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경제가 초고속 성장하던 1970년대, 기업 활동으로 부를 쌓은 재벌 그룹이 등장했습니다. 그 배후엔 주식·부동산 투자와 사채 등으로 지하 경제를 움직인 ‘재벌 뒤의 재벌’이 있었는데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막대한 자금을 굴렸던 이들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그들은 어떻게 돈의 흐름을 좇아 막후의 경제 실력자가 될 수 있었을까요. 자세한 내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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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말 증권사들이 빼곡하게 들어선 서울 명동 거리에 와이셔츠와 양복 재킷을 빼입은 ‘금융맨’들이 제각기 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바로 그때, 수선스럽고 왁자지껄한 증권사 골목에 어울리지 않는
하얀 치마저고리 차림의 할머니가 나타났다.
150㎝ 남짓한 땅딸막한 체구에 영국 시사지 타임스를 손에 쥔 할머니는 증권사 객장에 앉아 시세판을 물끄러미 들여다보고 있었다. 산신령 같은 신비감을 풍기는 할머니의 정체는 난다 긴다 하는 금융맨들도 탄복하는 주식 투자의 고수,
‘백 할머니’ 백희엽이었다.
당시 두 차례의 오일 쇼크로 중동에 ‘건설 붐’이 일었다. 타임스를 정독하는 습관 덕에 세계정세에 밝았던 백 할머니는 건설 우량주에 투자해 엄청난 수익을 올렸다고 전해진다. 1958년 국채 파동 당시 백 할머니가
국채 투자로 연 150% 수익을 올렸다는 건 증권가에서 유명한 이야기다. 대학생이었던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이 무턱대고 그를 찾아가 “제자로 받아달라”고 부탁할 정도였다.
『재벌 뒤의 재벌』(영림카디널) 저자 강병욱 경영학 박사는 “주식 시장 큰손이라고 하면 묘하게 사짜 이미지가 연상되는데, 백 할머니는
‘한 가지 원칙’에 따라 정석으로 투자했다”고 설명한다. 백 할머니를 주식 투자의 대가로 거듭나게 한 그 원칙은 무엇일까.
강 박사는 더중앙플러스 ‘뉴스 페어링’ 팟캐스트에서 대한민국 지하 경제의 거목들에 얽힌 놀라운 뒷이야기를 들려줬다. “이병철과 정주영도 벌떡 일어나서 전화를 받았다”는 명동 사채 시장의
‘현금왕’ 단사천은 어떤 인물이었을까. “그의 땅을 밟지 않고선 서울로 들어올 수 없다”는 소문이 돌았던
‘강남땅 부자’ 김형목의 정체는? 자세한 내용은 아래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