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립샘암 정밀진단 표준화 주도 죽음 향하던 생존 곡선 꺾기도 “의사는 꼼꼼함·어질 인(仁) 새겨야”
처음 수술방에 섰을 땐 책임감과 두려움이 교차했다. 나를 믿고 온 환자의 완치를 향한 수술 결과에 몰두하던 때였다. 수천 건의 수술을 거치며 기술적 여유가 생긴 지금은 오히려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에 더 집중하려는 마음이 깊어졌다. 암을 고치는 것 이상으로 이후의 삶이 건강하고 존엄하길 바라며 수술방에 들어간다. 곽철 서울대병원 비뇨의학과 교수 얘기다.
전립샘암은 남자의 자존감과 삶의 질에 직결된다. 암이란 단어가 주는 죽음의 그림자에 요실금·발기부전 등의 가능성이 예고되면 환자의 마음은 무거워진다. 노화, 남성성, 가장의 역할이 한꺼번에 무너지는 듯하다. 확률적으로 10명 중 1명은 기저귀를 벗지 못하고, 이미 발기부전 등 성기능이 약화된 상태라면 회복도 어렵다. 곽 교수는 “선생님 때문에 장애인이 됐다는 말은 참 아프다. 생존과 삶의 질 사이에서 놓치는 건 없는지 늘 꼼꼼히 살펴야 한다”고 말한다.
곽철 교수는 2000년대 초반 전립샘암 개복 수술이 막 본격화되던 시기부터 로봇 수술 도입, 정밀 진단 표준화, 유전체 기반 약물치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발전을 주도해 왔다. 전통과 혁신을 이어오며 전립샘암의 치료 판도를 정밀하게 바꿔온 셈이다. 곽 교수는 “치료 방침을 정한다는 건 이후 삶에 대한 환자와의 약속이다. 그 약속을 지키려고 노력해 왔던 것 같다”고 말했다.
Q : 오늘 전립샘암 진단을 받는다면 무엇을 할 건가.
A : “정밀 검사인 mpMRI, PSMA PET, 유전자 분석을 총동원해 질병 특성부터 파악할 것이다. 전립샘암은 같은 병기여도 분자생물학적 특징(분화)이나 위치에 따라 치료 경과가 달라진다. 정확한 진단이 정확한 치료로 이어진다. mpMRI는 조직검사 전 표적 병변을 확인해 불필요한 조직검사를 줄인다. 과거 12곳을 무작위로 찔러 조직을 채취하는 방식과 달리 암이 있을 가능성이 높은 부위를 겨냥한다. PSMA PET은 전립샘암에 특이적으로 발현되는 막단백질을 추적해 기존 검사에서 놓치는 전이를 찾아낸다. 국소암인 줄 알았는데 이미 다른 장기로 전이된 사실이 검사에서 드러나기도 한다. 유전자 분석은 신약 선택에 도움을 준다. BRCA 같은 특정 유전자 변이가 확인되면 파프(PARP) 억제제 같은 신약을 쓸 근거가 된다.”
Q : 과잉 진단, 치료 논란도 있는데.
A : “조기암을 무조건 수술하거나 치료하다 보니 요실금·발기부전 같은 문제에 따른 과잉치료 논란이 캐나다·미국·유럽 등 선진국에서부터 끊이지 않았다. 그래서 나온 개념이 ‘적극적 감시’다. 암이 커지지 않고 분화도가 낮으며 영상에서 특별한 진행이 없으면 경과를 관찰하는 치료다. 서울대병원의 경우, 10명의 초기 전립샘암 환자 중 1~2명이 적극적 감시 그룹에 속해 있다. 이런 환자 중 일부는 수년간 병이 진행되지 않고 잘 지낸다.”
Q : 조기 발견을 위한 적정 검사 시기는.
A : “전립샘암은 늦지만 않게 발견되면 완치가 가능하다. 조금이라도 불편함이 생기면 검사부터 받고 확인해야 한다. 그것이 자신과 가족을 지키는 현실적인 방법이다. 증상이 나타난 뒤엔 생각보다 많은 고난의 시간이 따라온다. 남성이라면 50세 이후에는 반드시 PSA(전립샘특이항원) 검사를 받아야 한다. 가족력이 있는 경우엔 더 빨리, 40대부터 시작해야 한다. 전립샘암도 유전성이 일부 있다. 아버지나 큰아버지, 작은아버지, 형제 중 누군가 앓았다면 고위험군이다.”
Q : 인상 깊은 치료 경험은.
A : “죽음으로 가던 생존 곡선을 꺾는 경험은 특별하다. 초기여도 악성도가 높거나 전이 상태에서 온 환자들은 보통 5년 이상 살기 어렵다. 그런데 몇몇 환자는 10년 넘게 외래에 온다. 예상과 완전히 다른 경과를 보인다. 운일까, 좋은 유전자인가 싶은데 기적처럼 느껴진다. ‘하늘의 뜻이면 받아들이겠다’는 태도를 보이는 분들도 인상 깊다. 이런 자세는 치료에도 분명 영향을 준다. 신약 발전과 급여 등재, 임상시험의 기회는 예상치 못한 순간에 병 진행의 흐름을 바꾼다. 더는 손쓸 수 없는 상황에서 표적 방사성 치료제(플루빅토) 임상에 참여해 암세포가 거의 사라진 환자도 있었다. 그야말로 드라마틱했다. 수술, 약물 등으로 하나씩 대응하다 보니 10년 이상 끌고 오는 환자들이 늘어난다. ‘예전에 그냥 뒀다면 돌아가셨을 텐데 생존 곡선을 꺾었구나’하는 순간이 많아졌다.”
서울대병원은 한국 의료를 이끄는 리더 양성소다. 그 상징성과 신뢰에 많은 환자가 기댄다. 곽철 교수에게 서울대병원은 ‘좋은 회사’다. 그는 “나를 지탱해준 건 환자의 신뢰, 동료 의료진과의 협력, 가족의 응원, 그리고 스스로 항상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믿음”이라고 했다.
후배들에게는 두 가지 덕목을 강조했다. 첫째는 꼼꼼함이다. 작은 실수 하나가 환자에겐 치명타다. 결과지를 한 줄이라도 허투루 보면 놓칠 수 있다. 곽 교수는 “꺼진 불도 다시 본다는 말을 가슴에 새겨야 한다. 늘 꼼꼼하고 세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둘째는 ‘어질 인(仁)’이다. 경제적으로 어렵거나 의지할 데가 없는 분들도 병원에 온다. 그럴 때일수록 더 따뜻해야 한다. 곽 교수는 “환자는 삶의 가장 약한 지점에서 의사를 만난다. 바쁘고 피곤하더라도 짜증 내면 안 된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