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마트 매대에서 생크림이 사라졌다. 폭염으로 원유(raw milk) 생산량이 줄었기 때문이다. 명쾌한 인과처럼 보이지만, 고민해 봐야 할 지점이 있다. 왜 같은 원유로 만드는 제품 중 생크림 생산만 줄었을까. 여기에 답을 얻기 위해선 우리 낙농업의 구조적 한계를 이해해야만 한다. 일차적으론 우리나라 자연환경이 낙농업에 그리 적합하지 않다. 너른 초원에 방목해 기를 여건이 안 돼, 수입 사료를 먹이며 가둬 기르니 원가 자체가 비싸다. 수입품으로 대체하면 될 것 같지만, 흰 우유는 콜드체인으로도 2주 정도가 유통 한계다. 쌈채소나 계란같이 무조건 우리 땅에서 길러야만 하는 신선식품이다.
가뜩이나 낙농 분야 원가율이 높은데, 원유 생산량 경쟁이 지속되면 채산성은 더 나빠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2002년부턴 낙농 농가가 수익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원유 생산량 쿼터제를 통해 우유 가격과 생산량을 통제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유통되는 흰 우유가 수입산 멸균우유보다 비싼 이유다. 여기까지는 신선함을 위한 비용으로 감수할 수 있지만 원유가 가공 유제품의 원료라는 점이 문제가 된다. 직장인들의 식후 카페인을 책임지는 카페라테는 물론이고, 원유에서 유지방을 모아 가공한 생크림과 버터도 제빵 분야에서는 중요하게 쓰인다. 그런데 국산 원유 자체가 비싸니, 이를 원료로 가공하는 유제품은 더 비싸질 수밖에 없다. 그러니 국내선 남는 원유를 재고 처리할 목적으로만 유제품을 만드는 게 현실이다. 폭염이 아니었어도 비싼 원유로는 생크림을 만들 여력이 없다. 동네 빵집과 디저트 가게들이 생크림 확보로 난리였던 이유다.
수입할 수 없는 생크림조차 상황이 이러니, 다른 유제품은 상황이 더 심각하다. 낙농진흥회 추산으론 2024년에 국내에서 소비된 모든 유제품 중 수입품 비중이 50%를 넘겼다. 당장 국내서 소비되는 버터의 92.7%, 치즈의 82.3%가 수입산이다. 흰 우유 직접 소비량은 줄고, 주로 제과제빵 등의 간접적 형태로 유제품을 소비하는 시대에 주된 원료를 모두 수입에 의존해야만 하는 상태다. 안정적 자유무역이 가능하던 시기라면 모르겠으나, 트럼프 등장 이후 바뀐 세계 무역 질서에는 너무 취약한 구조다. 가공 유제품 수입에 차질이 생기는 즉시 빵은 물론 아이스크림이나 세계적 히트상품인 까르보불닭볶음면도 못 만든다. K푸드에 큰 악재다.
처지가 비슷한 일본은 낙농업을 쌀농사와 같은 전략산업으로 규정하고, 자국 유제품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형태로 유제품 자급률을 끌어올렸다. 그 결과가 르타오(LeTAO)나 시로이 고이비토(白い恋人) 같은 자국산 유제품을 사용한 고품질 디저트다. 전통 일식을 넘어선 새 식품 산업의 성공사례다. 우리는 이런 후방산업 육성은커녕 생크림 고갈로 허덕이는 상태란 게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