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영국에서 이른바 ‘세 부모 아기’가 여러 명 태어나 건강히 자라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세 부모 아기는 부모 두 명이 아닌 세 명의 유전자를 지닌 아기를 의미한다. 난치성 미토콘드리아 유전 질환의 대물림을 막기 위한 목적으로 개발된 첨단 치료법에 의해 태어난 아이들이다.
500명 중 한 명, 미토콘드리아 이상 미토콘드리아는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식물 세포 내에서 발전소 역할을 하는 소기관으로, 세포핵과는 별개로 자체 DNA를 가지고 있다. 특이하게도 이 DNA는 모계로만 유전된다. 일부 여성은 미토콘드리아에 돌연변이를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건강하지만 이를 물려받은 자식들이 치명적인 질환을 앓을 수 있다. 신생아 약 500명 중 한 명 비율로 미토콘드리아 DNA에 돌연변이를 가지고 태어난다. 미토콘드리아 유전 질환은 신경계·근육·심장·청각·시각 등 다양한 기관에 영향을 미치며, 생후 수 년 또는 10여 년 안에 사망하기도 하지만 현재 치료법이 없다.
모계 유전 미토콘드리아 DNA
‘세 부모 아기 시술’로 질병 치료
영국, 규제·과학 조화 이루지만
국내선 규제로 연구도 불가능
세 부모 아기 시술의 정식 명칭은 ‘미토콘드리아 대체 이식(MRT· Mitochondrial Replacement Therapy)’이다. 그 과정은 다음과 같다. 미토콘드리아 질환 유전자를 지닌 여성의 난자와 남편의 정자를 체외에서 수정시켜 수정란을 만든다. 이 수정란에서 세포핵을 추출하고, 이를 세포핵이 제거된 정상인 기증자의 난자에 이식해서 배아를 만든다. 이를 착상시켜 임신과 출산에 이르게 되면 부모의 핵 유전자와 함께 기증자의 정상 미토콘드리아 유전자가 함께 전해진 아기가 태어난다.
MRT는 혁신적 치료법이지만 아직 과학적으로나 사회적으로 해결되지 않은 여러 문제가 있다. 첫째, 세포핵 이식 과정에서 소량의 돌연변이 미토콘드리아가 함께 옮겨질 수 있는데 이것이 태아의 발달 과정에서 증가할 경우, 결국 질환이 발생할 수 있다. 둘째, 건강한 난자를 구하기가 어렵다. 난자는 호르몬 주사와 침습적인 시술을 통해서만 구할 수 있어서 기증자를 찾기가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많은 국가에서 난자 매매를 법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셋째, 아기에 대한 난자 기증자의 법적 권리와 책임이 불명확하다.
유전자 교정 기술로도 돌연변이 교정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기술도 국내외에서 활발히 연구되고 있다. 유전자 교정 기술을 활용해서 수정란의 미토콘드리아 돌연변이를 교정하는 것이다. 기초과학연구원 유전체교정 연구단에서 세계 최초로 생쥐 미토콘드리아 DNA에 맞춤 변이를 도입해 질환 동물 모델을 만드는 데 성공한 이후 국내외 연구진들이 다양한 미토콘드리아 유전 질환 동물 모델을 만들었다. 향후 이 기술의 정확도와 효율을 높이면 인간 수정란의 돌연변이를 교정하기 위한 목적으로도 사용될 수 있을 전망이다. 이 방법의 장점은 기증 난자가 필요 없다는 점이다. 문제점으로 원치 않는 변이가 생길 가능성이 있지만, 기술의 정확도를 높여서 이를 최소화할 수 있고 산전 진단으로 남아 출생을 선택한다면 원치 않는 변이가 그다음 세대로 유전되는 위험을 차단할 수 있다. 아버지의 미토콘드리아는 자식에게 전달되지 않기 때문이다. 미토콘드리아 유전 질환이 남성에서 발병 비율이 높기 때문에 남아 출생에 우선 적용하는 것이 적절하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황우석 사태 이후 인간 배아 연구가 법적으로 금지되어 임상은 물론 연구 자체가 불가하다. 생명윤리법에 의하면 시험관 아기 시술 과정에서 만들어졌으나 착상에는 활용되지 않은 잔여 배아를 연구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잔여 배아에 돌연변이가 없을 것이기 때문에 연구 목적으로 적합하지 않다. 인간 배아 대신 동물 배아를 이용해 연구하면 되지 않나 하는 지적도 있지만, 인간과 동물의 미토콘드리아 DNA 염기서열이 사뭇 다르기 때문에 적절한 대안이 될 수 없다. 결국 돌연변이를 가진 여성의 난자를 연구에 활용해야 하지만 현행 국내법은 이를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영국 “첨단 치료 허용하되 철저 통제” 규제와 과학이 적절히 균형과 조화를 이루는 국가로 영국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영국은 1990년 세계 최초로 ‘인간수정배아법’을 제정하고 독립 규제기관 HFEA를 설립했다. 이 기관은 시험관 아기, 유전자 진단과 교정, MRT 등 모든 생식 기술을 허가·감독한다. 영국의 규제 철학은 무조건적인 허용도, 금지도 아닌, “과학적 근거와 윤리적 검토를 바탕으로 허용하되 철저히 통제한다”는 원칙을 따른다. 이는 미국처럼 규제 공백으로 인해 정권에 따라 정책이 오락가락하거나, 대부분의 유럽 대륙 국가들처럼 생식 관련 신기술을 일단 원천 금지하는 방식과는 차별화되는 중도적이고 실용적인 모델이다. 그 결과 1978년 세계 최초로 시험관 아기, 루이 브라운이 영국에서 태어날 수 있었고 이후 전 세계적으로 1300만 명에 달하는 새 생명이 태어났다.
MRT와 유전자 교정은 단순한 과학적 실험이 아니라 불치병으로부터 생명을 구하기 위한 절박한 노력에서 비롯되었다. 우리 사회는 이 기술이 가져오는 과학적 가능성과 혜택, 윤리적 고찰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찾을 필요가 있다. 생명윤리, 유전자 조작, 부모의 권리와 법적 규제 등 복합적인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기술은 멈추지 않고 진보하지만, 그 진보가 사회적 합의와 함께 가야만 비로소 세상을 바꾸는 도구로 기능할 수 있다. 세 부모 아기와 유전자 교정 기술은 우리에게 과학이 어디까지 가능한가를 묻는 동시에, 그 가능성을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가를 고민하게 하는 중요한 사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