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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 LLM과 경쟁 어려워...특화형 소버린 AI로 가야”

중앙일보

2025.08.18 00:47 2025.08.18 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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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버린 AI와 한국형 AI 국가책략' 특별 세미나

 지난 14일 오후 서울 남대문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정보세계정치학회 주최로 특별세미나 ’소버린 AI와 한국형 AI 국가책략' 가 열렸다. 최준호 기자
우리도 챗GPT와 같은 거대언어모델(LLM)을 만들 수 있을까, 아니 어렵더라도 만들어야 할까. 애시당초 거대언어모델 구축의 핵심이 되는 인공지능(AI) 연구인력과 그래픽처리카드(GPU)ㆍ데이터 등의 투자에서 미국은 물론, 중국과도 비교할 수 없는 형편이라는 회의론이 팽배하다. 지난 5일 인천에서 열린 APEC 글로벌 디지털ㆍAI 포럼에서 마이클 크라치오스 미국 백악관 과학기술정책실(OSTP) 실장은 참석한 국가들에게 미국의 AI를 받아들일 것을 직설적으로 요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한편으론 기술유출 방지, 국방ㆍ안보 등의 이유로 소버린 AI는 포기할 수 없다는 주장도 강하다. 이재명 정부는 이런 이유로 출범 전부터 소버린(sovereign) AI 구축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일단 배는 출범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지난 4일 ‘독자 인공지능 기초 모형’(AI파운데이션 모델) 사업에 참여한 10개 팀 중 네이버클라우드ㆍ업스테이지ㆍSK텔레콤ㆍ엔씨에이아이ㆍLG AI 연구원 등 5개 기업을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정부는 향후 6개월 단위의 압축과정을 거쳐 2027년 상반기를 목표로 최종 2개 팀, 소위 ‘국가대표 AI’를 선발할 계획이다. 정부는 ‘주권’을 뜻하는 소버린이란 단어를 쓰지 않았지만, 그간 비공식적으로 ‘독자 인공지능 기초 모형’ 사업을 소버린 AI 구축을 위한 것임을 밝혀왔다.

지난 14일 오후 서울 남대문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정보세계정치학회 주최로 열린 특별세미나 ‘소버린 AI와 한국형 AI 국가책략’은 이같은 현실적 고민에 대한 토론의 장이었다. AI가 국가 주권과 국제질서에 미치는 함의를 조망하고, 한국이 취해야 할 전략적 선택지를 모색하는 길이기도 했다. 세미나에는 학계와 산업계, 정책 연구기관 전문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열띤 논의를 펼쳤다.

첫 연사로는 인공지능 스타트업 포티투마루의 김동환 대표가 나왔다. 그는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한 강대국들은 기술ㆍ경제ㆍ군사 등 다방면에서 AI를 중심으로 다루는 ‘신(新)패권 경쟁 시대’에 돌입했다”며 “이 같은 경쟁에서 한국이 수동적 소비국으로 머물 경우 국가 안보와 산업 전반이 위험에 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한국은 기술력과 인재ㆍ데이터ㆍGPU인프라 등 모든 면에서 미국이나 중국에 비해 열세에 있다“며 “범용 AI 경쟁에 무턱대고 뛰어들기보다는 국내 강점을 살린 특화형 소버린 AI전략이 더 효과적”이라고 덧붙였다. 김 대표가 말하는 특화형 소버진AI는 의료ㆍ보안ㆍ반도체 등 특정 도메인에 국한된, 한국 사회에 꼭 필요한 ‘버티컬AI’ㆍ‘인더스트리 파운데이션 모델’이다.

지난 14일 오후 서울 남대문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정보세계정치학회 주최로 열린 ’소버린 AI와 한국형 AI 국가책략' 특별세미나. {사진 정보세계정치학회]
백서인 한양대 교수는 “인공지능 기술 주권은 완전한 자급자족이 아니라 전략적 자율성과 협력의 균형 속에서 달성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백 교수는 “기술 주권의 본질은 국방ㆍ사회 인프라ㆍ산업 경쟁력에 필수적인 기술을 직접 보유하거나, 믿을 만한 파트너로부터 구조적 의존 없이 조달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정의하면서 “100% 기술 자립은 불가능하며, 오히려 비효율적이다. 핵심은 의존도를 조절하고 신뢰할 수 있는 협력 체계를 갖추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백 교수는 “AI 국산화의 필요성은 분명하지만, 글로벌 스탠다드와의 격차가 지나치게 크면 오히려 경쟁력을 잃을 수 있다” 며 “특히 반도체, 조선 등 한국이 세계 1위를 유지해야 하는 산업에서는 세계 최고 수준의 AI 활용 없이는 글로벌 경쟁력을 지속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그는 “해외 빅테크와의 개방적 협력이 병행돼야 한다”며 “(소버린AI를 강조하다가) 글로벌 기업에 배타적인 태도를 취할 경우, 오히려 시장에서 고립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윤정현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박사는 한국의 지정학적ㆍ산업적 조건을 바탕으로 한국을 ‘AI 중견국(middle power in AI)’으로 규정했다. 그는 한국이 범용 모델 경쟁을 지양하고 산업별 특화형 AI 개발에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동시에 글로벌 오픈소스 생태계와 연계하는 개방형 전략, 아시아 차원의 AI 컨소시엄 구축을 통한 협력형 전략을 병행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윤 박사는 이를 통해 “AI를 안보 자산화하고 정책 자율성을 확보하며, 규범 외교를 통해 한국의 위상을 높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소버린AI 특별 세미나

맹성현 태재대 AI융합전략대학원장은 소버린AI 구축에 이원화된 전략을 제안했다. 산업계에서는 현재 기술 차원에서의 ‘소버린 AI-Ⅰ’을 실용적 접근에 초점을 두고 진행해 ①한국 문화에 특화되면서 안전하고 신뢰성을 갖춘 언어모델 구축 ②AI 중심 데이터 생태계 구축과 주권 확보 ③산업별 특화모델 개발 ④국산 AI반도체와 하드웨어 생태계 구축과 같은 네 가지 구체적 목표를 추구해야 한다고 의견을 제시했다. 맹 교수는 또 학계의 경우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High Risk, High Return)의 특성을 갖는 ‘소버린 AI-Ⅱ’를 시작하고 비중있는 노력을 할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예산을 8대2 또는 9대1 정도로 나눠, 소버린 AI-Ⅰ과 Ⅱ에 지원하되, 국책연구소가 Ⅰ과 Ⅱ의 연계를 책임지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고 구체적 전략을 제시했다.
맹 교수는 “이런 노력이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기술자, 정책 입안자, 정치권 간의 긴밀한 협력이 필수적”이라며 “AI시대의 진정한 승자는 가장 큰 모델을 만드는 자가 아니라, 가장 현명하게 AI를 활용하고 발전시키는 자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차상균 스탠퍼드 인공지능연구소 명예 석좌 연구원은 “‘소버린 AI(주권 AI)’ 논의와 관련해 선언적 구호를 넘어 실질적 역량 확보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모든 기술을 독립적으로 확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전략적으로 중요한 영역에서만 자립성을 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보세계정치학회장을 맡은 김상배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자주적 AI’ 또는 ‘주권적 AI’ 등으로 이해되는 ‘소버린AI’에 대해서는 그 개념과 목표 및 접근 방식 등을 둘러싸고 다양한 의견이 존재한다”며 “‘소버린’이라는 말에 휘둘려서 현 단계 한국의 미래 국가책략(statecraft) 차원에서 고민해야 할 문제를 놓치지 말자는 취지에서 이번 세미나를 준비했다”고 말했다.



최준호([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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