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7월 중순 수해 피해가 발생한 후, 현재까지 총 14번 수해 피해 현장을 찾았다. 푹푹 찌는 7~8월의 3분의 1을 수해 현장에서 보낸 셈이다. 지난 19일엔 청도에서 열차사고가 발생하자 곧장 대책 마련을 지시하고, 밤 9시에 빈소를 찾기도 했다. 정치권에선 “당 대표가 이렇게까지 현장을 자주 찾는 건 보기 드문 일”이란 반응이 나왔다.
정 대표의 ‘현장 집착’은 민주당 전당대회 기간 동안에도 유별났다. 광주지역에 하루 400mm가 넘는 기록적 폭우가 쏟아진 지난달 17일부터 27일까지, 하루를 빼고 매일 수해 현장을 찾았다. 민주당 대표 후보자 2차 TV토론이 있는 27일엔 새벽 5시 48분 기차를 타고 광주광역시에 내려가 고추밭 비닐하우스를 치웠다.
8월 2일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로 선출된 다음날 첫 일정으로 꼽은 곳도 전남 나주시 노안면 수해 피해 현장이었다. 검은 팔토시에 노란 형광조끼, 검정 장갑으로 채비를 갖춘 채 차량에서 내린 정 대표는 1시간가량 말없이 상한 오이와 폐비닐을 걷어냈다. 남색 작업복 하의와 장화가 흙먼지로 뒤덮였다. 당시 체감온도는 35도에 달했다.
정 대표와 수해 복구를 함께해온 한 의원은 “안 그래도 검은 얼굴이 더 벌겋게 익었더라”며 혀를 내둘렀다.“정 대표야 몸이 튼튼하기로 유명하니 척척 일을 잘 하지만, 수해 현장에 내려가던 중 피로가 누적되어 KTX에서 응급실로 실려 간 의원도 있다”고도 했다. 최근 정 대표는 수해 현장을 다니며 검게 탄 얼굴을 메이크업 해줄 사람을 섭외할까 고민하기도 했다고 한다.
정 대표가 농촌 지역의 수해 피해 현장에 하루가 멀다하고 달려가는 배경을 측근들은 그의 어린 시절에서 찾는다. 정 대표와 가까운 한 민주당 초선 의원은 “정 대표는 농부의 아들이니 가슴이 무척 아플 것”이라며 “그래도 수해 복구를 하며 땀을 흘리고 나면 그렇게 좋아라 한다”고 전했다. 정 대표는 지난 3일 수해 피해를 입은 농장주를 찾아 “농부의 심정이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잘 모른다”며 “아버지도 농사를 지어서 제가 (그 마음을) 조금 안다”고 말하기도 했다.
정 대표는 ‘산이 깊고 돌이 많아’ 돌막이라고 불리던 주민 100여명의 작은 농촌 마을(충남 금산군 진산면 석막리)에서, 10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노동이 몸에 밸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정 대표 스스로도 “반공일과 공일에는 어김없이 논밭 일을 해야 했던 꼬마”(2021년 정청래 페이스북)로 유년기를 회상할 정도다. 어린이날 “냄새나는 푸세식 변소의 거름을 지게에 지고 산 하나를 넘으며”(2021년 정청래 페이스북) 서러움에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정 대표가 ‘당원주권주의’를 외치며 정치적 체급을 키웠다는 점도 ‘현장 집착’의 배경이란 분석이 나온다. 국회의원 조직이 아닌 일반 평 당원의 지지로 대표에 당선된 정 대표인 만큼 현장 스킨십에 집중한다는 것이다. 정 대표의 현장 행보는 연일 “국민의힘은 10번 100번 정당해산감”(22일 민주당 최고위원회의)라고 외치는 대립적 언어와도 맞물려 일정한 효과를 보고 있다는 게 민주당 내부의 평가다.
22일 발표된 한국갤럽 여론조사(지난 19~21일 전국 만 18세 이상 1400명 대상)에 따르면 민주당의 정당지지도는 지난주 41%에서 44%로 3%포인트 상승했고, 광주·전라권 정당지지도는 70%를 기록했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수해 복구 현장이 주로 호남권인데, 최근 정 대표가 호남발전특위 설치 등 호남에 공을 들이고 있다”며 “호남 공략은 전통적인 민주당 대권 주자의 스텝”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