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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정완 논설위원이 간다] 부산·경남, 대전·충남 통합? 정책 우선순위서 밀렸다

중앙일보

2025.08.20 08:24 2025.08.20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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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행정체제 개편 논의의 현주소
주정완 논설위원
지난달 22일 오후 부산시 사상구 덕포동의 부산도서관 모들락극장. 시민 2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부산·경남 행정통합 시·도민 토론회’가 열렸다. 지역 경쟁력 강화를 내세워 부산·경남의 행정체제를 합치자고 주장하는 행정통합 공론화위원회가 주최한 행사였다. 공론화위는 이달 말까지 여덟 차례에 걸쳐 부산·경남 지역을 돌아가며 토론회를 열고 있다.

이날은 부산 서부 권역을 대상으로 하는 토론회였다. 박재율 공론화위원회 대변인이 토론회 발제자로 마이크를 잡았다. 박 대변인은 “행정통합이 이뤄지면 부산(325만 명)과 경남(322만 명)을 합쳐 총인구 647만 명의 초광역권을 형성한다. 지역 내 총생산으로는 부산(114조원)과 경남(137조원)을 합쳐 총 251조원의 경제 규모를 달성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부산·경남 통합으로 남부권에 ‘경제수도’를 건설하면 국가 균형발전을 선도하는 성공 사례를 제시할 수 있다. 그렇게 지방소멸 위기에 공동 대응해 지역 주민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부산·경남 합쳐 ‘경제수도’ 건설”
지역 경쟁력 내세워 통합론 주장

이명박 정부 때는 ‘도 폐지’ 추진
정치 이해관계 엇갈려 결국 무산

새 정부 과제에 행정통합은 빠져
“지역 간 협력이 통합보다 중요”

부산·경남 행정통합 공론화위원회는 8차에 걸쳐 통합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토론회를 열고 있다. 사진은 지난달 1일 부산시 동구 아스티호텔에서 열린 제1회 토론회의 모습. [사진 부산시]
토론자로 나선 박재욱 신라대 행정학과 교수는 부산·경남을 출발점으로 하는 북극항로 시대를 열기 위해서도 행정통합이 긴요하다는 주장을 폈다. 박 교수는 “북극항로 시대에 대응해 동남권(부산·울산·경남)의 전략적 발전 방안이 시급하다. 그러나 3개 시·도가 분절된 행정체계 아래에선 잠재력을 온전히 발휘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또 다른 토론자인 강혜란 사상구 지방시대위원장은 “통합 자체가 목적이 돼선 안 되고 실질적 주민 삶의 개선과 지역 경쟁력 제고가 전제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130년 묵은 도 중심 행정체제
내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각 지역에선 행정체제 개편을 둘러싼 요구가 속출하고 있다. 부산·경남과 함께 대전·충남, 대구·경북에서도 행정통합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행정통합 찬성 측에선 순조롭게 통합이 이뤄진다면 내년 지방선거에서 통합 자치단체장을 선출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에 주민 공감대 형성이나 주민투표 실시 등에 필요한 시간이 촉박해 현실적으로 내년 선거 이전에 통합은 쉽지 않다는 관측도 있다.

사실 지방 행정체제 개편은 한국 사회의 해묵은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조선 말부터 130년가량 이어진 지방 행정체제가 시대의 변화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주장이 학계를 중심으로 꾸준히 나온다. 현재와 같은 도 중심의 행정체제는 조선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조선 초기 태종 13년(1413년)에는 국토를 여덟 개의 도로 나눴다. 갑오개혁 직후인 고종 33년(1896년)에 경상·전라·충청·평안·함경도에서 남도와 북도를 분리해 종전의 8도를 13도로 바꿨다.

해방 이후에는 부산(1963년)을 시작으로 대구(1981년)·인천(1981년)·광주(1986년)·대전(1989년) 등 다섯 개의 직할시를 설치했다. 직할시는 중앙정부가 직접 관할하는 도시라는 뜻이다. 1990년대에는 지방자치를 본격적으로 시행하면서 직할시를 광역시로 바꿨다. 이후 울산(1997년)이 광역시로 승격하고 세종(2012년)이 특별자치시가 되면서 17개 광역 시·도 체제가 만들어졌다.

19년 전 국회 특위 “도 폐지하자”
한때 정치권에선 광역자치단체인 도를 폐지하는 방안을 긍정적으로 검토했다. 현재의 광역 시·도 통합 논의와는 정반대 방향이다. 노무현 정부 때인 2005년에는 여야 합의로 국회 지방 행정체제 개편 특별위원회를 구성했다. 이듬해인 2006년 2월 국회 특위가 채택한 보고서는 도를 폐지하고 기초자치단체인 시·군·구를 통합해 전국을 70여 개의 광역시로 개편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광역·기초자치단체 구분으로 인한 낭비와 비능률을 제거해 행정의 효율성을 높이자는 취지였다.

당시 특위 위원장을 맡았던 허태열 의원(한나라당)은 “여야 합의로 보고서를 채택한 것은 정치적·역사적으로 상당한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보고서 발표 이후 실질적인 진전은 없었다. 정치권의 관심이 눈앞의 선거에 쏠리면서 행정체제 개편 논의도 사실상 실종돼 버렸다.

