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닫기

[단독] "월급 밀리고 퇴직금도 안줘"…국내 최고 해커기관 KITRI 수사

중앙일보

2025.08.16 13:00 2025.08.16 18:43

  • 글자크기
  • 인쇄
  • 공유
글자 크기 조절
기사 공유
고용노동청이 직원들 임금을 수차례 체납하고 퇴직금을 미지급한 유준상 한국정보기술연구원장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한국정보기술원(KITRI)은 유수의 화이트해커를 배출해 온, 국내 최고의 정보보안 인력 양성기관 중 하나로 꼽힌다.

15일 업계 관계자 등에 따르면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서울관악지청은 지난달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전문생산기술연구소인 KITRI에서 직원들의 임금을 상습 체납했다는 신고를 접수하고 사실관계를 파악 중이다.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직원 11명의 임금을 6차례 체납하고 장기근속 퇴사자에게 1억원이 넘는 퇴직금을 미지급했다는 것이 주요 신고 내용이다. 또 노동청은 지난해와 올해 연말정산 환급금이 예정일보다 두 달 가량 늦게 지급된 과정에서 문제가 없었는지도 들여다 볼 예정이다.
유준상 한국정보기술연구원장. 지난 2020년 12월 대한체육회장 선거 출마를 선언하며 기자회견을 진행했을 당시의 모습이다. 뉴스1


KITRI는 개인정보 유출과 같은 사이버 침입·공격을 막는 정보보안 전문가를 양성하는 곳이다. 산업기술혁신촉진법 제42조에 따라 산자부 장관의 허가를 거쳐 중소·중견기업의 기술혁신 지원을 목표로 설립된 사단법인 성격의 공직유관단체다. 지난 8~10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개최된 세계 최고 권위의 해킹대회 ‘데프콘 CTF 33’서 4년 연속 우승을 차지한 팀에도 KITRI 주요 사업인 ‘차세대 보안리더 양성 프로그램(BoB)’ 출신 인원들이 포함돼 있다.

이처럼 정보보안 업계에서 상당한 영향력과 인지도가 있는 기관이지만, 내부적으로는 직원 임금·처우 문제로 잡음이 계속되고 있다. 지난해 5~6월엔 정해진 지급일보다 며칠 늦게 임금이 지급됐고, 지난 1월엔 아예 해당 달에 지급되지 않고 다음 달까지 미뤄지는 사태도 벌어졌다. 이에 대출을 급히 실행해 월세 등 정기 지출을 메꾼 직원도 있었다고 한다.

이후 4월에도 임금이 17일 늦게 지급되면서 고용청에 진정서가 접수됐지만, 6월까지도 임금이 7일 이상 늦게 지급되는 사태가 반복됐다. 임금 체납을 겪은 직원은 총 11명으로, KITRI의 전체 직원(35명) 3명 중 1명에 해당한다. 이들은 모두 보안 교육 프로그램 관련 업무를 담당한 것으로 파악됐다.

또한 10년 넘게 장기근속하다 올해 퇴사한 직원에게는 1억이 넘는 퇴직금을 2달 넘게 미지급한 상태라고 한다. 퇴직급여법에 따르면 퇴직자에게 퇴직 시점으로부터 2주 내 퇴직금을 지불해야 하지만, 지켜지지 않은 것이다.

업계에선 KITRI의 경영난이 장기간 이어진 탓에 이 같은 사태가 벌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KITRI는 정부로부터 자체 과제를 수주해 재원을 확보하는 자급자족 형태의 사단법인이라 정부 지원금보다는 사업을 통해 올리는 수익을 주된 경영 자금으로 사용해야 한다. 특정 사업에 대한 직접비만 정부 지원 대상이다. 이에 따라 올해도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부터 90억원의 예산을 지원받았지만, 이 돈을 사업과 상관없는 직원들의 복리후생이나 기타 기관 운영비로 쓸 수는 없다.

KITRI 관계자는 “직원들에게는 너무 죄송한 심정”이라면서도 “교육 사업을 주로 하는 비영리 연구기관 특성상 자체 수익을 내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이어 “사업이 유지되려면 정부의 (기관 운영 비용으로 쓸 수 있는 자금) 지원이 절실하다. 몇 년째 경영 돌파구를 찾고 있지만, 현재는 어려운 상황이다. 정부 지원 예산이 들어오는 3월 전까지는 모든 비용을 자체 수익금으로만 감당해야해 자금 공백에 시달리며, 임금이 장기간 미지급된 1월이 특히 어려운 시기였다”고 덧붙였다.

한편 KITRI 내부에선 유 원장의 경영 능력에 대한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고 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관계자는 “4선 국회의원 출신인 유 원장이 능력이 충분히 증명되지 않거나 경력이 부실한 지인이나 친익척들을 낙하산처럼 꽂아 넣은 탓에 기관 운영이 산으로 갔다는 지적이 내부에서 꾸준히 나온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KITRI 관계자는 “관련 기관의 조사에 성실히 임해 모든 사실관계를 명확히 소명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오소영([email protected])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