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닫기

손가락 없는 우익수 수퍼캐치에 울었다…여름 청춘 드라마 고시엔 [오누키 도모코의 일본 외전]

중앙일보

2025.08.24 08:22 2025.08.24 13:24

  • 글자크기
  • 인쇄
  • 공유
글자 크기 조절
기사 공유
오누키 도모코 도쿄 특파원
지난 23일 일본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여름 고시엔)가 막을 내렸다. 지난해 한국계 학교인 교토국제고가 첫 우승을 차지하며 화제를 모았고, 올해는 2연패에 도전했다. 그간 2연패에 성공한 학교는 6개에 불과하다. 비록 8강에서 아쉽게 패했지만, 그들의 선전은 한국에서도 일본 고교야구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계기가 됐다. 올해 107회를 맞은 고시엔의 매력은 무엇일까.
지난 13일 일본 한신고시엔구장에서 1회전을 역전승으로 이끈 교토국제고 니시무라 잇키 투수.사진=지지통신



전국 1프로만 출전한 꿈의 무대...마쓰이,마쓰자카,오타니 등 배출


일본고교야구연맹 등에 따르면 대회는 1915년 8월 아사히신문 주최로 오사카에서 처음 개최됐다. 1924년 효고현에 한신고시엔 구장이 완공된 이후, 이곳이 야구선수들의 ‘꿈의 무대’로 자리 잡았다. 1928년부터는 라디오 전국 중계가 시작돼 서울에서도 청취할 수 있었다. 대회는 폭발적 인기를 얻으며 여름 연례행사로 정착했다.

지난 8일 일본 한신고시엔구장 내 '고시엔 역사관'에서 과거 대회에 출전한 모든 학교 이름이 새겨져 있다. 오누키 도모코 특파원

1921년부터는 조선과 만주, 1923년부터는 대만에서도 출전했다. 현재 구장 내 ‘고시엔 역사관’에는 역대 출전학교의 이름이 새겨진 공이 전시돼 있는데, ‘경성중(현 서울고. 당시 중학교가 현재 고등학교에 해당)’ '용산중' '평양중' '부산상고' ‘휘문고보’(현 휘문고) 등의 이름도 확인할 수 있다. 안타깝게도 당시 조선에서 출전한 학교는 모두 1, 2차전에서 탈락했다. 대회는 태평양전쟁으로 5년간 중단됐다가 1946년 재개된 이후 2020년 코로나19로 취소된 경우를 제외하고 매년 열리고 있다.

1998년 8월 일본 고시엔 결승에서 노히트 노런을 기록하면서 우승을 거머쥔 요코하마고 마쓰자카 다이스케 투수. 사진=지지통신
도도부현별 지역 예선에 참가하는 팀수는 2003년 4163개가 최다였다. 저출산 등으로 점차 감소해 올해는 3396개였다. 고시엔에 나설 수 있는 팀은 각 지역 우승교 49개뿐, 전국에서 약 1%의 선수들만이 출전한다. 교토국제고가 2연패 도전이라는 중압감 속에서도 2년 연속 출전을 이뤄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업적이라 할 수 있다. 일본 프로야구를 거치면서 미국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마쓰이 히데키(松井秀喜), 마쓰자카 다이스케(松坂大輔), 오타니 쇼헤이(大谷翔平) 등도 고시엔의 무대를 밟았다.



기적 같은 드라마…경제효과 4000억원 추산도


일본 고교야구는 3학년 여름 대회를 끝으로 은퇴한다. 한국처럼 졸업 직후 곧바로 프로팀 진출을 희망하는 선수는 극히 일부다. 강팀 에이스 등 일부는 스포츠 전형으로 대학 진학이 가능하지만, 대부분 학생들은 학업과 병행해야 한다. 하나의 부카쓰(학교 동아리 활동) 대회임에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어, 미야모토 가쓰히로(宮本勝浩) 간사이대 명예교수는 출전교가 평소보다 많았던 2018년 100회 기념대회의 경제효과는 무려 433억 엔(4060억원)에 달한다고 추산했다.

2023년 8월 일본 고시엔 결승에서 대회사상 최초로 선두타자로 홈란을 친 마루타 미나토 선수.사진=지지통신
2023년 107년 만에 게이오고를 우승으로 이끌고 스타가 된 마루타 미나토(丸田湊斗. 현 게이오대 2학년)는 고시엔의 인기 비결을 이렇게 소개했다. “프로야구나 대학야구의 리그전과 달리 고시엔은 토너먼트 방식이기 때문에 한 번 패하면 끝이라는 절박감이 있다. 또 강팀이 약팀에 무너지는 이변도 종종 일어나는데, 이 또한 고시엔의 재미다.”