2008년 2월 이명박 대통령 취임 이후에는 중앙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섰다. 이명박 정부는 도 폐지와 지방행정 효율화를 골자로 한 지방 행정체제 개편을 추진했다. 이 대통령은 취임 첫해인 2008년 10월 국회 시정연설에서 “지금의 지방 행정체제는 구한말 농경문화 시대에 그 골격이 짜였다”며 “인구 규모와 구조 변화, 교통·통신 발달 등을 반영해 지방 행정체제를 다시 짤 때가 됐다”고 강조했다. 이후 여야 의원들이 잇따라 관련 법안을 발의하고 국회 특위가 재구성되면서 행정체제 개편 논의가 다시 활기를 띠었다. 그러나 정치적 이해관계가 엇갈리면서 결국 도 폐지는 없었던 일이 됐다.

김경수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주민 의사 반영을 전제로 한 지방 행정체제 통합 추진을 대선 공약으로 제시했다. 하지만 취임 이후에는 행정통합이 정책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리는 분위기다. 지난 13일 국정기획위원회의 국정과제 발표에선 행정통합이 빠졌다. 대신 ‘5극3특과 중소도시 균형성장’이 국정과제로 들어갔다. 여기서 5극은 5대 초광역권(수도권, 부산·울산·경남의 동남권, 대구·경북권, 충청권, 호남권), 3특은 세 곳의 특별자치도(제주·강원·전북)를 가리키는 말이다.

국가 균형발전 정책을 주관하는 대통령 직속 지방시대위원회의 김경수 위원장도 행정통합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다. 김 위원장은 지난 18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지금은 인위적으로 행정통합을 시키려고 하는 경우들이 있는데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꼬리가 몸통을 흔들게 돼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행정통합도 추진할 수 있으면 추진해라. 그렇지만 초광역 단위로 경제권과 생활권을 만드는 협력 사업이 훨씬 중요하다”고 말했다. 각 지역의 자율적인 행정통합 추진에 반대하진 않겠지만, 중앙정부가 적극적으로 지원하지도 않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결국 행정통합의 성패는 주민들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관심을 갖고 지지 의사를 표시하느냐에 달렸다. 하지만 통합 찬성 단체 등을 제외한 일반 주민들에게선 별로 열기가 느껴지지 않는 게 현실이다. 부산·경남 행정통합 공론화위는 지난 12일로 예정했던 ‘행정통합 인지도 조사 결과 브리핑’ 일정을 취소하기도 했다.

대전·충남에선 주민투표 대신에 지방의회 의결로 행정통합에 필요한 절차를 진행 중이다. 이미 대전시의회와 충남도의회에선 다수당인 국민의힘 주도로 통합 찬성 의견을 채택했다. 반면에 더불어민주당 소속 시·도의원들은 반대 입장을 밝혔다. 통합 찬성 측은 조만간 국회에 행정통합 특별법안을 제출할 계획이다. 하지만 국회 다수 의석을 차지한 민주당이 반대하는 상황에서 법안 통과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전주·완주도 통합 논의…찬반 주민 간 갈등 심해
완주·전주 통합에 반대하는 완주 군민들이 지난달 23일 전북도청 기자회견장에서 통합 반대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시스]
기초자치단체 중에선 전북 전주시와 완주군의 행정통합을 둘러싼 주민 갈등이 심상치 않은 상황이다. 김관영 전북지사와 우범기 전주시장은 전주·완주의 통합 추진에 적극적으로 나섰지만, 완주군에선 부정적인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지난 6월에는 김 지사가 주민과의 대화를 위해 완주군청을 찾아갔다가 통합 반대 측 주민들의 저지로 문전박대를 당하기도 했다.

유희태 완주군수는 지난달 말부터 관내 13개 읍·면을 돌며 ‘완주·전주 통합 찬반 바로 알기 설명회’를 열었다. 지난 13일 소양면 행정복지센터에서 열린 설명회에서 유 군수는 “2013년 통합 찬반 주민투표 때 얼마나 시끄럽고 다툼이 많았는지 잘 알지 않느냐. 군민 갈등을 부추길 수 있는 주민투표를 성급하게 추진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날 질의응답 시간에 통합 찬성 단체 회원이 발언하려고 하자, 통합 반대 측 주민이 반발하면서 거친 몸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통합 찬성 측에선 전주·완주의 통합이 이뤄지면 ▶지역 거점 도시 기능을 강화하고 ▶상생 협력사업을 공동 추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반대 측에선 ▶주민 분열과 갈등이 우려되고 ▶통합으로 인한 혜택은커녕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다고 맞선다. 유 군수는 먼저 군민 여론조사를 하고 그 결과에 따라 주민투표를 할지 말지 결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완주군에 따르면 통합 반대 건의서를 낸 주민 수(3만2785명)가 통합 찬성 건의서를 낸 주민 수(6152명)의 다섯 배 이상으로 많았다.

두 지역의 통합은 1997년 이후 세 차례에 걸쳐 시도됐다. 하지만 완주군민의 반대로 번번이 무산됐고 이번이 네 번째 시도다. 박근혜 정부 때인 2013년 6월에는 주민투표까지 했다. 당시 완주군 투표자의 과반수(55.3%)가 전주시와의 통합에 반대표를 던졌다.




주정완([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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