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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세현의 글로벌 이슈 진단] 트럼프 관세 폭탄에 인도 없는 ‘인도·태평양 전략’ 되나

중앙일보

2025.08.26 08:26 2025.08.26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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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세현 논설위원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절인 2005년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발전한 이후 세계 인구 1위이자 경제 규모 4위인 인도를 글로벌 전략의 중심에 뒀던 미국의 ‘전략적 이타주의(strategic altruism)’ 원칙이 트럼프의 백악관 복귀 이후 흔들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인도를 향한 미국의 ‘전략적 이타주의’가 ‘미국 우선주의’로 인해 무너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인도 중시 정책 무시한 트럼프
중국보다 센 50% 관세 부과
인도, ‘앙숙’ 중국에 손 내밀어
중·러와 3각 협력 강화 움직임

미국은 최근 관세 협상 과정에서 시장 개방과 러시아산 원유 수입 중단 등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은 인도에 중국(30% 잠정 합의)보다 높은 50%(상호관세 25% 포함)의 관세를 부과했고, 인도의 앙숙인 파키스탄과의 협력을 강화했다. 이에 인도는 중국·러시아와의 협력 강화 쪽으로 무게추를 옮기기 시작했다.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서 인도양의 제해권을 놓고 중국과 경쟁 중인 인도가 빠지는 상황이 초래될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미국의 흔들리는 ‘전략적 이타주의’
지난 2월 13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회동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전략적 이타주의’는 중국이 미국의 전략적 경쟁자로 부상함에 따라 인도의 발전을 경제·군사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중장기적으로 미국의 국익에 도움이 된다는 믿음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인도가 번영하면 할수록 미국 기업에 시장을 열어주고, 중국에 대한 억지력을 강화하며, 아시아 권위주의 국가들에 대한 민주주의 확산 효과를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원칙은 민주당과 공화당 행정부를 가리지 않고 확립돼 왔으며, 심지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첫 임기 때도 유효했다.

원래 인도는 1947년 독립 이후 비동맹 정책을 견지해 왔는데, 이는 냉전 시대 인도 외교의 기본 원칙이었다. 소련 붕괴 이후 인도는 파트너십 다각화, 특정 군사동맹 참여 거부 등을 핵심으로 하는 다자 동맹 원칙으로 발전시켰다. 미국과 긴밀히 협력하면서도 러시아와 관계를 유지하고, 브라질·남아공 같은 남반구 국가들과 연대하는 식이다. 인도는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차지하는 지정학적 중요성을 근거로 이런 정책을 채택했고, 실제 미국은 이런 인도의 외교정책을 용인해 왔다.

그런데 트럼프의 백악관 복귀 후 이런 원칙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인도는 전통적으로 국내 제조업과 농업을 보호하고, 무역수지를 관리하기 위해 높은 관세 체계를 유지해왔다. 이에 미국은 관세 협상에서 지속적인 무역 적자(2024년 약 500억 달러)를 줄이기 위해 인도에 관세율을 낮추고, 미국산 무기와 에너지 구매를 늘리고, 농산물 시장을 개방할 것 등을 요구했다. 양국 간 협상은 초반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했으나 인도가 농산물 시장 개방에 미온적이고,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대폭 늘어난 러시아산 원유 구매 축소 요구를 거부하면서 교착 상태에 빠졌다.

설상가상으로 지난 5월 트럼프는 인도·파키스탄 군사 충돌에 개입해 양국 간 휴전을 중재했다고 발표했다. 인도는 오랫동안 파키스탄과의 분쟁에 대한 외부 중재를 거부해왔는데, 트럼프는 인도의 입장을 무시한 채 휴전 요구를 수용한 파키스탄을 두둔했고, 급기야 지난 7월엔 파키스탄 석유 개발에 협력하는 협정을 체결했다.

“트럼프, 전통적 동맹과 우방국 압박”
트럼프의 이같은 ‘돌변’의 원인에 대해 밀란 바이슈나브 카네기 국제평화재단 수석연구원은 지난 7월 포린 어페어스 기고문에서 “1기 때와는 달리 트럼프와 그의 측근들은 미국이 동맹과 우방국에 의해 부당하게 이용당했다는 확고한 신념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며 “인도가 중국에 맞서는 유용한 울타리라고 믿는 당국자들이 부족하다”고 분석했다.

해피몬 제이콥 ‘인도의 세계(India’s world)’ 편집자는 8월 기고문에서 “트럼프는 중국·러시아와 협상하고, 전통적인 동맹과 우방국을 압박하며, 미국과 중국이 주도하는 G2 체제의 출현을 앞당기는 데 만족하는 듯하다”며 “그런 세계에서 인도의 지정학적 중요성은 급격히 감소할 수밖에 없다”고 평가했다. 그는 “역대 미국 지도자들과 달리 트럼프 행정부는 ‘인도가 과연 미국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워싱턴의 전략적 이타주의가 흔들리는 조짐을 보이자 혼란에 빠진 인도는 다자 동맹의 틀을 다잡는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러시아와의 협력을 강화하는 한편 미국의 전략적 경쟁국인 중국과의 관계 개선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중국은 당연히 이런 인도의 손을 잡았다.

인도와 중국은 1962년 국경 문제로 전쟁까지 치렀고, 여전히 국경을 확정하지 못한 채 3488㎞에 이르는 실질 통제선(LAC)을 사이에 두고 있다. 2020년 히말라야 국경 지역에서 양국 군대가 유혈 충돌한 이후 두 나라의 관계는 최악의 국면으로 접어들었지만, 역설적으로 트럼프의 관세 압박이 양국 관계 개선에 동력을 제공하고 있다.

모디 총리, 이달 7년 만에 중국 방문
지난 19일(현지시간) 인도 뉴델리를 방문한 왕이 중국 외교부장(왼쪽)이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를 만나 악수하고 있다. [AP=뉴시스]
실제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이달 31일 개막하는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7년 만에 중국을 방문할 예정이다. 방중 기간 시진핑 국가주석은 물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회담도 예정돼 있다. 모디 총리와 푸틴 대통령은 9월 3일 열리는 2차 세계대전 승전 80주년 열병식에도 참석할 예정이다.

이와 관련해 지난 18~20일 인도를 방문한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모디 총리를 만나 5년 만의 직항기 운항 재개와 무역 및 투자 확대에 합의했다. 모디 총리는 “올해는 양국 수교 75주년으로 ‘아시아의 세기’ 도래와 양국 협력은 떼려야 뗄 수가 없다”며 “세계가 양국 협력의 거대한 잠재력과 밝은 미래를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중국 외교부는 전했다. 관세 폭탄을 퍼부은 미국을 향한 인도의 메시지를 중국이 보란 듯이 전한 것이다.

쉬페이홍 주인도 중국 대사는 지난 21일 한 싱크탱크 행사에서 “중국은 인도에 최대 50%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미국의 위협에 단호히 반대한다”며 “그런 행위에 침묵하거나 타협하면 불한당(bully)을 더욱 대담하게 만들 뿐”이라고 인도를 두둔했다.





차세현([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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