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백종인 객원기자] 투수 마쓰자카 다이스케(44)의 별명은 괴물(헤이세이의 괴물)이다. 특히 고교시절(요코하마)이 어마어마하다. 여름 고시엔 대회에서 ‘슈퍼 히어로’ 영화를 찍었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8강전이다. 전통의 강호 PL학원과의 경기에서 완투승을 거뒀다. 연장 17회까지 혼자서 무려 250개를 던지며 만들어낸 드라마다.
그가 최근 자서전을 발간했다. ‘마쓰자카 다이스케의 고백’이라는 제목이다. 책에는 당시의 이야기가 담겼다. 이를 정리했다.
자서전 ‘마쓰자카 다이스케’의 고백 amazon.com
아침 8시 30분 경기다. 영 내키지 않는다. 연습 게임도 아니다. 무려 고시엔 대회 8강전이다. 그것도 상대는 우승 후보 PL학원이다. 결승에서 만나야 할 강적이다.
“그렇게 이른 시간에는 던져 본 적이 없었다. 훈련도 그것보다는 늦게 시작한다.”
그래도 참아야 한다고? 천만에. 바로 전날 오후 1시 반 게임을 완투한 투수다. 투구수가 148개였다. 다음날 아침 일찍부터 다시 던지라고 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이틀 연속이 아니었다. 내게는 하루에 두 게임을 던지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그래서 더 부담스러웠다.”
심지어 사흘 전(본선 2회전)에도 완봉승을 했다. 108개를 던졌다. 그러니까 나흘 동안 3게임을 혼자 책임져야 하는 셈이다.
감독 “일찍 자야지. 수면제 좀 줄까?”
괴물 “그런 거 먹어본 적이 없어요. 괜찮아요.”
하지만 눈은 말똥말똥하다. 새벽 1시가 되도록 양을 세고 있다. 2시가 넘어서야 잠깐 눈을 붙였다. 4시 반에 기상 소리가 들린다. 씻고, 밥 먹고, 경기장으로 출발이다.
가는 버스 안에서 졸음이 쏟아진다. 구장에 도착했지만 몸은 천근만근이다. 공을 잡고 어깨를 푸는데, 팔이 잘 안 움직인다. 발은 둥둥 떠다니는 것 같다.
비몽사몽 상태다. 아직도 게임 전 기억은 별로 없다. 당시 루틴이 감자칩과 콜라였다. 왠지 그걸 먹어야 공을 잘 던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날은 그것도 잊은 것 같다. 그만큼 정신이 없었다.
당시 신문 기사
초반부터 헤맸다. 유독 변화구(커브)가 두들겨 맞았다. 누군가 그런 말도 했다. “저쪽(PL학원)에서 폼을 읽는 것 같아.”
그러고 보니 3루 코치 박스가 이상하다. 공을 던지려고 하면 타자에게 소리친다. 직구면 “가라, 가라” 변화구면 “노려라” 하는 식인 것 같다. 나중에 들어보니 심리전이었다. 버릇을 간파한 게 아니다. 괜히 신경 쓰게 만드는 작전이었다.
아무튼. 2회에 3점을 잃었다. 25이닝 연속 무실점 기록이 깨졌다. 중반에도 나아질 기미가 없다. 4회와 7회에도 1점씩 잃었다. 그때까지 스코어는 4-5로 뒤진 상태다.
“(투구수) 100개가 넘어가니까, 슬슬 시동이 걸리더라. 눈도 맑아지고, 정신도 돌아오는 것 같았다. 그 무렵 상대 선발은 교체되더라. 나는 9회까지 꽤 많이 던졌는데(139개), 던질 때마다 공에서 기세가 느껴졌다.”
이제는 큰소리 칠 여유도 생겼다.
“지금 생각하면, 그게 2경기나 3경기였다면(시작 시간이 아침 일찍이 아니었다면) PL을 3안타 정도로 누르고 완봉을 하지 않았을까 한다(웃음).”
물론 농담이다.
“만약 보통의 완봉승이라면, 혹은 11회 정도에서 끝났다면. 지금처럼 베스트 게임이니, 세기의 명승부니, 그런 말은 듣지 못했을 것이다. 250개를 던지는 일도 없었을 것이고(웃음)….”
참고로 그 경기의 이닝 스코어는 이렇다.
◇ 1998년 여름 고시엔 대회 8강전
요코하마 000 220 010 010 000 12 = 9
PL학원 030 100 100 010 000 10 = 7
당시 8강전을 기록한 또 다른 책 ‘요코하마 VS PL학원’ (아사히 문고 발행)
벌써 27년 전 일이다. 그런데도 경기 상황은 또렷이 기억한다. 어떤 공을 던졌는지도 막힘이 없다. 하지만 경기 전후의 일은 가물가물하다. 역시 수면 부족 탓이리라.
“마지막 타자를 삼진으로 잡았다. 무척 피곤했다는 것만 생각난다. PL을 이긴 성취감이라든지 그런 기분은 몰랐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전혀 기억에 없다.”
딱 하나가 있다. 기자들과 문답이다.
기자 “내일 4강전에서 던질 수 있나?”
괴물 “아니, 그건 무리다. 던질 수 없다.”
그 말을 전해 들은 감독은 기분이 몹시 언짢았다. 결정은 본인이 하는 것인데, 선수 마음대로 기자들 앞에서 얘기해 버렸다는 못마땅함 때문이다.
“사실은 감독님이 먼저 하신 말이다. 대회를 앞두고 따로 불러서 ‘4연투는 시키지 않겠다’라고 하셨다. ‘왜 그러시냐’고 물어봤더니, ‘넌 고시엔에서 끝날 사람이 아니다. 장래가 있다’라고 하시더라. 그래서 나는 ‘던지고 싶어도, 내일 4강전은 어렵다’는 의도로 말한 것이었다.”
역시 4강전에는 다른 투수가 선발로 나갔다. 요코하마는 8회까지 0-6으로 끌려갔다.
그러나 9회를 앞두고 분위기가 묘하게 바뀐다. 괴물이 불펜에서 몸을 풀기 시작한 것이다. ‘이기든 지든, 마지막은 자신이 막겠다’는 의사 표시였다.
그때부터다. 관중석이 술렁인다. 선수들 눈빛도 달라진다. 9회 말이 됐다. 봇물 터지듯 타선이 폭발한다. 당황한 상대는 연신 허둥거린다. 결국 끝내기 실책까지 나온다. 0-6이 7-6로 변하는 마술 같은 기적이 일어난다.
대망의 결승이 됐다. 괴물은 다시 선발 등판한다. 그리고 노히트노런으로 마지막을 장식한다(59년 만의 기록). 본선 6경기에서 782개의 공을 던지는 괴력을 발휘한 것이다. 2년간(2~3학년) 공식전 44연승의 기록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