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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배의 시선] K팝 데몬 헌터스와 재외동포의 힘

중앙일보

2025.08.14 08:22 2025.08.14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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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배 논설위원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K팝 데몬 헌터스’(케데헌)가 화제다. 애니메이션 영화는 넷플릭스에서 가장 많이 본 역대 영화 2위에 올랐고, 역대 1위가 될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수록곡 다수가 빌보드 메인차트인 핫100에 들었고 대표곡인 ‘골든’이 1위를 차지했다. K팝 가수와 팬 문화, 서울의 거리와 풍경, 호랑이와 까치가 함께 있는 호작도에서 영감을 받은 캐릭터까지 한국적 요소가 곳곳에 녹아 있다. 하지만 제작·유통사만 놓고 보면 한국과의 직접적 연관은 크지 않다. 이 작품은 할리우드 스튜디오 중 하나인 소니 픽처스 산하의 소니 픽처스 애니메이션이 제작하고 제작비를 댄 넷플릭스가 독점 공급을 했다.

매기 강 감독 등 교포 대거 참여
문화 융성, 산업화에도 큰 기여
복수국적 확대 등 포용성 높여야

다만 각본과 연출을 맡은 매기 강 감독을 비롯해 제작과 노래·작곡·목소리 연기에 참여한 인물 중 다수가 미국과 캐나다 동포다. 이들이 있었기에 한국 문화와 현실에 대한 세밀한 묘사가 가능했다. 어린 시절 캐나다에 이민을 간 강 감독은 “이 작품은 제가 사랑하고 자랑스러워하는 한국과 K팝 문화에 바치는 헌사이자 러브레터이며, 제가 가진 한국적 뿌리를 표현한 영화”라고 말했다.

골든의 공동 작곡가이자 직접 노래를 부른 이재(EJAE·한국명 김은재) 역시 어린 나이에 미국에 이민을 갔다. 귀국 후 SM엔터테인먼트에서 연습생으로 10년을 보냈지만 데뷔하지 못했고, 이후 작곡가로 활동했다. 한국에서 ‘선택받지 못한 연습생’이 가수·작곡가로서 빌보드 핫100 1위를 차지한 것은 대형 기획사도 쉽지 않은 대단한 성취이다. 물론 그 배경엔 K팝과 K드라마로 대표되는 한류의 확산이 자리한다. 그렇지 않았다면 넷플릭스가 이 작품에 선뜻 투자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케데헌은 K팝의 저력에 북미권 재외동포의 역량이 결합한 작품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이번 성공은 한류 콘텐트 제작이 더는 한국 국적의 제작진이나 국내 기획사만의 전유물이 아님을 보여준다.

외교부 산하 재외동포청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재외동포(한국 국적 및 외국 국적 포함)는 708만 명이며, 거주하는 나라로 보면 미국이 261만5000명으로 가장 많고 캐나다도 24만7000명에 이른다. 케데헌의 성공은 이들이 새로운 한류 생산자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이미 K팝 업계에는 어린 시절 해외에서 음악을 접하다가 한국으로 돌아와 성공한 가수와 작곡가가 적지 않다.

오늘(15일)로 광복 80주년을 맞은 한국이 분단과 전쟁의 잿더미에서 한강의 기적과 한류의 확산을 이룬 데는 재외동포의 기여가 컸다. 미국 등에서 공부하고 현지에서 일하던 인재들이 귀국해 국내 반도체 산업 발전을 이끌었다. 이에 앞서 1960~70년대 독일로 파견된 광부와 간호사들이 보낸 외화는 경제 재건의 귀중한 자금줄이 됐다. 재일동포 역시 한국의 산업화에 큰 공헌을 했다.

그러나 해외동포에 대한 시선이 항상 우호적인 것만은 아니다. 박근혜 정부 시절 초대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으로 지명됐다 자진 사퇴한 재미교포 김종훈 전 벨 연구소 소장이 대표적이다. 그는 “조국을 위해 헌신하려던 마음을 지키기 어렵다”는 말을 남겼다. 한국 사회는 해외동포들의 성공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정작 국내의 관행과 기준에 맞지 않으면 ‘검은머리 외국인’으로 낙인 찍는다. 해외동포들에게 조국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마음이 있어도 국내 법과 제도, 개방성이 뒤따라가지 못하면 실망감만 안겨줄 수 있다.

한국은 이미 인구 감소라는 거대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성장 잠재력이 떨어지고 건설·농업 등 일부 산업은 이미 외국인 노동자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나라를 지키는 군 병력을 40만 명으로 유지하기 힘들 것이라고도 한다. 이민을 본격적으로 받을 것이냐의 문제는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 그러나 한국에서 일하며 살아가기를 원하는 사람들 가운데 한국 사회에 기여할 역량과 의지를 가진 인재라면, 외국인이든 해외 거주 동포든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과거 한국 국적을 가졌던 65세 이상 해외 동포는 영주 목적으로 국내에 들어와 외국 국적을 행사하지 않겠다는 서약을 하면, 국적 회복을 하면서 기존 외국 국적을 포기하지 않아도 된다. 지난 21대 국회에서는 이 나이를 55세나 60세로 낮추는 법안이 발의됐지만, 논의는 진전되지 못했다. 물론 국적 문제에는 병역이라는 민감한 사안이 얽혀 있다. 그럼에도 국적과 거주 자격을 포함해 한국 사회 전반의 개방성을 높이는 일은 더는 피할 수 없는 과제가 됐다. 재외동포와 외국인 인재는 한국의 미래를 좌우할 중요한 자산이다.





김원배([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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