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로동 거리를 걷다 보면 대형병원이 눈에 띈다. 고려대 구로병원이다. 대학이 있는 안암동과는 멀리 떨어져 있다. 왜 구로동에 있을까. 주변에 물어봐도 대부분 모른다. 사연이 있다. 한국 현대사를 거슬러 봐야 한다. 1960년대 수많은 광부와 간호사들이 서독에 가서 일했다. 위험하고 궂은일을 도맡았다. 이 과정에서 서독 정부는 이들의 헌신에 보답하기 위해 동아시아의 가난한 나라 한국에 종합병원을 세워주기로 한다.
구로동에 위치한 배경은 독일 정부의 이같은 선한 의도가 숨겨져 있다. 당시 구로공단은 수출한국의 최전선이었다. 이른바 공순이·공돌이로 불렸던 수많은 10대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었다. 산업현장의 사고는 빈번했다. 하지만 인근에 큰 병원이 없어 치료받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서독 정부는 병원을 지어주는 조건으로 구로공단을 고집했다고 한다. 어린 노동자들에 대한 선진국의 배려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미국에는 ‘WIC’이란 프로그램이 있다. 최근 트럼프가 폐지하겠다고 해서 논란이 된 정책이다. 내·외국인을 막론하고 저소득층 여성(Woman), 유아 아동(Infant·Children)에게 지급되는 쿠폰이다. 월마트 등에서 생필품을 구입할 수 있다. 넉넉하지는 않지만 먹고 사는 데는 크게 지장이 없다. 유학생들에게도 지급되었다. 세금 한 푼 내지 않으면서 미국 정부가 주는 사회복지는 누린 셈이다. 역시 부자나라의 배려 정도로 이해된다.
눈을 돌려 ‘지게차 사건’을 보자. 외국인 노동자를 지게차에 묶어 이리저리 옮기면서 재미있다고 웃고 있다. 몹시 부끄럽다. 한국은 세계 10위권 부자나라, 선진국이다. 그런 나라에서 있어서는 안 될 일이 일어난 것이다. 가난하다고 해서 존엄이 없겠는가. 가난한 나라에서 온 노동자라고 해서 인권·인격마저도 가난한 것은 아니다. 이래서는 안 된다. 찢어지게 못살았던 그 시절, 타국에 가서 목숨 걸고 일했던 나라가 한국이다. 폭포수 같은 매미울음 속으로 여름이 떠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