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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영의 과학 산책] 괴로운 숙제

중앙일보

2025.08.27 08:08 2025.08.27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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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영 고등과학원 HCMC 석학교수
“내가 죽으면 묘비에 정 17각형을 새겨 주시오.” 수학의 왕으로 불리는 가우스(1777~1855)가 남겼던 유언이다. 가우스는 오랜 세월 미해결 난제였던 ‘정 17각형 작도 문제’를 18살에 풀어 일약 스타가 되었다. 이에 대한 애착이 얼마나 컸으면 유언으로 남겼을까. 하지만 이 유언은 들어주지 못했다. 비석에 정 17각형을 새기기가 어려웠다. 이에 가우스의 고향인 브라운슈바이크 사람들이 화가 났다. 위대한 수학자의 그 정도 유언도 들어주지 못한단 말인가! 그들은 가우스의 유언을 지킬 방법을 따로 찾는다. 일단 원을 17등분 하여 17개의 점을 찍었다. 점들이 너무 촘촘해서 이를 연결하면 원처럼 보일까 봐 점들을 쐐기 모양으로 연결해서 불타는 태양 이미지를 만들었다. 그리고 가우스의 동상을 세워 발판 옆에 이를 새겨 넣었다. 유언을 그대로 따르진 못했지만, 그 정성이 갸륵하다. 차라리 스티븐 호킹의 묘비처럼 식을 새겨 넣었으면 어땠을까. 하지만 정 17각형 식엔 근호가 겹겹으로 나온다. 약간 어지러워 보였을 것이다.

김지윤 기자
한편 바젤 출신의 야코프 베르누이(1654~1705)는 로그나선에 관한 자신의 연구를 자랑스럽게 여겨 묘비에 로그나선을 새겨달라고 유언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의 묘비엔 나선 팔의 간격이 점점 커지는 로그나선 대신 그 간격이 일정한 아르키메데스 나선이 새겨졌다. 요즘 같으면 반품 대상이다. 그러나 조각가는 불평한다. 나선이 다 거기서 거기 아니오? 그 정도는 애교다. 고대 그리스 수학자 디오판토스의 사라진 묘비에는 아예 그의 나이를 알아맞히는 방정식 문제를 적어 놓았다고 전해진다. 도대체 수학자는 왜 죽어서도 괴로운 숙제를 내는가.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자. 숙제 없는 세상이 어떨지. 늘 신날까, 아니면 좀 무료할까. 미래학자들은 얘기한다. 인류의 종말은 인류가 무료해져 정신이 무기력해질 때 찾아올 거라고. 그러니 인생의 괴로운 숙제 또한 우리를 지탱해주는 버팀목이 아니겠는가.

이우영 고등과학원 HCMC 석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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