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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자리로 보는 세상만사] 정조임금의 불면증과 백회혈

Los Angeles

2025.08.18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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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선 / 강병선 침뜸병원장

강병선 / 강병선 침뜸병원장

올해는 음력으로 6월, 유월 윤달이 있는 해입니다. 하여 그동안 가보지 못했던 선산 부모님 묘지 이장차 한국에 짧은 일정으로 다녀왔습니다. 다녀와서는 온몸에 식은땀이 나고 양쪽 관자놀이가 쑤시고 아파 이리 뒤척 저리 뒤척 더구나 시차까지 겹쳐 통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이런 통증이 멎지 않는다면 어떻게 살아갈지 두려움마저 듭니다. 마치 찜통 같은 열대야 한국의 무리한 일정으로 결국 사달이 난 것입니다.
 
통증은 내 몸이 내게 말을 거는 겁니다. 몸도 좀 쉬게 해 달라고 아우성을 치는 것입니다. 긴 문장에도 쉼표가 필요한데 내 몸의 휴식도 없이 쉼없이 달리다가 몸이 보내는 신호를 이제 느껴보고 반성 하게 됩니다.  
 
사람들은 ‘나’를 헤이리는 일에는 야박합니다. SNS로 타인과의 소통은 많은 시간을 할애하면서 스스로의 몸과 마음의 상태를 들여다 볼 시간에는 야박합니다.
 
요즘 한국의 밤은 그야말로 찜통 속입니다. 지구 온난화로 인한 해수면 온도 상승과 북태평양 고기압의 확장과 ‘구름이불 현상’이 더해져 밤에도 기온이 내려가지 않아 에어컨을 틀어도 좀처럼 잠들기 힘든 날들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열대야에는 평소 수면에 큰 문제가 없던 사람도 쉽게 불면을 겪곤 하지요. 그런데 이런 고민, 현대인만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조선시대의 임금들도 무더운 여름밤, 건강과 불면에 시달렸다는 기록이 꽤 많습니다.
 
조선의 22대 왕 정조대왕은 문무를 겸비한 성군으로 알려졌지만, 젊은 시절부터 심한 두통과 불면, 열 증상에 시달렸다고 전해집니다. ‘일성록’과 ‘승정원일기’를 보면, 정조는 종종 “심장이 두근거려서 잠들 수 없다”거나 “두통과 눈의 열감으로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는 기록을 남깁니다.
 
이에 따라 내의원에서는 정조에게 청심안, 사향환, 그리고 침 치료를 병행하며 체내 열을 내리고 심화(心火)를 안정시키는 처방을 내렸습니다. 또 여름철에는 정수리에 침을 놓아 머리로 치솟은 열을 가라앉히는 방법도 자주 활용했는데, 이 자리가 바로 백회혈(百會穴)입니다.
 
백회는 머리 한가운데 있는 혈자리로, 조선시대에도 심신이 불안하거나 열이 치솟을 때 주로 사용됐습니다. 조선 후기 의서 ‘동의보감’에도 백회혈은 “기(氣)를 모아 머리를 맑게 하고, 정신을 안정시켜 잠을 돕는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정조는 여름철이 되면 궁궐 안에 한지를 물에 적셔 천장에 걸고, 백회혈에 침을 맞으며 땀을 덜 흘리기 위한 방법까지 고민했다고 합니다. 여름철 불면은 그만큼 치열하게 관리해야 하는 문제였던 것이지요.
 
현대 한의학에서도 열로 인해 가슴이 답답하고, 생각이 많고, 쉽게 잠이 깨는 불면에는 백회혈을 중심으로 심화를 내려주고 기를 안정시키는 방법을 씁니다. 특히 열대야로 인해 머리에 열이 몰리고, 정신이 불안정해지는 경우라면 침 치료는 즉각적인 효과를 보이기도 합니다.
 
또 백회와 함께 신정혈, 안면부의 태양혈, 손끝의 열을 내리는 열성혈자리 등을 함께 쓰면 여름철 불면에 효과적입니다.
 
나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는 말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자신에게 칼끝을 겨누기보다는 자신과 잘 지내는 편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여름의 불면은 단순한 더위만의 문제가 아닐 수 있습니다. 조선의 임금들도 치열하게 관리하던 수면의 질, 이제는 여러분도 한방적인 방법으로 되찾아보시길 바랍니다. 정조대왕처럼 백회혈의 힘을 빌려, 무더운 여름밤에도 깊은 숙면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강병선 / 강병선 침뜸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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