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기사에는 결과만 나옵니다. 누가 범인이고, 왜 범행을 저질렀으며, 실형 몇 년을 받았는지. 하지만 그 몇 줄을 위해 형사들은 며칠, 때론 몇 달도 버팁니다. 그렇다면 형사들의 수사는 어떻게 전개될까요. ‘강력계 25시’는 진짜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2000년 3월 15일 오전 7시.
간석4파출소의 경관 두 명이 갓길에 순찰차를 세운 뒤 신고자인 고깃집 주인에게 다가갔다. 1호선 간석역 앞 남광장의 식당가다. 여기서 사건이라고 해봐야 야간에 주취자들끼리 치고받는 폭행 정도다. 그런데 이른 아침부터 신고라니 낯설었다.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려는데, 누구 건지도 모를 쌀포대 두 개가 있어요. 사나흘 됐는데 파리가 꼬이고 영 이상해서.”
그러면서 건물 사이 좁은 틈새를 가리켰다. 경관이 포대를 열자마자 고개를 홱 돌리며 벽에다 구역질을 해댔다. 다른 경관이 바닥에다 침을 퉤 뱉고는 무전기를 잡았다. 관할인 남부경찰서(남동경찰서 전신) 강력반을 불러야 했다.
사람의 다리 두 개와 살점이 비닐과 기저귀 박스에 싸인 채 포대에 각각 담겨 있었다. 습기로 흐릿한 비닐 안에서도 발톱에 칠해진 붉은색 매니큐어가 선명히 보인다.
사체의 다리는 간석 장례식장의 시체 안치실로 옮겨졌다. 감식반에서는 발 크기가 225㎜인 점을 봐서 피해자는 키 155㎝ 내외의 여성일 거라 추정했다. 하이힐을 자주 신는지 근육이 부족했고 발가락 부근엔 약간의 기형이 있었다. “대퇴부의 잘린 면이 깨끗해요. 범인은 아마 톱을 사용했을 겁니다. 또 이놈은 시체의 살을 발라서 피를 빼냈어요. 그럼 체중에서 한 5㎏은 빠지거든요. 들기도 편하고 유기하기도 쉬워지죠.”
남부경찰서 강력반 전원이 비상소집됐다. 범인의 유기 장면을 본 목격자가 존재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 형사들은 남동구청으로 몰려가 식당가의 쓰레기를 수거하는 환경미화원의 신원을 파악했다. 그들의 증언을 통해 최소한 어느 시점에 쌀포대가 유기됐는지 특정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사흘에 한 번꼴로 오전 4시쯤 식당가를 돈다는 대답 말고는 특기할 만한 게 없었다.
거듭 되풀이되는 허탕 수사에 사기가 떨어져 가던 3월 말, 강력3반의 임상도 형사는 반장의 지시에 간석 장례식장 시체 안치실로 출근했다. 여기서 대기하며 다리를 관리하는 게 임무였다. 자신의 딸이나 부인의 신체가 맞는지 가족들이 오면 멀쩡한 다리를 보여줘야 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피가 빠져나가서 허벅지 속살이 굳고 거무스레하게 부패하기 시작했다. 본래의 형체를 되살리기 위해 그는 비닐장갑을 끼고 몇 시간씩 마사지해야만 했다.
「
피해자는 생계 책임지던 자동차 영업사원
」
“우리 애 아니에요. 발 좀 봐요. 좀 더 통통했는데.”
이젠 몇 번짼지도 모를 미귀가자 가족을 돌려보내고 있을 무렵, 형사과장의 전파가 들어왔다. 부천시 원미구의 폐가에서 또 다른 토막 사체가 발견됐다는 소식이었다. 복부가 절단된 상체 일부였으며,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이하 ‘국과수’) 감식 결과 앞서 발견된 다리와 동일한 유전자가 확인됐다. 특히 이 사체는 ‘인천 동구청’이라 표기된 종량제 봉투에 담겨 있어, 범행지가 동구 일대로 좁혀지는 단서가 됐다.
다음 날 오전에는 딸이 귀가하지 않는다며 지난 10일 실종 신고를 했던 60대 여성이 시체 안치실을 찾았다. 연수구 선학동에서 10살 손녀와 함께 딸의 귀가만을 기다리다 경찰의 전화를 받고 온 것이다. 흰머리에 깊게 팬 주름, 손등과 손가락마저 주름투성이인 얼굴이 순간 굳었다. 여성이 다리를 보더니 손끝이 경련하듯 움찔했다.
“…우리 딸 같아요.”
국과수 조사 결과 시신과 60대 여성 가족의 유전자가 일치하면서 피해자 신원이 밝혀졌다. 39살 여성 김모씨로 6년 전 이혼 후 딸을 데리고 홀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었다. 생계는 혼자서 책임졌다. K자동차 남동구 구월지점의 영업사원으로 일하며 ‘계약 한 건이 한 달 생활비’라는 일념으로 일했다고 한다.
직장을 탐문한 결과 지난 9일 김씨는 동료들과 횟집에서 점심식사 도중 한 고객의 전화를 받고는 동구로 가봐야 한다며 나갔다. “며칠 전부터 차 3대를 한 번에 사겠다는 고객이 있다고 얘기한 적 있다. 이제야 계약이 성사되는가 싶어 다소 들뜬 기색이었다.”
단서를 종합한 결과, 범행 장소로 유력하게 지목된 곳은 화평동 판자촌이었다. 사건 발생 후 2주 만의 진전이었다.
형사들은 2인 1조로 판자촌을 이 잡듯 뒤졌다. 우선 집주인을 만나 세입자 인적사항을 확인해야 했지만 일이 뜻대로 풀리진 않았다. 20평 남짓한 집에 베니어판을 세워 하숙방을 6개나 만들어 놓은 경우도 있었고, 부동산 계약조차 하지 않아 세입자 신원이 불투명한 곳도 허다했다. 집주인들의 말은 한결같았다. “월세만 제때 내면 누구든지 방을 내준다.”
이러한 호구조사는 2주일이나 이어졌다. 그러나 용의자로 지목할 만한 대상은 나오지 않았다. 매일 저녁 “어느 세대를 조사했다”는 보고가 올라왔지만 결론은 늘 같았다. 특이사항 없음. 입주민 신상 파악도 거의 마무리 단계였지만 걸린 건 소매치기, 빈집털이 같은 잡범들뿐이었다. 게다가 누구 하나 피해자 김씨의 통화내역과 맞아떨어지지 않았다.
보고서를 넘기던 형사과장의 눈에 빈칸 하나가 들어왔다. 하숙집 방 하나가 “오래 비어 있다”는 이유로 담당 형사가 수색하지 않은 곳이었다.
“열어봅시다.” 형사들이 주인을 설득했지만 그는 완강히 거부했다. 혹여 살인 사건 현장으로 소문이라도 나면 집값이 떨어지고, 있던 세입자들마저 재수 없다며 나갈까 두려워서였다. 그러나 거듭된 압박 끝에 결국 문이 열렸다.
“비가 억수같이 퍼붓는 날이었다. 슬레이트 처마를 두들기는 빗소리가 한없이 이어지는 가운데 마당에선 곰팡내가 희미하게 났다. 하지만 문이 열리자 외부의 냄새가 단번에 지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