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두카누가 신기에 가까운 리시브로 상대 공격을 받아내면 그의 파트너 알카라스가 환상적인 샷으로 득점을 따냈다."
여자프로테니스(WTA)는 20일 미국 뉴욕의 플러싱 메도스에서 시즌 마지막 메이저대회 US오픈의 혼합복식 1회전(16강전)과 2회전(8강전) 최고 명장면을 연출한 참가자로 카를로스 알카라스(22·스페인)와 엠마 라두카누(23·35위·영국) 조를 꼽았다. 두 수퍼스타의 만남은 이번 대회 초반 최대 관심사였다. 남자 세계 2위 알카라스의 별명은 '테니스 왕자', 여자 35위 라두카누는 '테니스 아이돌'로 불리는 차세대 스타인 데다 최근 열애설도 휩싸여서다. 남녀 단식의 상위랭커가 메이저대회 혼합복식에서 파트너를 이뤄 참가하는 모습은 보기 드물다. 128강부터 시작되는 단식에 가장 중요한 게 체력이라서다. 상위권 선수들은 대부분 단식에만 전념하면서 혼합복식은 주로 '복식 전문 선수'의 무대였다.
그런데 올해 US오픈은 다르다. 알카라스-라두카누 조 외에도 노바크 조코비치(38·남자 7위)-올가 다닐로비치(24·여자 41위·이상 세르비아) 조, 이가 시비옹테크(24·여자 2위·폴란드)-카스페르 루드(27·남자 12위·노르웨이) 조, 제시카 페굴라(31·여자 4위)-잭 드레이퍼(24·남자 5위·이상 미국) 조 등 메이저 남녀 단식 우승자들이 대거 출전했다.
대회를 주최하는 미국테니스협회(USTA)가 혼합복식 경기 방식을 대폭 손질한 덕분이다. 우선 기존 20만 달러(약 2억8000만원)에 불과했던 우승 상금을 100만 달러(약 14억원)로 크게 늘렸다. 경기 일정도 20~21일에 치르기로 하면서 24일부터 열리는 단식 본선에 대한 체력 부담을 최소화했다. 출전팀은 32개 조에서 16개 조로 줄였다. 주최 측은 "메이저 단식 24승을 기록 중인 조코비치는 네 번만 이기면 혼합복식 우승 트로피도 추가할 수 있다"며 달라진 혼합복식의 매력을 전했다.
경기 형식도 한결 간결해졌다. 세트 점수를 획득하는 데 필요한 게임 포인트를 6점에서 4점으로 낮췄다. 또 2세트까지 승부를 가리지 못하면 3세트를 10점 타이브레이크로 치르도록 했다. 다만, 결승전에서만 1, 2세트에서 6점 승부를 펼친다. 이날 치러진 12경기(16강 8경기, 8강 4경기) 대부분이 1시간 안에 끝났다.
규정 대폭 손질한 주최 측의 결정은 흥행몰이로 이어졌다. AP는 "지난해 혼합복식 경기장은 관중석이 텅 비어있다시피 했으나 올해는 스타들을 보러 온 팬들로 북적였다"고 보도했다. 뉴욕 포스트는 "1만4000석의 경기장엔 발 디딜 틈 없었다"고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WTA는 "코트에 '별'이 가득했다. 위대한 선수들이 호흡을 맞추는 모습을 보기 위해 팬들이 몰려들었다"고 했다.
다만, 변화가 종목의 정통성을 훼손한다며 비판도 나온다. 단식 선수들이 체력적 부담 없이 하루에 두 경기나 소화하는 이번 혼합복식을 두고 여자 단식 선수 카롤리나 무호바(28·12위·체코)는 "마치 시범경기 같다"고 꼬집었다. 실제로 알카라스-라두카누 조, 조코비치-다닐로비치 등 기대를 모은 스타 선수 대부분은 1라운드 탈락했다. 스타들보다 벌이가 적은 복식 전문 선수들이 설 자리를 잃을 수도 있다는 우려도 있다. US오픈 혼합복식에서 3차례 우승한 제이미 머리(영국)는 BBC를 통해 "100만 달러 상금이 이미 엄청나게 벌고 있는 선수들이 차지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