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희찬이 '캡틴'으로 80분간 활약하며 소속팀 울버햄프턴의 2025~26시즌 카라바오컵 3라운드(32강전) 진출에 힘을 보탰다. 공격 포인트를 올리는 데는 실패했다.
울버햄프턴은 27일(한국시간) 영국 울범해프턴 몰리뉴에서 열린 대회 2라운드 웨스트햄 유나이티드와의 홈경기에서 3-2로 이겼다. 황희찬은 이날 주장 완장을 차고 선발 출전했다. 왼쪽 공격수로 나선 그는 80분간 그라운드를 누볐다. 특유의 왕성한 활동량과 저돌적인 돌파를 선보이며 팀 공격에 활력을 불어 넣었다.
이날 승리는 황희찬에게 의미가 남다르다. 조부 황용락씨가 경기 이틀 전인 지난 25일 세상을 떠났다. 황희찬은 할아버지와 각별한 관계였다. 그는 어린 시절 조부모 손에 자랐다. 2015년 19세의 나이로 유럽에 진출한 뒤 할아버지는 손자가 출국할 때마다 공항에 나와 꼭 안아줬다. 황희찬도 귀국 때 가장 먼저 할아버지께 인사드렸다. 2022 카타르월드컵을 마치고 귀국하자마자 조부모 댁을 찾아 조별리그 포르투갈전에서 수상한 최우수선수상 트로피를 선물하기도 했다. 황희찬의 손목엔 할아버지, 할머니의 이름이 문신으로 새겼다. 조부모가 직접 자필로 적어준 글씨다.
이날 황희찬은 0-0으로 맞선 전반 42분 팀 동료가 얻어낸 페널티킥의 킥커로 나섰다. 강력한 오른발 슈팅을 시도했지만, 왼쪽 골 포스트를 맞혔다. 다행히 울버햄프턴 호드리구 고메스가 재차 차 넣어 골망을 흔들었다. 할아버지께 골을 선물하려 했던 황희찬은 아쉬운 듯 고개를 떨궜다. 그는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떠오른 듯 경기 도중 잠시 하늘을 올려다 보기도 했다. 비록 골은 놓쳤지만, 황희찬은 할아버지께 마지막 승리를 선물했다. 후반 막판까지 1-2로 뒤져 패색이 짙던 울버햄프턴은 후반 37분과 39분 연속골이 터지면서 승부를 뒤집었다.
황희찬은 경기 하루 전날인 26일 소셜미디어(SNS)에 추모글을 남겼다. 황희찬은 "어려서부터 언제나 듬직하고 든든했던 할아버지, 항상 옆에서 지켜주고 올바른 것만 가르쳐 주시던 할아버지, 나에게 너무 큰 부분을 차지하던 할아버지. 옛날에 할아버지가 실제 겪은 전쟁 얘기를 해주면 믿기지도 않고 신기하기만 하지만 그런 분이 내 할아버지라는 게 너무 자랑스러웠어. 항상 우리 가족에게 힘이 되어주고 항상 같이해줘서 그리고 우리 할아버지여서 너무 행복했고 감사해"라고 적었다. 할아버지는 6.25 참전용사다.
황희찬은 이어 "할아버지에 비하면 정말 비교도 안 될 만큼 적지만 대표선수로서 조금이나마 기여했던 부분에서 할아버지의 자랑스러운 손자였으면 좋겠다"며 "할아버지와 함께했던 모든 추억, 장소. 행복하게 잘 간직하고 평생 함께 할게. 할아버지가 살면서 멋지게 남겨놔 주셔서 할아버지 가시는 길 모두 기도해 주실 거야. 너무너무 존경하고 멋있고 자랑스러운 우리 할아버지, 마지막에 많이 힘들었을 텐데 이제 편안하게 쉬고 있어. 일 잘 마무리하고 금방 갈게"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