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전주·완주혁신도시에 있는 농촌진흥청이 일부 핵심 연구 조직과 인력을 다시 경기도 수원으로 이전하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2015년 수원에서 농진청 본청과 국립농업과학원·국립식량과학원·국립원예특작과학원·국립축산과학원 등 소속 기관까지 전북으로 옮긴 지 10년 만이다. 그러나 이전 대상이 ‘농생명 수도’를 표방하는 전북특별자치도 전략 산업인 식품과 바이오(생명) 분야인 데다 지역 정치권을 중심으로 “이재명 정부의 균형 발전 기조에 역행하는 조치”라고 반발하자 농진청이 “재검토하겠다”며 한발 물러났다.
24일 전북도 등에 따르면 농진청은 지난 2월 업무·연구 효율성과 전문성 강화를 내세워 조직 개편에 착수했다. 농진청 푸드테크소재과(전 기능성식품과)·식생활영양과 등 일부 조직과 직원 40여명을 오는 11월부터 수원에 있는 국립식량과학원 중부작물부로 단계적으로 이동시키는 게 핵심이다. 대신 기존 중부작물부를 폐지하고 전북혁신도시 내 국립식량과학원 완주 본원에 ‘기초식량작물부’를 신설하는 내용 등이 개편안에 포함됐다. 농진청은 업무 조정의 일환이라고 설명한다. “조직 기능을 통합·조정하면서 작물 병해충과 재배 환경 연구 기능은 전주로, 민간과 협업이 필요하고 소비자와 밀접한 식품 연구 기능은 수원으로 옮겨 상호보완적인 연구체계를 마련하려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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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도민 분노” 반발…농진청 “우려 고려해 재검토”
하지만 전북 지역 반대 여론은 거세다. 전북도의회는 지난 20일 성명을 내고 “수도권 집중 완화와 지역 균형 발전을 이루려는 정부 기조를 거스르는 행위”라며 “전북도민과 농민에게 깊은 상실감과 분노를 안긴다”며 수도권 이전 계획을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윤준병 의원(정읍시·고창군)도 지난 21일 국회에서 농진청 간부 등을 만나 “정부가 추진해 온 혁신도시 정책 취지와 배치되고 농업·농촌의 미래를 위한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농진청은 국내 농업 연구와 농업인 지원을 총괄하는 농림축산식품부 소속 중앙행정기관이다. 전북도에 따르면 농진청이 전북에 내려온 뒤 2600명이 넘는 일자리가 생겼다. 지역 물품을 우선 구매하는 데 700억원을 쓰는 등 매년 1000억원이 넘는 연구 개발비·사업비 중 일부를 전북도 현안 해결에 사용한 것으로 파악됐다.
논란이 커지자 농진청은 지난 22일 “조직·인력 조정은 전북혁신도시 이전 시 승인된 정원 범위 안에서 최소한으로 추진한 것”이라며 “조직 개편을 통해 대내외 농업 환경 변화에 대응하고 농업의 지속적 성장을 도모하려 했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도 “일부 부서의 수원 근무지 이전은 아직 실행되지 않았다”며 “지역 균형 발전과 연구 역량 저해 등 외부 우려를 고려해 이전 여부를 다시 검토하고 방향을 재고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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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 효율성 대 지역 반발 이분법 탈피” 지적도
전북도는 재발 방지에 나섰다. 도 관계자는 “이전 공공기관이 근무지가 바뀌는 조직 개편을 하는 경우 해당 지자체와 사전 협의하는 제도 도입을 지역 정치권과 논의하고 있다”며 “지역별 연구 조직을 제외하고 수원에 남아 있는 농진청 일부 기능도 모두 본청으로 이전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한편, 전주·완주혁신도시는 전주시 만성동·중동과 완주군 이서면 일원에 985만2000㎡ 규모로 2008년 3월 착공, 2016년 12월 준공됐다. 농진청을 비롯해 한국전기안전공사 등 12개 기관이 이곳에 둥지를 틀었다. 그러나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일부 기관의 이전설이 끊이지 않았다. 1200조원이 넘는 자산을 관리하는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의 ‘서울사무소 설립설’이 대표적이다.
이를 두고 학계에선 “정책 효율성 대 지역 반발이라는 이분법에서 벗어나 정책적 필요성을 존중하되 지역에는 조직 이전에 따른 손실을 실질적으로 보완해 주는 방향의 절충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하동현 전북대 행정학과 교수는 “정책 결정 과정에서 필요한 것은 상호 협의와 기회비용 보상”이라며 “조직 자체나 조직 내 부서가 떠나면서 발생할 지역의 손실을 면밀히 분석해 이를 보완할 수 있는 대체 기능이나 지역 활성화 과제를 함께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