리스티안 로메로-케빈 단소, 굴리엘모 비카리오가 먼저 출격했다. 손흥민이 로스엔젤레스(LA)FC로 떠난 가운데 내린 전술 변화였다.
[사진]OSEN DB.
[사진]OSEN DB.
예상과 달리 토트넘이 PSG를 상대로 좋은 경기를 펼쳤다. 강한 압박과 뛰어난 에너지 레벨을 앞세워 PSG를 몰아세운 것. 전반 39분 프리킥 공격에서 반 더 벤이 세컨볼을 밀어넣으며 선제골을 터트렸다. 쿠두스의 슈팅이 골대를 때리고 나오기도 했다.
토트넘이 한 골을 추가했다. 이번에도 세트피스였다. 후반 3분 로메로가 반대편으로 길게 돌아들어가며 PSG 수비를 따돌렸고, 정확한 헤더로 득점했다. PSG로선 구단과 재계약 갈등으로 명단 제외된 주전 골키퍼 잔루이지 돈나룸마의 빈자리가 아쉬운 장면이었다.
속절없이 끌려가던 PSG는 후반 막판 반전을 썼다. 후반 22분 교체 투입된 이강인이 시발점이었다. 그는 후반 40분 환상적인 왼발 슈팅으로 골망을 가르며 귀중한 만회골을 터트렸다. 여기에 후반 추가시간 곤살로 하무스가 뎀벨레의 크로스를 강력한 헤더로 마무리하며 극적으로 2-2 동점을 만들었다.
경기는 그대로 승부차기에 돌입했다. PSG는 비티냐가 첫 슈팅을 놓쳤으나 하무스, 뎀벨레, 이강인, 멘데스가 차례로 성공했다. 반면 토트넘은 솔란케와 벤탄쿠르가 성공했으나 반 더 벤과 마티스 텔이 실축하며 무릎 꿇었다. 그렇게 우승팀은 PSG가 됐다.
[사진]OSEN DB.
이로써 새 역사가 탄생했다. PSG는 1970년 창단된 이래 구단 역사상 처음으로 UEFA 슈퍼컵 우승을 차지하며 기쁨을 만끽했다. 지난 1996년 UEFA 슈퍼컵에 한 차례 출전한 적 있지만, 유벤투스에 2-6으로 패하며 아쉬움을 삼켰다.
PSG는 이번에도 토트넘에 막혀 준우승을 거두는가 싶었지만, 패배를 눈앞에 두고 이강인의 골을 시작으로 역전 드라마를 쓰는 데 성공했다. PSG뿐만 아니라 프랑스 축구를 통틀어 최초 우승이다.
토트넘도 프랭크 감독의 공식 데뷔전에서 역사상 첫 UEFA 슈퍼컵 우승을 꿈꿨으나 막판 실점으로 무너지고 말았다. 동료들의 아쉬운 패배를 본 손흥민은 소셜 미디어를 통해 "너희들이 정말 자랑스럽다! 곧 좋은 시간이 올 거야. 실망할 필요없어.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다가올 큰 시즌을 향해 나아가자. 여전히 너희 스퍼스 가족을 생각하고 있어"라고 위로했다.
[사진]OSEN DB.
[사진]OSEN DB.
한국 축구에도 새 역사가 추가됐다. 먼저 이강인은 박지성에 이어 두 번째로 UEFA 슈퍼컵에 출전한 선수가 됐다. 이날 전까지 UEFA 슈퍼컵에서 뛰었던 한국인 선수는 2008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시절 박지성이 유일했다.
여기에 우승자는 이강인이 최초다. 당시 맨유는 김동진이 벤치에 앉았고, 이호가 명단에서 제외됐던 제니트에 1-2로 패했다. 유일하게 경기에 뛴 한국인 선수 박지성은 준우승에 그쳤다.
하지만 이강인은 천금 같은 추격골을 터트리며 자기 손으로 트로피를 가져오는 데 성공했다. UEFA 슈퍼컵 우승뿐만 아니라 득점 기록도 한국 선수 중에선 이강인이 최초다. 영국 'BBC'는 "교체 투입된 이강인이 PSG에 희망을 불어넣었다"라고 평가했고, 프랑스 '막시 풋'도 "이강인이 아름다운 슈팅으로 득점하며 PSG를 되살렸다"라고 극찬했다.
경기 후 엔리케 감독은 환한 얼굴로 이강인을 꽉 안아주며 애정을 표현했다. 그가 왜 주전 경쟁에서 밀려난 이강인을 붙잡으려 하는지 제대로 알 수 있는 경기였다. 이강인은 출전 시간 확보를 위해 새로운 도전에 나설 의향이 있지만, 엔리케 감독이 '게임 체인저'로 활약할 수 있는 그를 높이 평가해 재계약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