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틈이 벌어진 미국과 인도 사이를 파고들 태세다. 미국과 인도의 추가 무역 협상이 취소되는 등 양국 관계가 악화일로를 걷는 상황에서 중국은 외교 수장의 전략적 행보를 통해 인도 끌어안기에 나섰다.
로이터 통신은 17일 인도 매체 NDTV를 인용해 “오는 25~29일 뉴델리를 방문하기로 했던 미국 무역 협상단의 일정이 취소됐다”고 보도했다. 양국의 6차 무역 협상이 언제 열릴지 불투명해지면서 인도산 제품에 부과된 추가 관세 25%는 예정대로 오는 27일 발효될 것으로 보인다.앞서 이달 초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인도가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멈추지 않는다는 이유를 들어 인도산 제품에 고율 관세를 예고했다. 미국으로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매듭짓고 중국 견제에 집중하기 위해선 시급히 러시아의 돈줄을 끊어야 한다. 하지만 인도는 “러시아 원유 구매 계획에 대한 인도의 정책 변화는 없다”면서 사실상 반기를 든 상태다.
인도 입장에선 단기적으로 경제적 타격이 불가피하다고 해도 안보 분야에서 ‘수퍼 을’의 지위를 지니고 있어 미국과 맞설 만하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미국에게 인도는 인도양을 중심으로 한 중국의 해양 팽창과 일대일로 전략을 저지하는 데 핵심 역할을 맡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맥락에서 양국의 기싸움이 이번 협상 취소로 번졌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미국이 관세 발효 직전에 일정을 취소시킴으로써 인도 측의 충격을 극대화하려는 전형적 압박 전술을 꺼내들었다는 의미다. 협상판을 깬다기보다 인도의 기를 꺾은 뒤 양보 신호를 기다리고 있다는 의도로도 읽힌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이 가세해 인도의 대립 구도가 더욱 복잡해졌다. 중국 외교부는 전날(16일) “왕이(王毅) 중국공산당 중앙외사판공실 주임 겸 외교부장이 중국-인도 국경문제 특별대표로 오는 18~20일 인도를 방문해 제24차 양국 국경 문제 특별대표 회의에 참석한다”고 밝혔다.
중국과 인도는 2020년 국경 충돌 이후 5년 만인 지난해 5월 베이징에서 해당 회의를 열고 관계 개선의 실마리를 찾은 적이 있다. 이번 회의의 경우 국경에서의 군사적 충돌 방지 장치, 통신 채널 재가동 등이 주요 논의 의제로 오를 전망이다.
중국과 인도 모두 미국을 상대하며 전략적 유연성을 확보해야 할 필요가 큰 만큼 이번 회의에서도 양국의 해빙 분위기를 예상하는 시각이 상당하다. 중국은 자신들을 견제하는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서 인도를 가장 약한 고리로 인식하곤 했다. 인도가 미국 쪽으로 완전히 기울지 않도록 전략적 완충지대를 마련해야 하는 중국의 계산에서 인도가 미국과 관계가 불편해진 지금은 호기일 수밖에 없다.
외교적 균형 등 전략적 자율성을 중시하는 인도에게도 미국과 관세 전쟁이라는 시험대에서 중국과 관계 개선은 마다할 일이 아니다. 관세 등 경제 영역에서 촉발된 경쟁이 안보 영역으로 번지면 중국 견제의 지정학적 중요성 등 관련 카드를 쥐고 있는 인도를 미국이 더욱 신경 써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올해 주(州) 선거, 내년 총선 등 굵직한 정치 이벤트를 앞두고 있는 인도 정부가 ‘자주경제’를 앞세워 중국과 관계를 활용할 가능성도 거론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