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가지 먼저 말씀을…오늘 이 자리에서도 이번 사안을 내란죄다, (저를) 내란의 동조자다…. "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 불려 나온 이상민 당시 행정안전부 장관(이하 경칭 생략)은 답변 단상에 서기 전부터 이렇게 맞섰다.
“사과를 하고 시작해요!” (김성회·더불어민주당)
야당 소속 위원들이 소리를 지르며 말을 막았지만, 이상민은 계속 이어갔다. 계엄에 대한 비난 여론이 빗발쳤고, 국회에 군 장성들이 줄줄이 불려 나와 눈물을 흘리던 즈음이었다. 하지만 그는 달랐다.
" …내란의 피혐의자다라고 표현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좀 더 신중을 기해 주셨으면 합니다.(이상민) "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야당 의원들이 앉은 자리에서 일제히 고성이 터져 나왔다.
“뭘 신중하라 합니까?”(채현일·민주당)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거예요?”(모경종·민주당)
“뭘 신중히 얘기합니까?”(박정현·민주당)
“계엄령이 신중하지 않았는데 뭐가 신중히 해요!”(용혜인·기본소득당)
하지만 이상민의 태도는 바뀌지 않았다.
" 지금 내란의 피의자를 이 자리에 소환한 것이 아니고 행정안전부 장관을 부르신 것이라면 장관으로서 답변을 하도록 하겠습니다.(이상민) "
“지금 본인들이 무슨 일을 했는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모르는 겁니다.”(정춘생·조국혁신당)
그는 장관 자리를 스스로 내려놓은 이후에도 야당에 대한 완강한 자세를 바꾸지 않았다. 올해 초 열린 내란 혐의 진상규명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그는 출석 증인 중 유일하게 자리에 앉은 채 증언 전 선서를 거부했다. “수사 중인 사안에 대한 혼란을 막기 위한 것”이라는 이유를 댔지만, 사실상의 항의 표시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반면 검찰 업무를 관장하는 박성재 법무부 장관은 오른손을 올려 선서했다.
이상민의 ‘저항’은 본인의 소신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버텨야 한다는 임무를 수행했던 걸까. 그것도 아니라면, 자신을 지극 정성으로 아꼈던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의리 때문이었을까.
19일 내란 특검팀(특별검사 조은석)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고, 재난으로부터 보호할 책무가 있는 행안부 장관이 윤석열 전 대통령을 우두머리로 하는 국헌 문란 목적의 폭동에 가담했다”며 그를 구속기소 했다. 이상민의 신분은 그렇게 바뀌었다. 급격한 내리막길이었다.
윤석열 정부 초기 “대통령의 최측근이 누구냐”는 질문이 나올 때부터 이상민은 늘 한동훈 당시 법무부 장관과 함께 유력 후보에 올랐다. 물론 주류 검사들의 모임인 ‘우검회’에서 정을 다진 한동훈이 늘 이상민보다 한 발짝 앞서 1순위 ‘찐윤’으로 거론됐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윤석열의 곁을 지키다 옥살이까지 함께한 측근 명단엔 한동훈이 아닌 이상민이 남게 됐다.
정권 초기에도 윤석열이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을 정도로 가까운 대상은 한동훈이 아니라 이상민이라는 얘기가 있었다. 지난 정부 당시 국무회의 전후 상황을 청취할 수 있는 자리에 있던 정부 관계자 B의 전언을 재구성해보면 이렇다.
용산 대통령실에서 오전 국무회의가 있던 날, 회의가 끝나고 일어서는 국무위원들과 가벼운 대화를 하며 헤어지는 윤석열. 문 앞에서 이상민과 눈이 마주치면 이렇게 말한다.
“오후에 뭐해?”
“아 네. 세종시에 가보려고요.”(이상민)
행안부 본관이 있는 세종시에 간다는 건 특별한 외부 일정 없이 제 자리로 복귀한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