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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전기요금, 정치와 헤어질 시간

중앙일보

2025.08.26 08:20 2025.08.26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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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헌 동덕여대 경제학과 교수·전 에너지경제연구원장
이재명 대통령은 최근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달성하다 보면 전기요금이 오를 수밖에 없는 사실을 국민께 알리고 이해와 동의를 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실상 전기요금 인상을 염두에 두고 운을 띄운 발언이란 해석이 나왔다. 무리하게 탈원전 정책을 몰아붙이면서 “전기요금은 인상되지 않는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안다”라며 강짜를 놓았던 문재인 정권과 대비되는 모습을 보여 일단 다행스럽다.

대통령 요금인상 시사 발언 주목
인상 원인부터 분명히 구분하고
재생에너지 확대 속도 조정해야

하지만 전기요금 인상 원인이 온실가스 감축인지, 아니면 재생에너지 확대에 있는지를 분명히 구분할 필요가 있다. 온실가스 감축의 기술적 대안은 재생에너지와 원전이 거의 유일하다. 하지만 비용 차이는 크다. 한국전력이 전기를 구매할 때 지급하는 정산단가를 비교하면, 2024년 기준으로 원전이 66.3원으로 대표적 재생에너지인 태양광(135.6원)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여기에 신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 가격까지 포함하면 비용 차이는 더 벌어진다.

물론 ‘재생에너지 발전원가(LCOE)’ 하락으로 머지않아 재생에너지가 원전보다 더 저렴해진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LCOE는 개별 발전소가 직접 부담하는 비용만을 포함하는 개념인 데다 재생에너지 증가로 비롯되는 송전망 및 에너지저장장치(ESS) 확충, 백업 발전소 이용률 감소 등 시스템 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는 사실을 숨겨서는 안 된다. 현재 인류의 기술 수준과 한국 여건을 고려하면 당분간 재생에너지가 원전보다 비쌀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전기요금 인상의 불가피성은 온실가스 감축보다는 재생에너지 확대에서 찾는 편이 훨씬 타당하다. 왜냐하면 원전 비중 유지와 재생에너지의 점진적 증가를 통해 온실가스 감축과 전기요금의 완만한 인상을 조화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 정부는 온실가스 감축 대안으로 원전을 배제하고 있는 것 같다. 이 대통령이 재생에너지의 획기적 확대만을 주문했을 뿐 원전 언급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국민의 이해를 구하려면 좀 더 정직해야 한다. 원전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밝히고, 원전이 있는 경우와 없는 경우의 전기요금 인상 폭을 함께 내놓고 선택을 구하는 것이 정직한 자세다. 일부 전문가는 원전 없이 재생에너지로만 탄소중립을 달성하려면 전기요금은 2배 이상 인상될 수밖에 없다고 분석한다.

전기요금 인상을 누가 부담하는가도 짚고 넘어가야 한다. 지난 3년여 동안 산업용 전기요금을 거의 70% 가까이 집중적으로 인상했다. 그 결과 현재 대용량 산업용 전기요금은 1㎾h당 183원으로 가정용(157원)을 추월했다. 유권자 표를 의식한 정치의 개입이 초래한 심각한 가격 왜곡이다. 원가주의에 입각한 전기요금은 산업용이 가정용보다 훨씬 저렴해야 정상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 산업용 전기요금은 가정용보다 약 25% 저렴하다.

산업용 전기요금의 편파적 인상으로 국내 기업들의 산업 경쟁력 하락은 물론이고 나아가 제조업 공동화도 우려된다. 국내 산업용 전기요금은 급기야 미국(114원)과 중국(129원)보다 훨씬 높아졌다. 이에 따라 제철·석유화학 등 전기 집약적 산업의 경쟁력이 빠른 속도로 악화하는 중이다. 실제로 최근 현대제철이 미국 루이지애나주로 이전하기로 결정한 것은 값싼 전기요금이 핵심 이유로 알려져 있다.
지난 6월 26일 원자력안전위원회에서 국내 첫 상업 원자력발전소인 고리1호기 해체 승인을 의결했다. 뉴스1

산업용 전기요금의 집중 인상은 한전의 부채 해결을 더욱 요원하게 만들고 있다. 기업들이 높은 전기요금 부담을 덜기 위해 자가발전, 전력 직구입 등을 통해 한전과의 거래를 끊으려는 움직임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한전 부채가 해결되지 않으면 송전망 확충 등에 차질이 생겨 재생에너지 확대도 어려워질 수 있다.

탄소중립은 재생에너지에 올인(all-in)하는 속도전만으로 달성되지 않는다. 산업 현장이 전기요금 인상에 적응할 시간을 확보하도록 재생에너지 확대 속도를 현실에 맞춰 조정하고 그 공백을 원전으로 메워야 한다. 용도별 전기요금도 원가에 따라 결정되는 탈정치 구조로 바꿔야 한다. 정치가 장애물이다. 탈원전도, 산업용 전기요금의 편파적 인상도 모두 진영 논리에 빠진 정치 개입의 결과다. 정치와 전기가 헤어질 때가 됐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박주헌 동덕여대 경제학과 교수·전 에너지경제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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