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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덤만으론 안되더라"…한국서 맥 못춘 '커피계 애플'의 전향 [비크닉]

중앙일보

2025.08.15 22:00 2025.08.16 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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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멘터리
브랜드에도 걸음걸이가 있다고 하죠. 이미지나 로고로만 기억되는 게 아니라, 자기만의 방식으로 ‘자기다움’을 직조해야 비로소 브랜드가 됩니다. 그래서일까요. 브랜드 하나만 골라도 취향이 드러나고, 그 선택에 개성과 욕망, 가치관이 담기죠. 비크닉은 오늘도 중요한 소비 기호가 된 브랜드의 한 걸음을 따라가 봅니다.

커넥트플레이스 서울역점의 블루보틀 '놀라 익스프레스' 전경. 한화커넥트 제공
커피계의 애플, 슬로우 커피의 대표 주자, 핸드드립과 장인정신…. 미국 프리미엄 커피 브랜드 블루보틀 앞에 줄곧 따라붙는 수식어입니다. 그런데 최근 낯선 풍경이 포착됐습니다. 지난달 31일 서울역 한복판에 첫 ‘테이크아웃 전용 매장’이 문을 열더니, 같은 달 네스프레소와 캡슐 커피를 출시하며 홈카페 시장에 뛰어든 겁니다. ‘대형 단독 매장에서 여유로운 커피 경험을 판다’는 기존 모습과는 대조되는 행보입니다.

서울역 내 블루보틀보틀 커피 테이크아웃 수요로 긴 대기줄이 형성된 모습. 김세린
지난 5일 서울역 매장을 직접 가 보니 이 변신이 더욱 체감됐습니다. 블루보틀에서 흔히 볼 수 있던 2030뿐 아니라, KTX 승객과 외국인 관광객 등이 몰려 들었죠. 하루 유동인구 약 60만명(한국철도공사 통계)의 입지를 활용한 셈입니다. 저가 커피의 ‘대중화’와 전문점의 ‘프리미엄’이 양분한 한국 커피 시장에서, 브랜드를 잘 몰랐던 대중까지 품은 이번 선택은 어떤 의미일까요. 속도전에 뛰어든 블루보틀의 새로운 전략을 비크닉이 살펴봤습니다.

한국 진출 7년 만에 첫 적자, 이유는
블루보틀 연남 전경. 미니멀하고 차분한 인테리어가 특징이다. 블루보틀코리아
블루보틀은 2002년 미국 캘리포니아 오클랜드에서 시작해 2019년 서울 성수동 1호점을 열었습니다. 진출 초기에만 해도 미니멀 인테리어와 장인정신이 깃든 스페셜티 커피로 오픈런을 만들며 ‘SNS에서 가장 핫한 해외 커피’라는 별칭을 얻었죠. 프리미엄 이미지를 굳히며 매장을 서울 강남·홍대·성수 등 주요 상권 외 판교·제주·부산 등을 포함해 17개로 확장했고요.

하지만 2024년 블루보틀코리아는 매출 312억원, 당기순손실 11억원으로 국내 진출 7년 만에 첫 적자를 냈습니다. 영업이익은 2021년 26억원에서 지난해 2억5000만 원으로 87%나 감소했고, 현금성 자산은 190만원 수준에 그쳤습니다. 회사 측은 “한국은 내부 기준으로 여전히 건강한 사업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고 했지만, 전 매장을 직영으로 운영하고 바리스타 중심으로 고용하며 뒤따르는 임대료·인건비 부담이 만만치 않은 상황입니다. 여기에 원두·로열티 인상, 일본 법인 차입금 이자 등으로 수익성 악화는 뚜렷합니다. 또 ‘핸드드립 원칙’ ‘싱글 오리진 원두’ ‘매일 로스팅’ 같은 브랜드 철학을 지키면서 원가 부담도 커졌고요.

일본 도쿄에 있는 블루보틀 산겐지야 카페. 로컬 분위기를 살린 구조로 화제를 모았다. bluebottlejp
다만 이 부진이 곧 글로벌 실적 악화를 뜻하진 않습니다. 비상장 기업인 블루보틀 본사는 실적을 따로 공개하고 있지 않지만, 출점과 시장 개척이 활발하니까요. 지난해 8월 싱가포르에 처음 진출하며 동남아로 입지를 넓혔고, 팬층이 견고한 일본에선 28개 매장(2024년 8월 기준)을 운영하며 교토·고베 등으로 지역을 넓혀가고 있어요. 특히 신규 매장은 양갱 등 전통 디저트와의 페어링, 지역 감성을 살린 인테리어 등 현지화 전략을 통해 재방문율을 높였습니다.

급변하는 한국 커피 시장, 관건은 ‘고객 설계’
그렇다면 왜 유독 국내에서 맥을 추지 못하는 걸까요. 이는 국내 소비자의 커피 선택 기준이 뚜렷해진 데다 저가 브랜드 공세가 거세졌기 때문입니다. 일례로 메가커피·컴포즈커피는 대용량 커피를 프리미엄 카페 대비 2~3배 저렴하게 내세운 덕에 2025년 3월 기준 이용자가 전년 대비 각각 27%, 26.8% 불었습니다. 특히 트렌드에 민감한 20대 비중이 전년 대비 더 두드러졌죠(마크로밀 엠브레인 조사). 공격적인 가맹 확장, 배달 서비스 강화, 메뉴 다변화가 이 성장을 뒷받침했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맛이나 브랜드 이미지로 승부하기란 역부족이죠. 소비자가 언제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 브랜드를 접하고, 매장에서조차 어떤 동선과 경험을 거쳐 재방문에 이르는지를 치밀하게 설계하는 전략이 필요해요.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국내 커피 시장은 단골층만으로는 매출 구조를 지탱하기 어렵다”면서 “처음 방문하는 사람을 얼마나 쉽게 유입시키고, 반복 방문으로 전환시키는지가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블루보틀은 미니멀한 공간과 제한적인 매장 수로 팬덤은 구축했지만, 접근성과 이용 편의성 면에서는 대중을 끌어들이기에 부족했던 것이죠.

