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은 2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의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에서 한 연설에서 “국방비를 증액하겠다”고 밝혔다. “한국은 한반도의 안보를 지키는 데 있어 보다 주도적인 역할을 해나갈 것”이라면서다.
미국은 그동안 한국에 국방비 증액을 요구해왔다. 위성락 대통령실 안보실장은 지난 6월 26일 미국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와 유사한 수준으로 국방비를 증액하라는 요구를 하고 있다고 처음 밝혔다. 나토는 2035년까지 국방비 지출을 국내총생산(GDP)의 5% 수준으로 올리기로 했다. 이후 정부는 명확하게 국방비 증액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
그러다 이 대통령이 처음으로 국방비 증액 의사를 분명히 밝힌 것이다. 이 대통령은 이를 ‘한·미동맹 현대화’의 일환이라고 했다. 다만 국방비를 어느 정도까지 늘릴지는 언급하지 않았다. 이 대통령은 “늘어난 국방비는 우리 군을 21세기 미래전에서 반드시 승리하는 스마트 강군으로 육성하기 위한 첨단 과학기술과 자산을 도입하는 데 사용될 것”이라고 했다. 미국 무기 구매를 늘리겠다고 예고한 것이다.
이 대통령은 “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국방 역량 강화 노력을 적극 지원하고 한·미 간 첨단 방산 협력을 더욱 확대해 나가겠다는 의사를 밝혔다”는 점도 부연했다.
이 대통령은 “한국은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를 준수하며 비핵화 공약을 철저히 지킬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 대통령의 한국 비핵화 선언은 한·미원자력협정 개정 논의와도 맞물려 있다. 한국은 협정 개정을 통해 농축 시설과 재처리 시설을 갖춰 핵무기용 플루토늄 추출의 잠재 역량을 갖기를 원하고 있지만, 미국 정부는 그동안 난색을 표해왔다.
이 대통령은 “한·미 양국은 북한 도발에 강력히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이와 동시에 북한과의 대화를 위한 노력도 병행할 것”이라고 했다. 이 대통령은 “(그래야) 한국 내 약 20만 명의 미국인들과 2만8500명의 주한미군이 더욱 안전해지고, 양국 국민의 일상도 더욱 번영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국 내에서 주한미군 감축 필요성이 거론되고 있지만, 이 대통령은 주한미군 현 수준인 2만8500명을 명시했다.
이 대통령은 준비된 원고에 앞서 한국의 민주주의 회복력을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대한민국은 잠시 위기를 겪었다”며 “대한민국과 같은 나라에서 비상계엄, 쿠데타 상상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세계는) 정치적 위기를 국민의 평화적 문화적 행동을 통해 이겨나가는 것을 보고 대한민국 민주주의 회복력에 놀랐을 것”이라고 했다. 이 대통령은 “지금까지 교과서에서 민주주의 원형을 그리스 아테네로 배웠지만, 아마도 현장의 민주주의 실제 모습은 1924년(2024년을 잘못 말함) 겨울의 서울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이 대통령은 연설 이후 질의응답 시간에 한·미 정상회담에 대한 소회를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이 회담 3시간 전 소셜미디어에 “(한국에서) 숙청이나 혁명이 벌어지는 것 같다”고 쓰자, 이 대통령 참모들은 지난 2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쫓겨나다시피 한 것과 비슷한 상황이 발생할 것을 우려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저는 이미 (트럼프 대통령이) 그러지 않을 거라는 점을 알고 있었다”며 “한·미 동맹은 매우 중요해서 거기에 큰 상처 내는 일은 벌어지지 않을 거라고 제가 확신했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정상회담 결과에 대해 “아주 좋았다”며 “회의나 식사 시간의 대화는 매우 진지하게 협력적으로 이뤄졌다”고 밝혔다. 또 “우리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것들에 대해 대화하고, 양해하고, 격려받았다”며 “예정된 시간보다 많은 시간을 대화했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중국과의 경제 협력과 미국과의 안보 협력을 병행하는 이른바 ‘안미경중’(安美經中)에 관한 질문을 받고 현재는 그럴 수 없는 상황이라고 답했다. 이 대통령은 “미국이 중국에 대한 강력한 견제, 심하게 말하면 봉쇄 정책을 본격 시작하기 전까지 한국은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입장을 가져왔던 것이 사실”이라며 “최근 몇 년 사이 자유 진영과 중국을 중심으로 한 진영 간 공급망 재편이 본격적으로 벌어지고 미국의 정책이 명확하게 중국을 견제하는 방향으로 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한국도 미국의 기본적인 정책에서 어긋나게 행동하거나 판단할 수 없는 상태”라며 “(중국의 경우) 지리적으로 매우 가까운 데서 생겨나는 불가피한 관계를 잘 관리하는 수준으로 유지하는 상황”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