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 해임당한 뒤 ‘트럼프 저격수’로 활동해온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에 대한 강제수사가 뒷말을 낳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볼턴 전 보좌관의 발언에 불쾌감을 드러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이번 수사가 정치적 보복 성격을 띤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된다.
미 연방수사국(FBI)은 지난 22일(현지시간) 기밀정보 유출 혐의로 볼턴의 메릴랜드주 자택과 워싱턴DC 사무실을 급습해 서류 등을 압수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같은날 “트럼프는 최근 자신의 평화 중재 노력을 폄훼하는 볼턴에 대해 주변에 사적으로 불편해하는 기색을 내비쳤다”고 보도하며 볼턴에 대한 강제수사가 개시된 시점에 주목했다.
볼턴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트럼프의 중재외교를 깎아내리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지난 10일에는 “트럼프는 그 어떤 것보다 노벨 평화상을 원한다”고 했고, 이틀 뒤에는 알래스카에서 개최되는 미·러 회담에 대해 “푸틴 대통령이 이미 승리했다”고 언급했다. 트럼프는 다음날 트루스소셜에 “미국 땅에서 회의가 열리는데도, 존 볼턴 같은 해고된 루저들과 정말 멍청한 사람들의 발언이 끊임없이 인용되고 있다”며 공개적으로 분통을 터뜨리기도 했다.
트럼프 측근들은 “대통령이 아마 (볼턴을 인용한) 방송들을 직접 봤을 것”이라며 “그는 하루종일 (방송을) 보고 있다”고 WP에 전했다. 트럼프는 2기 행정부 출범 직후인 올해 1월에도 볼턴에 대한 비밀경호국의 경호를 중단시키는 등 그를 눈엣가시처럼 여기는 모습을 보여줬다. 지난 2019년 9월 해임된 볼턴이 이듬해 6월 회고록 ‘그 일이 일어난 방’을 통해 당시 트럼프 행정부의 대외정책 난맥상을 지적하자 트럼프는 볼턴이 국가기밀을 유출했다는 주장을 지속해왔다.
미국 주요 언론들은 23일 사설을 통해 일제히 우려를 표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이번 사태의 진짜 범인은 트럼프”라며 “그는 자신의 권력을 ‘사적인 복수’에 사용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뉴욕타임스는 “백악관과 법무부, FBI 내의 충성파들이 ‘침묵하라, 그렇지 않으면 막강한 권력을 동원해 당신의 직위를 위협하겠다’는 분명한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고 우려했다.
캐시 파텔 FBI 국장이 볼턴의 자택과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이 이뤄진 22일 X(엑스·옛 트위터)에 “누구도 법 위에 있을 수는 없다”고 작성한 글도 주목받고 있다. 22일 가디언 보도에 따르면 파텔 국장이 지난 2023년 출간한 자신의 저서 ‘정부의 깡패들’에 수록한 60명의 명단 중 볼턴을 포함한 5명이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수사를 받았다. 가디언은 “해당 책이 FBI 수사에 영향을 미쳤다는 증거는 아직 없지만, 수사 대상과 리스트의 중복은 우연이라 보기 어렵다”고 했다. 사실상 ‘블랙리스트’나 다름없다는 지적이다.
FBI는 정당한 법 집행이라는 주장이다. FBI 측은 이번 압수수색에 대해 “법원 승인에 따라 활동하고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법원이 발부한 영장의 근거가 된 첩보를 존 랫클리프 중앙정보국(CIA) 국장이 파텔 국장에게 제공했다는 NBC 보도도 있었다. JD 밴스 부통령도 볼턴에 대한 수사가 정치 보복 성격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는 22일 NBC 인터뷰에서 “범죄가 없으면 기소하지 않을 것”이라며 “우리의 초점은 그가 미국 국민을 상대로 범죄를 저질렀는지 여부”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