논현동 이디야커피랩에서 진행되는 '이디야 커피 다이닝'. 이디야커피
게다가 이젠 프리미엄 커피까지 경쟁이 치열한 상황입니다. 지난해 8월 상륙한 프리미엄 브랜드 바샤커피는 한 잔 1만원이 넘는 초고가 전략으로 럭셔리 상권을 공략했습니다. 한 달 뒤엔 블루보틀과 함께 ‘미국 3대 스페셜티’로 꼽히는 인텔리젠시아가 잠실 롯데월드몰에 문을 열었죠. 초저가와 프리미엄 사이에서 돌파구를 찾던 프랜차이즈 브랜드도 경쟁에 가세했습니다. 이디야는 올해 오마카세 형식의 스페셜티 커피 체험 프로그램 ‘커피 다이닝’을 시작했는데, 4만원대에 ‘2025 시즌그리팅’ 예약률이 80%를 기록했어요.

결국 국내 커피시장의 해법은 편의성을 제공하면서도 고급 이미지를 유지하는 투트랙 전략인데요, 스타벅스의 접근법은 이를 그대로 구현합니다. 일단 주거·업무·여가 동선에 맞춰 2000여 개 매장(2025년 8월 기준)을 배치해 주변 어디서든 갈 수 있는 ‘스벅권’을 형성한데다, “2011년부터 리워드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한 디지털 혁신이 가장 큰 차별점”이라는 게 업체 측의 설명입니다. 사이렌 오더, 드라이브 스루(My DT Pass), 퀵 오더, 나우 브루잉 등 앱 기반 주문·적립·할인 서비스가 반복 방문을 유도하는 동시에 골드 회원에서 그린 회원까지 혜택 대상을 넓히며 리워드 회원 수는 1400만 명을 넘어섰으니까요.

스타벅스 리저브 도산 전경. 스타벅스코리아
지난 5월부터 전국 80% 매장의 영업을 오후 10시까지 늘린 것도 바로 숫자로 나타났습니다. 6월 18일부터 약 6주간 저녁 방문객과 음료 판매가 20%, 샌드위치 판매가 50% 늘었고, 디카페인 음료의 저녁 판매량도 20% 증가했어요.

철학은 지키고, 보폭 줄이는 블루보틀
블루보틀X네스프레소 두번째 협업 캡슐 '놀라 스타일 블렌드'. 김세린
블루보틀의 전향은 아직까지는 성공적입니다. 대표적인 예로 지난 2월 네스프레소와 선보인 첫 협업 제품 ‘블루보틀 블렌드 No.1’은 일부 부티크에서 오픈런이 이어졌고, 온라인 판매는 나흘 만에 완판됐습니다. 이 흥행에 힘입어 7월에 두번째 캡슐을 출시하며 장기 파트너십을 맺었죠. 네스프레소 측은 “집에서도 고품질 커피를 즐기려는 수요가 꾸준히 확대되고 있다”며 “취향과 감성을 중시하는 소비자들과 블루보틀의 감성과 네스프레소의 기술력이 결합해 새로운 팬층이 유입되는 효과를 봤다”고 덧붙였어요.

앞으로 블루보틀은 ▶카페 매장 확대 및 콘셉트 특화 ▶캡슐 및 RTD(Ready to Drink·즉석음용커피) 등 외부 플랫폼을 통한 제품 확장 ▶대형마트·배달 서비스·온라인 스토어 등 고객이 브랜드를 만나는 경로를 다변화하는 데 집중할 전망이에요. 이미 올해 초 쿠팡이츠 입점에 이어 배달의민족에서도 매장 커피 판매를 시작했는데, 주문 시 바리스타가 직접 적은 메시지를 동봉한 것이 좋은 피드백을 받고 있죠.

배달의민족에 올라온 블루보틀 배달 서비스에 대한 긍정 피드백들. 그래픽 김세린
블루보틀 관계자는 “단기 유행보다 철학과 품질 기준을 지키며 유연하게 진화해왔다”면서 “변화하는 고객 기대에 맞춰 채널을 넓히고, 더 많은 소비자가 쉽게 접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결국 ‘본질’과 ‘혁신’의 균형이 가장 중요한 해법이라는 의미죠.

국내 커피 시장은 당분간 양극화가 이어질 전망입니다. 이은희 교수는 “프리미엄 브랜드는 단순히 비싼 값에 걸맞은 경험을 주는 데 그치지 않고, 고객이 반복해서 찾게 되는 ‘여정’을 설계해야 한다”며 “가까운 매장 위치나 편리한 주문은 물론이고, 인테리어·굿즈·공간 연출·브랜드 서사까지 촘촘하게 설계하면 충분히 경쟁 우위를 만들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지속 가능한 고객 설계’가 블루보틀의 모습을 어떻게 바꿀지 좀 더 지켜봐야겠습니다.




김세린([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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