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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효식의 시시각각] 한덕수의 죄와 벌

중앙일보

2025.08.27 08:30 2025.08.27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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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효식 사회부장
한덕수 전 총리는 대한민국 공무원사의 기록적 인물이다. 1970년 행정고시 8회로 공무원이 된 뒤 무역협회장 등 공직을 떠난 10년을 제외한 45년간 장관급 이상만 여섯 번 역임했다. 통상교섭본부장, 국무조정실장, 재정경제부 장관 겸 경제부총리, 주미대사, 국무총리 두 번(노무현 정부 333일+윤석열 정부 1077일)이다. 이 중 헌법상 ‘대통령의 국정 보좌 및 국정 심의’ 책무가 있는 국무회의 부의장(총리)과 국무위원을 5년 했다.

10·26이후 46년 만에 내란방조죄
계엄 안 막았나, 못 막았나 애매
증거로 중요임무 종사 적용 마땅

그런 그가 지난해 12월 3일 윤 전 대통령에게 비상계엄 선포 계획을 들은 오후 8시55분부터 계엄이 선포된 10시22분 사이 위헌·위법한 비상계엄을 막지 않은 죄(내란우두머리 방조)로 27일 영장재판 심판대에 섰다. 당시 국무회의 소집을 건의해 계엄을 막기는커녕 절차적 정당성의 외관을 갖추는 데 공모했다는 혐의도 받는다.

모든 죄에는 벌이 따른다. 현실에선 모든 죄를 찾아 벌주는 비용과 부작용이 크지만,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라는 성경과 로마법상 정의가 기본 원칙이다. 이 당연한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전제조건은 무엇이 죄인지가 분명해야 한다는 점이다. 죄형법정주의의 요체인 명확성 원칙이다.

한덕수의 경우 그 점에서 애매하다. 대표 죄명인 내란우두머리 방조죄가 그렇다. 내란방조죄 적용 자체가 법제처 판례시스템을 검색해 보면 1979년 박정희 전 대통령 시해 당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궁정동 안가 다른 건물에서 식사를 했던 정승화 전 계엄사령관 이후 46년 만이다. 그는 신군부의 12·12 쿠데타로 불법 체포된 뒤 이듬해 3월 군사법원에서 내란방조죄로 10년형을 선고받았다. 이마저 민주화 이후인 1997년 재심에서 “김재규의 박 대통령 시해 등 내란 행위를 알면서 도왔다는 범죄의 증명이 없다”며 무죄가 확정됐다. 김재규 내란죄 자체도 재심 중이다.

특검이 밝힌 한덕수의 내란방조죄는 기본적으로 부작위죄다. 법적 의무가 있는 자가 초래될 결과를 알면서도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을 때 책임을 묻는다. 특검은 “헌법상 대통령 제1보좌기관이자 계엄 국무회의 참석자 중 최고위직으로 대통령이 헌법을 지키도록 사전 견제·통제할 책무를 방기했다”고 설명한다. 나아가 당일 계엄 선포문 등 문건을 받아보고도 계엄에 절차적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국무회의 소집을 건의하고, 계엄이 해제된 이틀 뒤인 12월 6일 강의구 전 부속실장의 요청에 사후 계엄 선포문에 부서하는 적극 행위도 했다고 본다. 반면에 한 전 총리는 계엄 선포를 만류하고 반대해 다른 국무위원들의 의견도 들어야 한다며 국무회의 소집을 건의했다는 입장이다.

국민 법감정에 따르면 한 전 총리의 부작위죄는 무겁고 엄중하다. 다만 총리직의 무거움에도 불구하고 헌법과 계엄법이 대통령의 계엄 선포를 제지할 구체적 권한과 수단을 총리에게 부여하고 있는지는 따져봐야 한다. 사실 국무회의 소집을 건의하거나 직언·설득하는 것 외에 수단이 없다. 자기 비서실장조차 마음대로 임명하지 못한 한 전 총리 아닌가. 부작위죄를 피하려면 한 전 총리는 몸을 던져서라도 윤 전 대통령을 막았어야 했다. 또 따지자면 당일 국무회의 참석자 전원, 정진석 전 비서실장, 신원식 전 국가안보실장 등 대통령 보좌기관 전원에게 함께 방조죄를 묻는 것이 마땅하다.

한 전 총리가 단순 부작위를 넘어 계엄법상 김용현 전 국방장관의 계엄 선포 건의 등 구체적인 가담 증거가 나왔다면 특검은 애매한 방조죄가 아니라 앞서 재판에 넘겨진 이들과 같이 내란중요임무 종사 혐의를 적용해야 한다. 한 전 총리 구속영장은 기각됐지만 앞으로도 규명돼야 할 부분이다.

국민에게 총부리를 겨눈 내란의 심판은 민주주의 헌정질서를 바로세우는 일이다. 심판 과정에서 모든 죄와 벌은 명징해야 하고, 절차에 티클만 한 오점도 남기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 후대에 불행한 역사의 반복을 막을 수 있다.





정효식([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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