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에서 맞벌이 부부에 추가 세금을 부과하는 제도인 이른바 ‘결혼 페널티(marriage penalty)’ 폐지 논란이 뜨겁다.
스위스의 현행 공동 과세 제도는 고소득 맞벌이 부부에게 불리하게 작용해, 미혼일 때보다 추가 부담을 적용한다. 스위스의 한 부부가 결혼 시 부과되는 세금이 연간 최대 4만 스위스프랑(약 6883만원) 늘어나게 되자 혼인신고를 미룬 사례를 파이낸셜타임스(FT)가 18일(현지시간) 소개했다.
결혼 페널티 제도는 그간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를 억제하고, 남편이 일하고 아내가 전업주부로 남는 전통적 가족 모델을 부추긴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스위스 연방대법원도 1984년 기혼자와 미혼자 간의 불평등한 세제는 위헌이라는 판단을 내린 바 있다.
이런 문제의식 속에 스위스 연방의회는 지난 6월 맞벌이 부부에 대한 공동 과세 제도를 폐지하고, 개인별 소득에 따라 세금을 부과하는 개별 과세 방안을 근소한 차이(101 대 95)로 통과시켰다. 스위스 거주자는 연방, 주, 그리고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세금을 납부하는데 통과된 방안은 연방세에만 적용된다. 정부는 이 개혁안으로 약 6만 명이 추가로 노동시장에 참여하고 국내총생산(GDP)이 1% 늘어날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기업과 보수 진영은 연방과 주 차원에서 연간 10억 스위스프랑(약 1조7204억원)의 세수 손실이 불가피하다고 경고했다. 스위스국민당(SVP), 중앙당, 복음주의 정당 등은 연합해 “행정 부담이 폭증하고 단일 소득 가구에 불이익을 주는 관료주의적 괴물”이라고 비판하며 제도 유지를 위한 국민투표를 추진 중이다. 이들은 100일 안에 5만 명의 서명을 모아야 하며, 실패하더라도 최소 8개 주(州)가 헌법 규정을 활용해 국민투표를 강제할 수 있다고 스위스 르뉴스가 전했다.
조세 문제를 넘어, 보편적인 사회 변화에 맞추기 위해 세제 개혁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많다. 무엇보다 지난 20년간 스위스 여성의 사회 진출이 크게 늘어났다. 또 제도적 허점을 피해 부유한 부부가 은퇴 전 헤어지는 '세금 이혼'이나 혼인신고 없이 결혼식만 진행하는 '가짜 결혼'이 늘어나고 있다.
스위스 여성은 1971년 참정권을 얻었고, 현재 여성 고용률은 80%를 넘는다. 하지만 정규직 비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저 수준이다.
다만 2016년에도 같은 개혁안이 국민투표에서 부결된 전례가 있어, 이번에도 보수 진영의 반대와 세수 손실 논란을 뚫고 제도 변화가 현실화할지는 미지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