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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재의 마켓 나우] 혁신의 데자뷔, 클린턴 시대에서 코인까지

중앙일보

2025.08.20 08:06 2025.08.20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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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재 미 퍼먼대 경영학 교수·『관세 이야기』 저자
1990년대 초 앨 고어 미국 부통령은 ‘정보고속도로’ 구축을 제안했다. 가정과 기업을 광섬유로 연결해 온라인TV·홈쇼핑·이메일·데이터전송이 가능한 세상을 만들자고 역설했다. 당시 일반인들에게는 이메일과 온라인 쇼핑 개념이 생소했지만, 정보통신업계는 거액을 동원해 정치권 로비를 벌였다.

1996년 미 의회는 ‘정보통신법’을 압도적 찬성으로 통과시켰다. 빌 클린턴 대통령은 2월 8일 디지털 펜으로 법안에 서명함으로써 디지털 시대의 도래를 상징적으로 알렸다. 이로써 인터넷 발전을 가로막던 각종 규제 장벽이 제거됐다. 미래를 읽은 실리콘밸리는 활발한 투자로 정보통신과 컴퓨터 기술의 융합을 가속했다.

광대역 인터넷망을 타고 각종 오프라인 서비스가 온라인으로 이동하자, 클린턴은 규제 완화 범위를 금융업으로 넓혔다. 1999년 그램-리치-블라일리법(GLB Act) 서명으로 60년 넘게 금융업종 간 상호 진입을 막던 규제를 없앴다. 은행·증권·보험을 한 지붕 아래 아우르는 유니버설 뱅킹이 우후죽순 늘어났다. 인터넷이 확산하자 금융 서비스의 온라인 제공이 대세로 자리 잡았다. 클릭 몇 번으로 예금과 증권 거래가 가능한 시대가 열렸다. 온라인 서비스가 일상화되면서 핀테크 산업도 빠르게 성장했다. 핀테크 기업들은 기존의 은행 서비스가 미치지 못하는 틈새시장을 파고들었다. 규제 공백을 틈타 유사금융업인 ‘그림자 금융(shadow banking)’이 판쳤다. 21세기 초 월가는 금융의 디지털화를 무기로 막대한 수익을 창출했다.

김지윤 기자
최근 미 의회는 클린턴 시대에 버금가는 시스템 변화를 가져올 중요 법안을 심의하고 있다. 지난 7월 하원은 ‘지니어스법(GENIUS Act)’을 통과시켜 가상화폐의 일종인 스테이블 코인을 제도권으로 편입했다. 은행 계좌에서 달러를 인출해 동일한 가치의 스테이블 코인으로 전환해 예금하는 일이 일상화될 날이 머지않았다. 달러 연동 스테이블 코인은 블록체인 기반 가상공간인 ‘온체인(on-chain)’ 생태계에서 사실상 기축통화로 기능할 전망이다.

상원에서 계류 중인 ‘클래리티법(Clarity Act)’까지 통과되면 스테이블 코인은 토큰화된 증권이나 부동산 등 각종 자산에 대한 투자 수단으로 사용될 것이다. 21세기 초 온라인 뱅킹이 혁신을 가져왔듯이, 탈중앙화 금융(DeFi)이 거대한 변혁을 불러올 것이다.

문제는 혁신의 이면에 존재하는 규제 사각지대다. 기술 발전에 취해 규제를 소홀히 하면 온라인뱅킹 확산 과정에서 발생한 2008년 서브프라임 위기의 전철을 되풀이할 수 있다. 번영과 파멸은 한 끗 차이다. 클래리티법의 규제 안전장치 마련을 주시해야 하는 이유다.

김성재 미 퍼먼대 경영학 교수·『관세 이야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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