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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겨울의 행복한 북카페] 보신이란 무엇인가

중앙일보

2025.08.18 08:08 2025.08.18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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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겨울 작가·북 유튜버
여름 내내 기운을 잃었던 것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지만, 올해는 좀 요란했다. 하려던 일의 절반도 채우지 못하고 맨바닥에 뻗어버리기가 부지기수였고 여름의 한중간에는 아예 며칠을 끙끙 앓았다. 올해 유난히 더워서 그랬던 탓인지 주변 사람들도 비슷한 경험을 하는 모양이었다. 너도 그렇냐며 서로가 서로에게 위안을 얻는 대화를 여러 차례 했다. 그러고 나면 사람들은 으레 여름에는 몸보신을 해야 한다며, 밥을 잘 챙겨 먹으라는 덕담을 건넸다.

김지윤 기자
세 번의 복날이 지나갈 때마다 한 권의 책을 떠올렸다. 한승태 작가의 『고기로 태어나서』(2018). 출간된 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복날에 가장 어울리는 책을 골라야 한다면 이 책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읽은 사람이라면 닭고기와 계란을 볼 때마다 희미하게 들려오는 비명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에. 내가 어떤 사체들의 무덤 위에 서 있는지 기억해야 하기 때문에. 산란계 농장에서 일하던 저자는 쓴다. “웅 하는 소리와 함께 칼날이 천천히 돌아가기 시작했다. 누런 병아리 덩어리들이 똥과 뒤섞이는 동안에도 삐약 소리는 그치지 않았다.…양계장에서 일하기에 가장 부적합한 사람은 업보를 믿는 사람이다. 자신이 저지른 행동이 어떤 형태로든 자신에게 되돌아올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 말이다.”

여름의 건강을 위해 고기를 몇 개의 영양성분으로 치환하는 동안, 혹은 ‘몸보신’이라는 말이 지닌 신비스러운 뉘앙스를 무작정 믿는 동안, 그 고기들이 짓밟히고 뒤엉키고 비명을 지르다가 갈려서 비료가 되거나 도축되어 우리 앞에 온다는 사실은 손쉽게 은폐된다. 그 짓밟히고 뒤엉키고 비명을 지르는 가축들을 먹이고 골라내고 죽이는 노동자들이 있다는 사실 역시 함께 잊힌다. 그럼에도 인간이 고기를 먹어 왔고 먹고 있고 변함없이 먹을 것이라는 사실은 어찌나 괴로운가. 우리가 지나치게 잔혹하게 죽인 것이 우리를 보신해줄 것이라 믿으면서.

김겨울 작가·북 유튜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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