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스테이블 코인(stablecoin) 가운데 하나인 USDC의 가격은 비트코인처럼 출렁이지 않는다. 발행가가 ‘1USDC=1달러’로 고정돼 있다. 다만, 실거래 현장에선 개당 0.999달러 선에서 사고 팔리기는 한다. 상당히 안정적인 흐름이다. 스테이블 코인 발행자가 보유한 달러나 단기 국채를 바탕으로 내놓아서다. 금이나 주식 등을 근거로 내놓은 상장지수펀드(ETF)와 비슷하다.
스테이블 코인은 두 얼굴 가져
개인·기업엔 새로운 투자 기회
통화당국의 관리·감독은 불가
돈세탁·탈세, 유동성 과잉 우려
최근 스테이블 코인 관련법이 기축통화국인 미국에서 제정됐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으면서다. 이후 한국과 일본 등에서 스테이블 코인을 법제화하려는 움직임이 활기를 띠고 있다. 법제화하면 국내에서도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가 열리고 투자 대상이 확대될 전망이다. 동시에 국가가 독점·관리하는 현재 화폐-금융 시스템이 전혀 새로운 국면에 들어선다. 이런 두 얼굴을 한 스테이블 코인이 일으킬 파장을 가늠하기 위해 폴 블루스틴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 펠로를 화상으로 인터뷰했다. 그는 최근 미 달러 패권이 이런저런 위기와 온갖 몰락 시나리오에도 유지되는 이유를 규명한 책 『킹 달러(King Dollar: The Past and Future of the World’s Dominant Currency)』를 내놓았다.
Q : 미 의회가 스테이블 코인 법안을 통과시켜, 한국에서도 관련 종목의 가격이 눈에 띄게 올랐다. 미지의 혜성이 지평선 위로 솟구치고 있는 느낌이다.
A : “스테이블 코인이 한국에서도 관심이라고 하니, 『킹 달러』를 쓰는 데 많은 정보와 지식을 공유해 준 한국인을 먼저 소개하고 싶다. 국제결제은행(BIS) 신현송 수석 이코노미스트다. 그의 설명을 듣기 전까지는 나는 스테이블 코인이 달러에 이로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설명을 듣고 스테이블 코인이 문제투성이란 결론에 이르렀다.”
또 다른 달러 등장
Q : 무슨 문제인가. 트럼프 대통령이 적극적으로 스테이블 코인을 제도화하지 않았는가.
A : “트럼프 행정부는 ‘전혀 걱정할 것 없다’고 큰소리치고 있다. 그들은 ‘달러를 바탕으로 한 스테이블 코인이 제도화하면, 세계가 앞다퉈 달러 스테이블 코인을 사들일 것’이라며 ‘스테이블 코인과 함께 달러가 더 많이 퍼져 나간다’고 말하고 있다. 심지어 ‘세계 모든 사람이 일상 거래에서 달러를 쓰게 된다’고 주장하고 있기는 하다.”
Q : 트럼프 주장대로 되지 않을까.
A : “얼핏 보면 맞는 말로 들릴 수 있다. 하지만 미 중앙은행이나 재무부가 스테이블 코인을 관리·감독할 수 없다. 스테이블 코인은 개인이나 기업이 디지털 가상세계(네트워크)에 개설한 지갑을 통해 송금되거나 결제가 이뤄진다. 미국이 통제할 수 없는 ‘또 다른 달러’가 탄생하는 셈이다.”
글로벌 금융그룹인 JP모건은 지난달 내놓은 보고서에서 스테이블 코인 발행 규모가 2조 달러(약 2768조원)까지 불어날 수 있을 것으로 예측했다.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이 달러 스테이블 코인이라는 게 JP모건의 전망이다. 미 정부가 모니터할 수 없는 또 다른 달러의 규모가 1조 달러 정도일 수 있다는 얘기다.
달러 패권의 구멍
Q : 또 다른 달러도 달러이다.
A : “그렇기는 하다. 그런데 또 다른 달러가 존재하면, 미국이 달러를 무기화하기 어려워진다. 미국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를 달러 중심 송금·결제 체제에서 쫓아내는 방식으로 제재했다. 스테이블 코인이 제도화하면, 국제정치 영역에서 달러라는 무기의 위력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 심지어 마약이나 범죄 조직 등이 달러 기반 스테이블 코인으로 돈세탁도 마음대로 할 수 있다. 그런데 신흥국의 통화주권은 약해질 수 있다.”
Q : 왜 신흥국 통화주권이 약해질까.
A : “한국은 독자적이고 아주 안정적인 원화 시스템을 갖고 있다. 하지만 남미 신흥국은 자국 중앙은행과 통화 시스템이 불신받고 있다. 이런 나라에선 달러 스테이블 코인이 법정화폐를 몰아내고 지배적 지위를 차지할 수 있다. 원치 않은 달러화(dollarization)다. 그 바람에 경제성장 등을 위해 통화정책을 쓸 수 없게 된다. 달러화로 일상 상거래 수준에서 구매력이 유지돼 개인으로선 좋을 수 있지만, 경제 전체(거시경제) 차원에서 보면 큰 손해다.”
버블·위기의 씨앗
Q : 지금까지는 국제적인 차원에서 스테이블 코인을 살펴봤는데, 한 나라 안에선 스테이블 코인이 어떤 파문을 일으킬 수 있을까.
A : “최근 몇 년 사이 미 정부가 장기보다는 단기 국채를 많이 발행해 자금을 빌렸다. 단기 국채가 제대로 팔려나가지 않으면 기존 국가부채를 상환하기 어렵다. 이런 때 달러 스테이블 코인을 양성화하면, 단기 미 국채가 늘어날 것으로 트럼프는 보고 있다. 그럴 수 있다. 또 스테이블 코인이 개인과 기업에 새로운 투자 기회가 될 수 있다.”
Q : 어떤 투자 기회인가.
A : “스테이블 코인을 발행하는 기업이 상장돼 있다. 기존 금융회사도 스테이블 코인을 발행할 움직임을 보인다. 스테이블 코인으로 송금-결제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회사도 등장할 것이다. 새로운 비즈니스가 열리면 자연스럽게 투자 기회도 커진다. 개별 기업이나 개인 차원에서 보면 나쁘지 않은 현상이다. 하지만 전체적인 차원에서 보면 또 다른 달러가 시중에 풀린다. 미 국채가 증가하는 만큼 스테이블 코인도 불어난다. 금융 버블과 위기 가능성이 그만큼 커진다.”
Q : 불확실성(리스크)이 상당한데, 왜 트럼프는 스테이블 코인의 제도화를 적극적으로 지지할까.
A : “재무장관 베센트는 아니지만, 스테이블 코인 지지자들이 트럼프 캠프 안에 많이 있다. 이들은 막대한 정치자금을 트럼프에게 줬다. 게다가 트럼프 자신도 꽤 많은 코인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폴 블루스틴=1951년 미국 수도 워싱턴에서 태어났다. 위스콘신대를 졸업한 뒤 로즈장학생으로 선발돼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철학과 경제학(석사) 등을 공부했다. 오랜 기간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에서 경제 저널리스트로 활동했다. 저서로는 『킹 달러』 외에도 중국과 미국의 갈등을 다룬 『균열(Schism: China, America, and the Fracturing of the Global Trading System)』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