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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시조 백일장 - 8월 수상작] 담쟁이 입 빌려 ‘스마트폰 중독’ 꼬집었다

중앙일보

2025.08.24 08:28 2025.08.24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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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
모노포비아
송미아

모바일 없는 날은 담쟁이도 긴장한다
내 폰 돌려줘요. 폰 따라 오를 거예요
디지털 세상 복판에 너나없이 핸드폰

또르르 검지 새가 액정판에 노래한다
화면에 묻힌 채로, 돌아가야 할까 말까
낙지의 보법을 따라 길을 내는 저 고집

내 고향 돌담길도 데이터로 줄을 잇는
손잡고 오를 거야 남남인들 또 어떠랴
빨갛게 아기 손들이 “저요! 저요!” 펴든다

◆송미아
제주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석사 졸업. 제12회 한국아동문학회 오늘의 작가상(평론), 24년 8월 중앙일보 시조백일장 차상. 아동문학평론집 『순수純水로 잇다』, 시가 있는 관찰일기 『꼬마철학자』, 평론집 『양전형 작가_문학과 기록 사이, 제주어를 통섭하다』 출간.

차상
비의 맨발
전미숙

갈라진 빈틈마다 젖어드는 빗소리
둘레길 돌고 돌아 맨발로 걷고 있다.
가슴 속 언저리까지
씻겨나간 흙 내음

쏟아진 기억인 냥 서성이던 계절이
소리를 잃어버린 진공 속 액체처럼
발가락 사이사이마다 기억을 적신다

경적처럼 울리며 떨어져간 어제들이
세로로 길게 뻗어 꽂히던 소나기에
흙 내음 풀풀 일어나 맨발로 걷고 있다

차하
장의자
박혜린

장팔리 산동네의 장 이장네 공방*은
머리 하얀 어르신들 옹기종기 사랑방
목수도 똑딱 뚝딱하다 일흔 나이를 잊었다

“장 가가 아 글씨 설서 기술자였댜.”
은행나무 매만지는 투박한 손길 위에
소복이 제 손을 얹는 나무 먼지의 다정

날마다 첫눈 같은 이야기꽃이 펴도
함박웃음 어머니, 아들만 몰라본다
뒤에서 꼭 안아주는 팔걸이 없는 장의자

*고요보다는 소음이 치매에 좋다는 의사의 말에 직업을 바꾸고 귀촌한 장 목수는 어머니를 모시고 살고 있다.

이달의 심사평
8월의 전대미문의 날씨 속에서도 중앙시조백일장에 대한 관심은 뜨거웠다. 그 중 전미숙의 ‘돌 안에 들다’와 송미아의 ‘표선바다 숨비기꽃’은 네 수짜리로 작품의 완성도면에서 뛰어나지만 지면을 고려하여 두 작품은 선에서 제외되었다. 세 수로도 가능한 일을 굳이 네 수로 할 필요는 없다. 시조는 간결미와 함축미를 미덕으로 하는 장르이며 언어를 최대한 아끼면서 울림과 여운은 깊어야 함을 명심하기 바란다.

8월 장원으로 송미아의 ‘모노포비아’를 선했다. 현대인들의 자가공포증이라는 상상력에서 출발한 이 작품은 핸드폰 없이는 살 수 없는 세상을 담쟁이의 화법으로 표현한 점이 돋보였다, “낙지의 보법을 따라 길을 내는 저 고집”이라든지 “남남인들 어떠랴”, “내 고향 돌담길도 데이터로 줄을 잇는” 같은 서술적 표현들로 작품의 완성도를 높였다. 같이 보내온 작품들도 일정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 앞으로의 행보를 기대해 본다.

차상은 전미숙의 ‘비의 맨발’이다. 자기 내면의 목소리를 잔잔하게 따라가는 이 작품은 특별한 기교 없이 선명한 이미지를 구사하고 있다. 오랜 기간 습작해 왔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원시적 흙내음과 “소리를 잃어버린 진공 속 액체”같은 진중함이 잘 스며있다. 역시 같이 보내온 작품들도 일정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 믿음이 갔다.

차하로는 박혜린의 ‘장의자’를 선했다. “시는 이미지다”라는 시 창작의 기본을 충실하게 지킨 시조로 장 이장네 공방의 풍경이 손에 잡힐 듯 잘 드러나 있다. “장팔리 산동네의 장이장네 공방”이라는 구체적인 사실적 공간을 전면에 내세워 “뒤에서 꼭 안아주는 팔걸이 없는 장의자”의 귀결에 이르기까지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풍경의 묘사가 선자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신명숙, 이둘임의 작품들도 눈여겨 보았음을 알린다.

심사위원 손영희(대표집필)·정혜숙

◆장기숙
서울 출생. 2003년 ‘열린시학’ 등단. 시조집 『물푸레나무』 외 5권. 한국여성시조문학상. 월간문학상, 한국시조시인협회작품상 외

초대시조
장단역
장기숙

거기 임진강 건너 아스라한 금단의 땅
흔적만 겨우 남은 폐허의 플랫폼
만남과 이별의 기억 촘촘히 박혀있을

이모는 유복자를 평생 홀로 키웠다
칠십 년 옷깃 여민 채 기차 소리 귀 기울인
두레박 우물에서 퍼 올린 초저녁별 같은 사랑

끊어진 철길 이어 기적 다시 울릴까
쇳녹을 부여안은 갈대꽃 저 흔들림
산까치 울음소리만 얼음산을 깨고 있다

하루도 조용할 날 없는 지구별의 분쟁 소식에, 분단국가에 사는 우리들은 늘 전쟁의 공포와 마주하고 있다. 하물며 접경지대에 사는 사람들의 마음은 오죽하랴 싶다. 그런 연유인지 작가의 글 중에는 그곳 풍경과 애완에 기반한 글들이 많다. 지금은 많은 발전을 이루었으나 긴 세월 동안 황량했던 파주, 문산 지역, 이 지역에는 문화유산의 보고인 사적지가 촘촘하다.

장단역은 비무장지대에 위치하고 있어 녹슨 철길만이 그곳이 사람의 왕래가 있었다는 것을 말해주는 역사(驛舍)이다. 전쟁으로 아비를 잃은 유복자와 그 유복자를 키우는 어머니들이 기적처럼 돌아올 남편을 기다리다 스러져가지만, 강 건너 손에 잡힐 듯이 또렷하게 보이는 금단의 땅에는 바람과 구름, 날짐승들만 자유롭게 오고 갈 뿐이다.

세상살이가 버거워 마음이 지칠 때면 한 번쯤 접경지역을 다녀오십사 권하고 싶다. 긴장감 속에서도 평온을 유지하며 활기차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새로운 힘을 얻으리라 믿기 때문이다.

시조시인 강정숙

◆응모안내
매달 18일까지 중앙 시조 e메일([email protected]) 또는 우편(서울시 마포구 상암산로 48-6 중앙일보 중앙시조백일장 담당자 앞)으로 접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등단하지 않은 분이어야 하며 3편 이상, 5편 이하로 응모할 수 있습니다. 02-751-5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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