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쟁점 법안 14건 등 17개 안건을 처리하려던 27일 국회 본회의가 결국 파행 끝에 더불어민주당 단독으로 진행됐다. 첫 안건인 국민의힘 추천 몫 국가인권위원 2인 선출안을 민주당이 부결시키자 국민의힘 의원들이 “일당독재이자 정당 민주주의 파괴”라고 항의하며 퇴장했기 때문이다.
이상현 숭실대 국제법무학과 교수를 인권위 상임위원으로 확정하는 선출안에는 이날 재석 의원 270명 중 168명이 반대표를 던져 부결됐다. 찬성 99표, 기권 3표였다. 우인식 법률사무소 헤아림 변호사에 대한 비상임위원 선출안 역시 찬성 99명, 반대 166명, 기권 5명으로 부결됐다.
부결 선포 순간 국민의힘 의원들 사이에선 고성이 터져나왔고, 민주당 의원들은 “사람다운 사람을 추천해야죠”라고 외치며 박수를 쳤다. 의사진행발언에 나선 유상범 국민의힘 원내수석부대표는 “대한민국에 야당이 필요합니까. 민주당만이 국회를 운영합니까”라며 항의했다. 그러면서 “정당 추천은 각 당에게 추천권을 줌으로써 각 당이 자율적으로 후보를 추천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는 하나의 정신”이라며 “인권에 좌우가 있나”라고 외쳤다.
두 인권위원 후보자는 논란의 인물이었다. 이 교수는 2017년부터 반동성애 단체인 ‘동성혼합법화반대 국민연합’ 실행위원을 맡아 동성애를 혐오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우 변호사는 윤석열 전 대통령 체포를 방해한 혐의로 수사를 받은 이광우 전 대통령경호처 경호본부장의 변호를 맡았고, 윤 전 대통령 탄핵 기각을 주장했었다. 2019년에는 불법 집회 혐의로 수사 받던 전광훈 목사를 변호했다.
김병기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본회의 직전 의원총회에서 “내란을 옹호한다든지 이런 분은 추천하면 안 된다”며 “국민의힘이 일부러 이런 사람만 추천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다만 민주당은 선출안에 대한 찬반 여부를 당론으로 정하지 않고 개별 의원들 자유 투표에 맡겼다.
본회의장을 떠난 국민의힘 의원들은 ‘묻지마식 의회폭주’, ‘민주당식 협치파괴’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규탄대회를 열었다. 송언석 원내대표는 “어제만 해도 우리 당이 추천한 두 후보에 대해 합의 처리하도록 어느 정도 양해가 된 상태였는데 오늘 갑자기 태도가 돌변했다”며 “앞으로 우리 당이 추천할 수 있는 몫의 어떤 국가 공직 자리에 대해서도 민주당 잣대에 안 맞으면 전부 부결한다는 일방 통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른 상임위원회와 지금 진행되는 예산결산특별위원회도 참석하지 않겠다”며 상임위 보이콧을 선언했다.
인권위는 위원장을 포함한 상임위원 4명과 비상임위원 7명으로 구성된다. 이 중 4명은 국회 몫으로, 여여가 2명씩 추천한 선출안을 본회의에서 그대로 처리하는 게 지금까지 관례였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각 교섭단체의 추천을 본회의 의결로 확정해온 것이 관례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국회가 추천하는 것”이라며 “위헌·위법한 비상계엄을 옹호하는 인사를 국회가 인권위원으로 추천한다는 것은 국회가 자신을 부정하는 것”이라며 친정인 민주당 편을 들었다. 그러면서 “심의 결과에 항의하는 (국민의힘의) 퇴장에 동의하기 어렵다. 회의를 그대로 진행하겠다”고 했다.
이날 본회의에서는 이연희 민주당 의원 등이 주도해 온 ‘오송 지하차도 참사’ 국정조사계획서도 재석 163명 중 161명 찬성, 2명 기권으로 통과됐다. 지난해 8월 6개 야당 의원 188명 연서로 국정조사를 요구한 지 1년여 만이다. 국정조사 기간은 이날부터 내달 25일까지로, 애초 검찰 기소에서 제외됐던 국민의힘 소속 김영환 충북지사도 조사 대상에 포함될 전망이다.
민주당은 초·중·고등학교 수업 중 스마트폰, 태블릿PC 등 스마트기기 사용을 금지하는 초·중등교육법 개정안 등 15개 안건을 모두 단독 처리했다.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에는 재석 의원 163명 중 찬성 115명이 찬성했다. (반대 31명, 기권 17명) 이에 따라 내년 새 학기가 시작되는 3월 1일부터 초·중·고 학생들의 수업중 스마트 기기 사용은 전면 금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