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유일의 동물원 ‘삼정더파크’의 매매대금 지급 청구소송이 5년째 이어지면서 죽거나 병든 동물이 늘고 있다. 2020년 폐업한 삼정더파크는 매수권을 놓고 운영사인 삼정기업과 부산시가 소송 중이다. 이 과정에서 동물들이 방치돼 지자체가 적극적으로 동물 관리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24일 부산시에 따르면 삼정더파크 내 동물은 폐업하기 전 2019년 개체 수 158종 950마리에서 폐업 이후 2020년 말 기준 141종 548마리로 줄었다. 지난해 12월 기준으로 121종 484마리가 남았다. 폐업 전과 비교하면 5년 만에 동물 수가 절반가량 줄었다.
국제적 멸종위기종도 폐사했다. 2022년 12월 기준 39종 121마리이던 것이 올해 4월 기준 34종 89마리로 2년 4개월 만에 32마리 폐사했다. 이 중에는 국제적 멸종위기종 CITESⅡ에 해당하는 망토개코원숭이와 과나코가 포함됐다. CITESⅡ는 국제거래를 엄격하게 규제하지 않으면 멸종위기에 처할 우려가 있는 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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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업 이후 5년 만에 동물 절반 죽어…생존 동물도 방치
생존한 동물들도 국내 다른 동물원과 교류가 되지 않아 근친교배를 하거나 짝이 없는 채로 홀로 방치된 상태다. 삼정더파크에 근무하는 사육사 13명은 남아 있는 동물에 대한 책임감으로 최저임금을 받으면서 근무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사육업계 한 관계자는 “폐장 상태라 부산시나 다른 동물원의 지원을 받기 어려운 상태”라며 “조속히 개장해 동물 교류부터 환경 개선, 의료·영양 등 관리 수준을 향상해야 한다”고 말했다.
부산시는 소송이 진행 중이고, 운영 주체가 민간이라는 이유로 적극적인 지원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부산시는 운영사인 삼정기업이 반얀트리 화재 사고로 지난 2월 기업회생을 신청하는 등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자 예비비 1억6000만원을 들여 지난 5월부터 먹이를 공급하고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10월이면 예산이 고갈된다.
부산시 관계자는 “10월 말까지 먹이를 공급하고 난 이후 상황에 대해 삼정기업과 현재 협의 중”이라며 “운영권은 삼정기업이 갖고 있어서 부산시가 시설 개선이나 인건비 지원 등은 불가하다”고 말했다. 이어 “파기환송된 매매대금 청구소송이 마무리되고, 소유권이 명확하게 결정돼야 부산시의 다음 행보를 결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동물단체는 부산시가 동물 보호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요구한다. 심인섭 라이프 대표는 “허남식 전 부산시장 재임 당시 치적을 쌓기 위해 졸속으로 2014년 삼정더파크를 개장시켰다”며 “예상보다 관람객이 적어 만성 적자에 시달리다 6년 만에 문을 닫았다”고 주장했다. 이어 “부산시의 졸속 행정으로 동물들이 피해 보는 상황이 발생했으니 소송과 별개로 부산시가 동물 생명을 보호할 수 있는 지원책을 적극적으로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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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매대금 청구소송 대법원서 파기환송…9월 25일 첫 변론
부산에 유일했던 동물원이 표류한 역사는 2000년대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5년 10월 성지곡 동물원이 폐업한 후 시행사인 ‘(주)더파크’가 재개장을 추진했으나, 시공사 부도와 설계 변경 등으로 난항을 겪다 2010년 공사가 중단됐다. 부산시는 좌초하던 동물원 조성 사업 정상화를 위해 2012년 삼정더파크와 3자 협약을 체결했다. 협약에는 삼정이 대출로 자금을 조달해 1년 이내로 동물원을 준공하고, 3년 안에 운영사 요청이 있을 때 부산시가 최대 500억 원을 지급해 동물원을 인수해야 한다는 조항이 포함됐다.
삼정기업은 재정비를 거쳐 2014년 ‘삼정더파크’ 동물원을 개장했고, 2020년까지 적자를 보며 6년간 운영했다. 삼정기업 측은 2012년 맺은 협약을 근거로 부산시에 동물원 매수를 요구했지만, 부산시는 부지 내 사권 설정 등을 근거로 매수를 거부했다. 삼정기업은 부산시를 상대로 500억원 매매대금 지급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고, 1심에서 패소했다. 항소는 기각됐다.
하지만 지난 7월 18일 대법원은 원심을 깨고 사건을 부산고법으로 돌려보냈다. 파기환송심 첫 변론기일은 오는 9월 25일이다. 부산시 관계자는 “향후 파기환송심을 통해 다퉈야겠지만, 삼정기업 측의 매수 청구를 승낙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고 판단될 경우 이를 받아들이는 방향으로 검토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