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애니메이션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이하 ‘무한성편’)이 개봉 3일 만에 164만 관객(25일 현재)을 돌파했다. 올해 국내 개봉작 중 가장 빠른 흥행 속도다.
500만 관객을 넘어선 올해 최고 흥행작 ‘좀비딸’은 나흘 만에 100만 관객에 도달했는데, ‘무한성편’은 개봉 전 사전 예매만 92만 장이었다. 사전 예매가 많은 영화는 대중적 인지도가 높거나 팬덤이 많은 경우로, ‘미션 임파서블: 파이널 레코닝’은 25만, ‘좀비딸’은 27만이었다.
사전 예매와 초반 흥행세로 보면 ‘무한성편’은 일본 애니메이션의 국내 흥행 역사를 새로 쓸 가능성이 있다. 4년 전 개봉해 222만 관객을 기록한 전작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편’은 물론이고, 558만 관객을 모은 국내 흥행 1위 ‘스즈메의 문단속’(2023)을 넘어설 지도 모른다.
일본에서 ‘무한성편’의 인기는 끝이 없다. 7월 18일 개봉해 첫날 19.9억 엔의 오프닝 신기록을 세웠고, 역대 최단 기간인 일주일 만에 누적 수익 100억 엔을 돌파했다. 개봉 한 달 만에 수익 257억 엔, 관객 1800만 명을 넘어섰다. 전작 ‘무한열차편’이 갖고 있던 일본 영화 역대 박스오피스 1위 기록(404억 엔)도 갈아 치울 기세다.
원작인 고토게 고요하루의 ‘귀멸의 칼날’은 2016년 ‘주간 소년 점프’에서 연재를 시작해 2020년에 마무리된 만화다. 2019년 TV 애니메이션 방영을 시작했다. 다이쇼 시대, 인간의 피를 탐하는 혈귀에게 가족을 잃은 탄지로는 혈귀로 변한 동생 네즈코를 구하고, 원수를 갚기 위해 귀살대에 들어간다. ‘귀멸의 칼날’은 ‘소년 점프’ 성공작의 전형적인 공식을 따른다. 노력과 우정, 승리라는 키워드다. 힘든 훈련으로 재능을 꽃 피우고, 함께 하는 동료들과 전우가 돼 슬픔과 고통을 겪지만, 결국 승리한다.
하지만 걸작은 공식 만으로 성공하지 않는다. 가족과 친구, 약자의 편에 선 영웅, 인간의 ‘지키는 마음’이 ‘귀멸의 칼날’의 주제다. 소년 만화의 왕도를 걸으면서, 약하지만 의지와 연민을 가진 인간을 부각시켜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23권으로 완결된 단행본은 지금까지 전세계에서 2억 2000만 부 넘게 팔렸다.
‘귀멸의 칼날’의 엄청난 인기에는 허무할 정도로 빠른 완결도 한 몫 했다. 인기가 높은 일본 만화는 끝없이 이야기가 늘어진다. 새로운 적을 등장시키고, 다른 장소에 보내는 등 온갖 수단을 써서 끝나지 않게 만든다. 오로지 돈을 위한, 반복의 반복이다. 반면 ‘귀멸의 칼날’은 5년 연재로 모든 것을 마무리했다. 이미 끝났기에 슬프지만, 그 ‘유한함’이 바로 ‘귀멸의 칼날’의 핵심이고 독자가 공감한 지점이다. 죽지 않기에 무한히 강해지는 혈귀가 아니라, 약하고 죽어가는 인간이기에 함께 싸우고 끝내 승리하는 탄지로와 동료들의 이야기에 공감하고 빠져든다.
주인공 탄지로의 귀걸이가 욱일기 문양이어서 우익 논란이 일기도 했다. 한국 상영판에서는 문양을 지웠고, 작가는 정치적 발언을 한 적이 없다. 혈귀에 맞서 약자를 지키며 성장하는 탄지로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귀멸의 칼날’은 무한 경쟁, 무한 이기주의의 시대에 필요한 타자에 대한 우정과 연민에 기초한 휴머니즘을 긍정하는 작품이다.
‘귀멸의 칼날’은 액션 연출에 강점을 가진 유포터블(ufotable)이 애니메이션으로 만들면서 인기가 최고조에 달했다. 만화는 컷과 컷의 여백을 독자가 상상으로 채운다. 애니메이션은 만화의 비워진 순간, 움직임을 새롭게 창조해 눈앞에 펼쳐 보인다. 귀살대와 혈귀의 숨 막히는 대결, 역동적인 액션은 애니메이션을 통해 비로소 완성됐다.
최종 결전을 그린 극장판 3부작의 첫 번째인 ‘무한성편’은 혈귀의 본거지이며, 공간이 자유자재로 변형되고 증식하는 무한성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전투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생명체처럼 살아 움직이는 무한성에서 벌어지는 전투들은 황홀한 액션을 넘어 귀살대의 탄지로와 젠이치, 시노부, 혈귀인 아카자의 고통스럽지만 아름다운 과거까지 관객에게 전달해 공감하게 한다. 무한성이라는 공간을 또 하나의 주인공으로 그려낸 ‘무한성편’은 일본 애니메이션의 정점을 보여주는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