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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우의 시선] 재주는 정부가 넘고 돈은 포털이 번다

중앙일보

2025.08.27 08:20 2025.08.27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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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우 경제선임기자
“새벽 두시, 프리웨이를 가르는 자동차들 사이를 미친 듯이 달려봐도 좋다. 잠들지 않는 메트로폴리스를 밝히는 미국의 맥박이다.”

어린 시절 즐겨 읽던 붉은 양장본 책의 한 구절이다. 사진 중심의 시사 잡지 라이프에서 펴낸 세계의 대도시 시리즈다. 여기서 묘사하는 1970년대 미국은 로스앤젤레스의 왕복 12차로 고속도로를 자동차가 가득 메우고, 시카고의 원통형 60층 쌍둥이 빌딩은 20층까지 주차장으로 쓰는 나라다. 아, 세상이 이런 곳이 있구나 감탄하며 수십번도 더 들춰봤던 기억이 난다.

구글 길찾기 안 되는 유일 선진국
안보 내세워 디지털 장벽 세운 셈
2% 시장 지키려 IT 생태계 포기?

20년 전 미국에서 1년간 머물렀을 때 샌프란시스코에서 샌디에이고까지, 뉴욕에서 워싱턴까지, 올랜도와 마이애미를 거쳐 미국의 최남단 키웨스트까지 자동차로 누비고 다닌 것도 어릴 적 동경 때문인지도 모른다. 당시 자동차 여행의 필수품은 지도였다. 미국자동차협회(AAA)는 회원으로 가입하면 무료로 지도를 줬다. 여행을 떠나게 되면 가장 먼저 맵퀘스트 같은 인터넷 길 안내 서비스를 통해 해당 지역의 AAA 지사까지 가는 길을 인쇄했다. 스마트폰은 아직 나오지도 않았고, 내비게이션은 너무 비싸서 살 엄두도 나지 않던 시절이다.

지난달 미국에서 한달살기를 했다. 렌터카 회사에서 중형차를 예약했더니 쉐보레 트랙스를 내줬다. 가장 낮은 등급이라 내비게이션이 없었다. 혹시 몰라 스마트폰 거치대를 들고 갔지만, 다행히도 안드로이드 오토를 지원한다. 서울에서 쓰던 스마트폰을 자동차와 연결한 뒤 구글 지도를 열어 목적지를 입력하니 자동차 화면으로 길을 안내한다. 옆 동네 한인마트에서 조지아주 서배너의 맛집까지 3000마일(4800㎞)을 돌아다니며 요긴하게 썼다. 정보기술(IT)의 눈부신 발전에 감탄하며.

불행히도 구글 지도는 국내에서 쓸 수 없다. 정확히 말하면 지도 자체는 쓸 수 있지만 길 안내는 대중교통만 가능하고 도보나 자동차 길 찾기는 안된다. 당연히 내비 서비스도 불가능하다. 구글에서는 “전 세계에서 한국, 중국, 북한에서만 사용할 수 없다”고 밝혔다.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유일하게 구글 지도를 막고 있다. 전쟁 중인 이스라엘, 러시아, 우크라이나에서도 정상적으로 쓸 수 있는데 말이다. 정부는 안보를 이유로 든다. 구글이 원하는 5000대1 정밀 지도는 국내 서버에서만 제공할 수 있다는 규정을 앞세운다. 사실 핑계에 가깝다. 지도에서 대통령실이나 계룡대 같은 전략시설을 지운다 해도 미국의 맥사테크놀러지나 플래닛랩스 같은 민간 위성사진 서비스를 활용하면 선명한 실시간 사진을 얻을 수 있다. 이스라엘처럼 미국과 협의해 고해상도 사진 제공을 막을 수는 있다지만 러시아의 얀덱스나 핀란드의 히어 등을 쓰면 그뿐이다. 국내 시장 보호를 위해 정부가 무리하는 건 아닐까.

지도는 단순히 길을 알려주는 것뿐 아니라 맛집, 쇼핑, 숙박, 부동산 등 다양한 정보를 담는 플랫폼이다. 미래 먹거리인 자율주행의 토대기도 하다. 국내 지도 시장의 70%를 차지한 네이버가 이런 서비스를 장악하고 돈을 번다. 올 2분기에만 5216억원의 영업이익을 거뒀다. 구글 지도를 기반으로 지역 정보를 제공하는 옐프나 포스퀘어 같은 글로벌 서비스가 국내에서는 제대로 동작하지 않으니 실질적인 경쟁도 없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구글 지도 문제를 대표적인 디지털 무역장벽으로 꼽는 이유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25일(현지시간) “디지털 시장 규제는 전부 미국 기술에 피해를 주기 위해 설계됐다”며 “이런 차별적인 조치를 제거하지 않으면 대미 수출품에 상당한 추가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고 엄포를 놨다.

성을 쌓는 자 망하고, 길을 내는 자 흥할 것이다. 칭기즈칸이 남긴 말이라는데 확실치는 않다. 누가 한 얘기든 소극적으로 지키려고만 들어서는 미래가 없다는 의미다. 지난달 31일 대통령실은 한·미 관세 협상 결과를 설명하며 “(고정밀 지도 반출은) 제일 빨리 논의한 분야인데 (협상이) 통상 위주로 급진전하며 방어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부가 시장 방어 논리로만 접근한다면 미국을 설득하는 것은 물론, 우리 IT 생태계 육성도 어렵다. 글로벌 서비스를 하지 않는 네이버 지도를 기반으로 세계 시장에 도전할 수는 없지 않은가.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은 1조8697억 달러로 전 세계의 1.6% 수준이다. 네이버가 이 시장을 지키는 대가로 수많은 국내 IT 기업이 세계 시장에 도전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막는 것이 과연 옳은 선택일까. 잃는 것은 2% 시장뿐이지만 얻을 것은 전 세계의 사이버 공간이다.





김창우([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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