올해도 드라마와 같은 장면들이 연출됐다. 지난 19일, 우승 후보 1순위였던 가나가와현의 요코하마고와 기후현 현립 기후상고의 8강전이 그랬다. 요코하마고는 전국의 유망주들로 구성된 명문 사립인 반면, 기후상고는 대부분이 지역 출신 선수로 구성된 공립이다.


당연히 요코하마고가 우세했다. 하지만 1회초 태어날때부터 왼손 손가락이 없는 선수인 기후상고 우익수 요코야마 하루토(横山温大)가 요코하마고의 타구를 뛴채 잡아내며 선취점을 막았다. 요코야마의 슈퍼캐치를 기점으로 기후상고는 기세를 올렸고, 연장 11회 접전 끝에 끝내기 승리를 거뒀다.
지난 20일 일본 주요 스포츠 신문들이 전날 이뤄진 기후상고의 기적 같은 승리를 일제히 보도하고 있다. 오누키 도모코 특파원

모든 고시엔 경기는 NHK가 생중계하고, 다른 매체도 인터넷으로 실시간 영상을 제공한다. 이날 명승부 직후 X(옛 트위터) 일본 내 트렌드 상위 10개가 모두 ‘고시엔’, ‘나이스게임’, ‘요코야마 군’ 등 관련 단어로 채워졌고, 경기를 보고 눈물을 흘린 시청자도 많았다. 다음 날 아침 주요 방송사들은 기후상고의 승리를 일제히 비중 있게 다뤘다.


기후상고 후지이 준사쿠(藤井潤作) 감독은 경기 후에 “100번 하면 99번은 진다. 하지만 남은 1번의 승리가 고시엔에서 나왔다”고 말했다. 이런 각본 없는 드라마가 있기에 “프로야구는 관심 없지만 고교야구는 본다”는 팬들이 적지 않다.




고향의 희망..경기 흐름을 바꾸는 응원전


지난 13일 일본 한신고시엔구장에서 교토대회 결승에서 교토국제고에 패한 도바고 선수들이 함께 응원하고 있다. 오누키 도모코 특파원
각 학교의 응원전은 고시엔의 중요한 감상포인트 중 하나다. 지난 23일 결승 경기엔 4만5600명이 입장했다. 오키나와쇼가쿠고를 응원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오키나와에서 비행기를 타고 고시엔을 찾았다. 오키나와 현지에선 경기 중계를 보느라 거리에 사람도 차도 사라졌다고 한다. 그런 지역민들의 열기에 힘을 얻어 오키나와쇼가쿠고는 첫 우승을 거머쥐었다.

지난 13일 열린 교토국제고와 군마현의 겐다이타카사키고와의 1회전에서도 응원의 힘이 발휘됐다. 교토대회 결승에서 맞붙었던 라이벌 도바고 선수 13명이 교토에서 달려와 ‘우정 응원’을 펼친 것이다. 이런 응원 덕에 교토국제고는 예상을 깨고 역전승을 거뒀다. 교토국제고 주장 구라하시 쇼(倉橋翔)는 “한구 한구에 쏟아지는 함성이 대단했다. 좋은 분위기에서 경기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고시엔 응원전은 선수명단에 오르지 못한 후보 선수와 브라스밴드, 치어리더가 이끈다. ‘브라반(브라스밴드) 고시엔 대연구’의 저자 우메쓰 유키코(梅津有希子)에 따르면 이미 제1회 대회부터 음악대가 동원됐다. 팀마다 ‘필승곡’이 있는데, 이 곡이 울려퍼지면 때론 상대에 위압감을 주고 득점과 직결된다. 고시엔 응원을 위해 명문 야구팀이 있는 학교로 진학하는 학생도 있을 정도다.



감동의 스포츠맨십

지난 13일 경기가 끝난 직후 맞붙었던 겐다이타카사키고 에이스와 포용하는 교토국제고 니시무라 잇키 투수(왼쪽). 버추얼 고교야구 캡처

승패를 넘어선 스포츠맨십도 고시엔의 감동 포인트다. 교토국제고 에이스 니시무라 잇키(西村一毅)는 그런 점에서도 주목받았다. 그는 지난 13일 최고 156㎞를 던지는 상대 투수와 경기 후 악수를 나누며 “좋은 경기를 해줘서 고마웠어. 네 공, 정말 빨랐어”라고 말했다. 본인(최고 146㎞)보다 빠른 공을 던진 라이벌에 대한 존경심을 표한 것이다.

지난 19일 8강전 야마나시가쿠인고와의 경기에선 니시무라는 6회에 강판당했다. 4대11 대패로 끝나 2연패의 꿈은 좌절됐다. 그러나 그는 담담한 표정으로 먼저 퇴장하는 상대 선수들에게 웃으며 박수를 보냈다. 이 장면은 SNS에서 크게 화제가 됐고, 진정한 스포츠맨십을 보여준 그에게 찬사가 쏟아졌다.




오누키 도모코([email protected])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