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편의 애니메이션이 벌써 두 달째 전 세계 대중문화계에 거대한 돌풍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그 제목은 ‘케이팝 데몬 헌터스’, 줄여서 ‘케데헌’ 혹은 ‘케데몬’이라고도 합니다(영미권에서는 KPDH 혹은 KDH).
2025년 6월 20일에 개봉한 뒤 8월 10일까지 누적 시청수 1억 8460만으로 넷플릭스 역대 영화 순위 2위에 올랐으며, 8월 15일에는 63개국에서 일간 순위 1위를 기록했습니다. 추세로 보아 다음 주인 8월 24일 주에는 역대 영화 순위 1위를 달성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렇게 되면 넷플릭스 역대 TV 순위 1위인 ‘오징어 게임(시즌1)’과 어깨를 나란히 하겠군요.
‘케데헌’ 세계 영화·음악계 휩쓸어
‘국뽕’ 도취, 과도한 비난 모두 금물
산업 못지않게 창작적 측면 중요
케이팝과 퇴마 이야기 결합 주효
뿐만 아니라 이 애니메이션의 OST 앨범도 전 세계의 대중음악계를 휩쓸고 있습니다. 타이틀곡 4곡 중 하나인 ‘골든(Golden)’은 세계 대중음악의 양대 차트 중 영국의 오피셜 싱글 차트에서 싸이의 ‘강남스타일’ 이후 최초로 1위에 오른 케이팝 곡이 되었고 빌보드 Hot 100 차트에서는 방탄소년단의 곡들 이후 최초로 1위에 오른 케이팝 곡이 되었으며 두 차트 동시 1위로는 케이팝 최초입니다. 뿐만 아니라 앨범의 오리지널곡 9곡이 모두 빌보드 Hot 100에 진입했으며 이번 주에는 그 중 3곡이 톱10에 동시 진입하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이 애니메이션이 그리는 것은 퇴마사가 악령을 퇴치하는 이야기로서 장르상으로 판타지, 그 중에서도 현대 혹은 근미래의 도시를 배경으로 초능력, 마법, 요괴, 몬스터, 이종족 등이 등장하는 어반(urban) 판타지에 속합니다. 사실 퇴마 이야기 자체만으로는 특별할 게 없습니다. 케데헌이 특별한 것은 그 퇴마사가 케이팝 아이돌 걸그룹이라는 설정에 있습니다.
이 설정에 따라 한국이 배경이 되었고 서울 거리, 남산 서울타워, 성곽길, 한국음식, 태권도, 무속, 한국 민화 속의 호랑이와 까치, 한복, 갓 등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다양한 한국 문화가 등장하는데 그 묘사가 비교적 정확합니다. 케데헌의 세계적 흥행을 이러한 케이문화의 묘사와 연관지어 이른바 ‘국뽕’에 취하는 반응이 나오는 것도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하지만 너무 ‘국뽕’에 취하기만 해서는 안 되겠죠.
반면에, 이 애니메이션을 소니가 제작하고 넷플릭스가 배급과 투자를 맡았다는 점에 주목하여 돈은 일본과 미국이 벌고 한국은 이용만 당한 것이라는 비난도 있습니다. 이러한 비난에도 나름 일리가 있겠지만 케데헌의 흥행을 통해 케이문화가 널리 홍보된다는 이로운 점도 무시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또 제작과 투자, 배급이라는 산업적 측면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혹은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각본, 감독부터 아트디렉터, 성우까지를 누가 맡았으며 OST의 작사, 작곡, 편곡부터 가창, 안무까지를 누가 했는가 하는 창작적 측면입니다. 살펴보면 그 중 다수가 한국인이거나 한국계 캐나다인,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케이문화에 친숙하고 케이팝의 흐름 속에서 활동해온 사람들입니다. 예를 들어 매기 강 감독은 어렸을 때 캐나다로 이민을 간 한국계 캐나다인이며, 타이틀곡 ‘골든’의 작사, 작곡, 가창에 참여한 재미교포 이재는 한국의 대형기획사 SM 연습생 출신이고 이미 ‘사이코’ ‘아마겟돈’ ‘드라마’ ‘스타리 나잇’ 등의 케이팝 히트곡 작곡에 참여한 경력이 있습니다. 물론 더욱 중요한 것은 케데헌의 OST 곡들이 케이팝의 음악적 특성을 뚜렷이 띠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케데헌에서 제가 특히 주목하는 것은 이야기와 노래의 결합 방식입니다. 여기서 노래는 대사를 대신하는 음악적 수단이 아니라 노래 자체로서 이야기의 일부가 되고 있습니다. 노래가 사람들의 영혼에 작용을 한다는 설정입니다.
극 중의 3인조 걸그룹 헌트릭스의 노래가 수많은 사람을 감동시키면 영혼의 공명이 일어나고 그 공명들이 모여 혼문(魂紋), 즉 영혼의 무늬라는 이름의 결계(혹은 역장)를 이루며 이 결계가 인간의 영혼을 빼앗아가려 하는 악령들이 인간 세계로 침입하지 못하도록 막습니다. 이는 굿을 하는 무당과 무가의 어반 판타지적 재해석이라고도 할 수 있고 케이팝과 케이팝의 팬덤문화에 대한 비유적 묘사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이 결합이 케데헌 성공의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케이팝 음악과의 결합 없이 퇴마 이야기만으로는, 마찬가지로 케이문화 배경의 퇴마 이야기 없이 노래만으로는 이런 놀라운 흥행을 이룰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이 애니메이션과 이 애니메이션이 불러일으킨 케데헌 신드롬의 진정한 주인공은 다름 아닌 케이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