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래스카 미·러 정상회담’이 우크라이나 휴전 합의안 도출에 실패하고 다소 허망하게 끝나면서 실망스럽다는 반응이 쏟아진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스스로 ‘노딜’이란 표현을 쓰기도 했다.
2019년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 정상회담 때도 그랬다. 전 세계 수백 명의 취재진이 몰리며 큰 관심을 모았지만 북한 비핵화 담판은 어떤 합의도 끌어내지 못했다.
6년 전 하노이 회담과 이번 알래스카 회담은 언뜻 보면 닮은 듯하나 본질적으로는 완전히 다르다. 결정적 차이는 알래스카 회담이 노딜로 평가됐지만 드러나지 않은 ‘딜’이 있었을 가능성이 상당하다는 점이다. 하노이 노딜은 영변 핵시설 폐기와 대북 제재 해제의 교환이라는 ‘스몰딜’이 가능하다고 본 김정은의 오판과, 북한 내 모든 핵무기·시설 포기와 대북 제재 전면 해제를 주고받는 ‘빅딜’이 가능할 거라고 본 트럼프의 오판이 낳은 결과였다.
그에 비해 이번 알래스카 회담에서는 두 정상이 오판은커녕 철저한 계산 끝에 각자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모습이 뚜렷하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국제 사회 고립을 뚫고 최강대국 지도자의 환영 속에 자신의 위상을 한껏 과시했다. 트럼프 역시 전쟁 종식의 돌파구를 마련했다고 자화자찬하며 ‘평화 중재자’ 이미지 구축에 박차를 가하는 모습이다. 밝은 표정의 두 사람이 트럼프 대통령 전용 리무진 ‘비스트’에 동승해 10분간 단둘이 대화하는 모습은 이번 회담의 진짜 성격을 웅변하는 듯했다.
알래스카 회담을 보면서 하노이 회담을 떠올린 건 트럼프의 시선이 점점 북한을 향하는 것 같아서다. 그는 이미 여러 번 대북 대화 재개 의지를 공공연히 드러냈고, 지난달 한국 정부 대표단과의 관세 협상에서는 대뜸 김정은의 안부부터 묻기도 했다.
물론 북·미 대화 테이블이 곧장 마련되긴 어려워 보인다. 하지만 즉흥적이고 예측 불가능한 트럼프 스타일을 감안하면 상황은 언제든 돌변할 수 있다. 트럼프가 돌연 한반도를 주 무대 삼아 평화 중재자 코스프레를 하는 시나리오를 배제하기만은 어렵다. 김정은과의 친분, 노벨평화상이라는 개인적 욕망, 지정학적 환경 변화 등이 한꺼번에 맞물린다면 말이다.
마침 25일 한·미 정상회담이 잡혀 있다. 동맹의 현대화 논의와 함께 북한 문제가 주요 의제로 다뤄질 가능성이 있다. 이재명 정부가 급변하는 세계 질서 속에서 한반도 문제의 주도권을 놓치지 않으려면 있을 수 있는 모든 가능성에 더욱 면밀히 대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