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이재명 대통령은 80주년을 맞은 8·15 광복절 경축사에서 일본을 ‘중요한 동반자’라 지칭하면서 한·일 양국의 신뢰를 기반으로 한 미래 지향적 협력을 역설했다. 이 대통령은 “일본 정부가 과거의 아픈 역사를 직시하고 양국 간 신뢰가 훼손되지 않게 노력해 줄 것으로 기대한다”며 “양국이 신뢰를 기반으로 미래를 위해 협력할 때 초격차 인공지능(AI) 시대의 도전도 능히 헤쳐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같은 날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일본 총리는 “전쟁의 반성과 교훈을 이제 다시 가슴 깊이 새겨야 한다”며 총리로는 13년 만에 ‘반성’을 언급했다.
해방 80주년과 한·일 국교정상화 60주년인 올해 8·15를 이처럼 ‘화해 모드’로 보낸 한·일 정상은 오는 23일 도쿄에서 만난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취임 이후 양자 정상회담을 위해 미국보다 일본을 먼저 방문하는 것은 사상 첫 사례다. 국내 정치 논리에 매몰돼 일본과 불편했던 문재인 정권과 달리 국익 중심의 실용외교를 앞세운 이재명 정부가 일본에 먼저 다가가는 것은 주목할 대목이다.
문제는 정상회담의 내용과 성과다. 8·15 경축사에서 밝힌 대로 이번 회담에서 한·일이 불신을 넘어 자유 진영의 동반자로서 튼튼한 신뢰와 연대를 구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특히 글로벌 무대에서 한·미·일 3국 공조 및 협력 강화 의지를 보여주는 것은 며칠 뒤 열릴 한·미 정상회담을 위해서도 중요하다. 한·일이 미국의 아시아 핵심 동맹으로서 국제 질서 재편기에 미국과 손잡고 동북아와 글로벌 이슈에서도 적극적으로 공조·협력하겠다는 의지를 담은 공동선언이 발표되는 것도 기대해 볼 수 있다. 이 대통령과 이시바 총리는 한국과 일본이 각각 미국과 최근 타결한 관세 협상 결과를 공유하면서 각자 후속 협상에 임하기 전에 정보와 아이디어를 교환한다면 한·일 모두에 윈윈이 될 것이다.
이 대통령은 1박 2일 도쿄에서 한·일 관계를 다지고 곧바로 태평양을 건너 미국으로 날아간다. 25일(현지시간) 워싱턴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만나 정상회담을 하게 된다. 지난 6월 4일 이 대통령 취임 이후 첫 만남이라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있지만, 격동의 트럼프 2기 시대 한·미 동맹의 첫 단추를 끼운다는 점에서 대단히 중요한 자리다.
이번 정상회담은 그 결과에 따라 한·미 동맹의 중대한 변곡점이 될 수도 있다. 미국의 한·미 동맹 현대화 요구, 주한미군의 역할 변화, 국방비 인상, 주한미군 방위비 조정 등 민감한 이슈가 산적해 있다. 무엇보다 첫 만남에서 한·미 동맹의 신뢰를 재확인하는 것이 급선무다. 이 대통령의 대미·대중 인식에 대해 미국이 갖고 있을지 모를 오해를 불식하고, 두 정상 간의 개인적인 친분을 쌓는 것도 중요하다. 동맹과 우방조차 거래 대상으로 인식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성향을 고려해 호혜적인 동맹의 청사진을 준비할 필요가 있다.
이 대통령은 한반도 평화와 북한 비핵화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굳건한 지지 의사를 끌어내야 하는 숙제도 안고 있다. 이 대통령은 8·15 경축사에서 북한 체제 인정, 흡수통일 반대, 9·19 남북 군사 합의 선제 복원 등 전향적 대북 조치 의향을 천명했다. 그러면서 “남북, 미·북 대화와 국제사회의 협력을 통해 평화적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가며 국제사회의 지지와 공감대를 넓히겠다”고 말했다. 우리로서는 북·미 대화를 지지하되, 그 과정에서 한국이 ‘패싱’ 당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무엇보다 미국이 북한의 비핵화 원칙을 분명히 견지하도록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하는 것이 한·미 정상회담을 맞는 이 대통령의 엄중한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