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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기려던 자들과 화끈한 맞짱…‘야만의 80년대’를 벗기다

중앙일보

2025.08.24 08:33 2025.08.24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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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이하늬(가운데)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애마’에서 1970~80년대 톱스타 정희란을 연기했다. 짙은 립스틱과 금장 단추 등으로 화려하면서도 우아한 이미지를 강조했다. [사진 넷플릭스]
“네가 꿈을 꾸었구나! 꿈을 깨는 데는 매가 약이지.”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애마’의 한 장면에 등장하는 정희란(이하늬)의 대사다. 극 중 ‘애마부인’에 출연한 희란은 성적 욕망이 가득한 남주인공을 채찍으로 호되게 다그치며 이렇게 말한다.

실제 1982년 개봉한 영화 ‘애마부인’에 나오는 장면은 아니다. 영화 ‘천하장사 마돈나’(2006), ‘독전’(2018)의 이해영 감독이 자신의 첫 번째 시리즈인 ‘애마’를 연출하며 현대 여성의 시각으로 재해석한 장면이다. 지난 22일 공개된 ‘애마’는 1980년대 충무로를 배경으로 당대 화제작이었던 ‘애마부인’의 제작 과정을 상상력을 가미해 조명했다.

제목만 보면 또 하나의 성인물로 비춰질 수 있지만, 실상은 에로영화가 인기였던 시대의 폭력성과 야만성을 풍자하는 6부작 코미디다. 앞선 제작발표회에서 이 감독은 “1980년대의 욕망을 응집한 아이콘 같은 존재로 ‘애마’를 내세웠다. 그 시대의 편견과 폭력에 맞서 싸우고 견뎌야 했던 모든 애마들을 응원하는 이야기”라고 밝혔다.

한국의 1980년대 영화산업을 소재로 해 글로벌 시청자들에겐 낯설 수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하지만 전세계 스트리밍 작품 순위를 집계하는 플릭스패트롤에 따르면, 공개 직후 한국 2위를 비롯해 인도네시아, 대만, 베트남, 싱가포르, 태국까지 6개국에서 10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시청자마다 ‘애마’라는 제목에 기대하는 바가 다르기에 호불호가 있을 수 있겠으나, 성적 대상화를 비판하고 시대에 반항하는 캐릭터를 내세워 2025년 방식으로 흥미롭게 연출했다”고 평가했다.

정이진 미술감독은 1980년대 충무로의 중심이었던 ‘청맥다방’을 비롯해 극의 배경이 되는 신성영화사 사무실과 영화 촬영장 곳곳에 화려한 컬러를 입혀 향수를 자극했다. 당대 최고의 톱스타 정희란 역의 배우 이하늬는 1970~80년대 여배우들의 영상을 보고 서울사투리를 연습해 배역에 몰입했다. 희란은 젖가슴이란 단어로 도배된 ‘애마부인’ 시나리오를 거부하고 신성영화사 대표 구중호(진선규)와 맞선다. 한편 희란이 거부한 ‘애마부인’ 주연에는 오디션을 통해 발탁된 신주애(방효린)가 나선다. 주애는 처음엔 희란과 갈등을 겪지만 결국 동질감을 공유하게 된다.

1980년대는 정책적으로 성 영화가 장려됐지만 동시에 표현의 자유는 철저히 통제되던 모순된 시대였다. 실제 영화 ‘애마부인’은 검열을 피하기 위해 ‘말 마(馬)’ 대신 ‘대마 마(麻)’로 한자를 바꾸는 우스꽝스러운 과정을 겪기도 했다. ‘애마’는 바로 이 시대적 아이러니를 정면으로 다룬다. 성 영화 출연을 강요받은 여배우들이 서로에게 기대며 만들어낸 독특한 연대는 억지스럽지 않다. 여성의 시각을 반영한 유머 코드도 강점. 그 결과 작품은 단순한 향수극을 넘어, 과거의 모순을 현재의 언어로 비틀어낸 사회적 풍자로 의미를 더했다.





황지영([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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