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 체제가 ‘실사구시 탕평 인선’을 앞세워 출항했다. 정 대표가 지난 2일 취임 일성으로 “정청래를 도왔든, 박찬대를 도왔든 우리는 민주당원이고 하나”라고 외쳤던 약속대로다. 대표 경선 때 정 대표를 돕지 않았던 의원이 당직에 발탁되자 “저는 대표님을 지지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임명해주셔서….”(이해식 전략기획위원장)라고 당황스러워 했을 정도다.
다양한 당내 계파가 정청래호(號)에 몸을 실었지만 모두 1등 항해사는 아니다. 그 중에서도 정 대표의 ‘측근’으로 꼽히는 인사가 있다. 대표 당선과 동시에 첫 인선으로 발표한 한민수 비서실장, 김영환 정무실장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정 대표 당선을 돕기 위해 각각 당 대변인과 원내부대표 당직을 던졌다. 캠프 초창기부터 정 대표와 전국을 활보하며 “이재명도 1번, 정청래도 1번”을 호소했다.
대표와 가장 지근거리에 있는 비서실장에 발탁된 한민수 의원은 정치부 기자 시절부터 정 대표와 알고 지냈다고 한다. 정 대표가 초선일 때부터 안면은 있었지만 본격적으로 관계를 맺은 건 정 대표가 2012년 19대 국회에서 정보위원회 간사를 맡았을 때다. 기자이던 한 의원은 당시 정 대표와 가까워지자 “직접 소통하기 전에는 부정적인 이미지도 있었는데, 이렇게 좋은 사람인지 몰랐다”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한 의원의 ‘정청래의 사람’이 된 결정적 계기는 지난해 4·10 총선이었다. 한 의원은 22대 총선 후보 등록 마감일인 지난해 3월 22일 서울 강북을 지역구에 공천을 받았다. 선거를 보름 남긴 시점에 가까스로 본선행 티켓을 따낸 ‘막차 공천’이었다. 정 대표는 지역구인 서울 마포을을 바삐 다니면서도 틈틈이 한 의원 지역구로 가서 지원 유세를 폈다. 선거를 불과 3일 앞둔 지난해 4월 7일에도 정 대표는 강북을 찾았다. 둘은 유세차에 올라, 또 시장을 돌며 “한민수를 뽑아달라”고 함께 외쳤다.
이런 도움을 정 대표로부터 받은 한 의원은 정 대표가 당권에 도전하자 “정청래 의원이 선거에 나가면 내가 돕지 않을 방법이 없다”며 대변인직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정무실장 김영환 의원도 “빚은 갚아야 하지 않겠느냐”며 정 대표를 도운 인사다. 김 의원은 22대 총선 출마를 앞둔 2023년 11월을 잊지 못한다고 한다. 당시 자신의 책 『추락하는 경제, 무너지는 대한민국』 출판기념회를 열었는데, 당연히 와 주리라 기대했던 정치인 상당수가 참석하지 않았다. 유일한 예외는 수석최고위원이던 정 대표였다. 현역 의원으로서 유일하게 참석한 정 대표는 3시간 30분 동안 자리를 지키면서 당원들과 일일이 사진을 찍어줬다고 한다.
김 의원은 지난달 28일 유튜브 ‘메디치미디어’에 나와 “보좌관으로 모신 의원 중 한 분도 안 오고 영상 축사도 안 보내줬는데, 가장 인기가 좋은 정청래 의원이 와줘서 되게 고맙더라. 그래서 내가 이 분은 언제 한번은 도와줘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고 했다.
정 대표가 신설한 당직 민원정책실장을 맡은 임오경 의원도 정 대표와 가까운 대표적 인물이다. 임 의원은 2020년 영입 인재 강의를 하러 온 정 대표와 첫 인연을 맺었다. 핸드볼 국가대표 선수 출신으로 정치가 생소하고 막막한 때였다. 임 의원은 교육을 마치고 정 대표에게 “조금 더 배우고 싶다”고 했고, 정 대표는 바로 다음 날 임 의원에게 3시간가량 국회 생활 전반에 관해 조언했다고 한다. 임 의원은 “정 대표가 ‘정치인이 되려면 지역과 정책을 알아야 한다. 2년은 당직을 맡지 말라’고 해서 지역과 상임위 활동에 전념했다”고 했다. 정 대표의 ‘족집게 과외’가 통해서일까. 체육인 임 의원은 집권 여당의 재선 정치인으로 거듭났다.
정 대표 체제의 당직 인선을 자세히 뜯어보면, 정 대표가 꾸준히 챙기고 있는 원외 인사도 보인다. 당 호남발전특별위원회 수석부의장을 맡은 이병훈 전 의원이 그런 사례다. 그는 22대 총선에서 비명으로 낙인 찍혀 재선에 실패했다. 그런 그를 정 대표는 기회가 닿을 때마다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하고 있다. 지난 8일 정 대표가 5·18 민주묘지를 방문했을 때도 이 의원을 동행시켰고, 취재진이 사진을 찍고 브리핑을 할 때마다 “이병훈 의원, 이리 오세요”라며 그를 챙겼다.
다만, 정 대표의 포용력에 관해선 의구심 또한 여전하다. 한 재선 의원은 “호불호가 워낙 확실한 캐릭터라 당을 어떻게 아우를지 지켜봐야 한다”고 했다. 게다가 정 대표의 강한 캐릭터 또한 여전히 불을 뿜고 있다. 지난 8일 정 대표의 광주 일정에 불참한 의원들을 향해 “광주시장, 전남지사도 오셨는데 지역 의원들은 어디 있느냐”고 질타한 게 대표적이다. 그런 호통이 있자 경선에서 박찬대 의원을 도왔던 정진욱(광주 동남갑) 의원은 페이스북에 “독일여행 3일째”라며 해명 글을 올리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