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재무부 장관이 조선업체 지분 확보 가능성을 시사했다. 인텔에 보조금을 지급한 대신 지분 10%를 미 정부가 확보한 것처럼, 조선업체도 비슷한 방식으로 주주 지위를 획득하겠다는 것이다. 미국 조선업 재건을 돕는 ‘마스가’(MASGA) 프로젝트를 추진 중인 국내 조선업체에 긴장감이 흐르고 있다.
스콧 베센트 미국 재무장관은 27일(현지시간) 폭스비즈니스와의 인터뷰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엔비디아 지분 확보도 고려하느냐’는 질문에 “엔비디아가 재정 지원이 필요하다고 보진 않는다”며 “하지만 조선업과 같이 우리가 재편하려는 산업은 지분 확보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이어 “조선업은 미국에서 자급자족해야 할 매우 중요한 산업이지만 지난 20~40년간 방치됐다”며 조선업을 미국 정부가 직접 주도하겠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이는 최근 미국 정부가 경제안보 차원에서 반도체 기업 지분 인수를 추진하는 방식과 닮았다. 실제로 최근 인텔에 제공한 보조금을 투자 성격으로 바꿔 지분 10%를 확보했고, 이를 삼성전자·TSMC·마이크론 등 글로벌 반도체 기업에도 요구할 가능성이 제기됐다.
업계에서는 조선업도 반도체와 같은 길을 밟을 수 있다고 본다. 트럼프 대통령은 올해 4월 행정명령을 통해 해양안보신탁기금 설립, 보조금·보증 등 금융인센티브 프로그램, 조선소·항만 규제 완화 등을 발표했다. 이런 정책이 실행되면 미국에 투자한 국내 조선업체들도 수혜를 볼 수 있지만, 그 대가로 미국 정부가 지분을 요구할 수 있다.
이 경우 한국 정부·조선업계가 계획한 1500억 달러(약 208조원) 규모의 마스가 투자금을 회수할 가능성이 줄어들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양종서 한국수출입은행 수석연구원은 “베센트 장관 발언은 물류·안보의 핵심인 조선업 주도권은 반드시 자신들이 쥐겠다는 의미”라며 “특히 해양방산 부문에서는 한층 보수적인 태도를 취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업계는 이미 이런 시나리오를 예상해왔다고 한다. 한 조선업계 임원은 “미국은 철저히 자국 이익을 중심으로 판단하기 때문에 그들 요구대로 무턱대고 현지에 투자했다간 투자금을 회수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다”고 했다. 그래서 투자 계획은 공개하되, 집행은 상황을 지켜 보면서 단계적으로 진행할 가능성이 크다. 한화의 경우 필리조선소에 50억달러를 투입해 노후한 시설을 자력으로 개선하는 데 집중할 예정이다.
일각에서는 미국 내 규제 해소를 투자의 선행 조건으로 삼아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현재 미국에는 자국 연안선은 미국 내 건조를 의무화한 ‘존스법’, 미 군함의 해외 건조·수리를 금지한 ‘반스-톨레프슨법’이 여전히 적용되고 있다. 국내 조선소에서 미국 연안선과 군함을 수주해 건조하려면 두 법안이 개정돼야 하는데, 법안 통과가 쉽지는 않다. 이같은 불확실성이 제거되기 전까지는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의 화물창 같은 핵심 부품은 국내에서 제작해 미국에서 조립하는 식으로 기술이전 속도를 조절할 필요도 있다. 이신형 서울대 조선해양공학과 교수는 “마스가 프로젝트는 분명 한국 조선업에 기회지만 리스크 또한 상당하다”며 “정부와 기업이 투자 회수 가능성을 면밀히 따져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