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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 칼럼] 값싼 전기는 환상, 요금인상 공론화 해야 할 때

중앙일보

2025.08.28 08:01 2025.08.28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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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제 서울과기대 국방융합과학대학원 교수
올여름 우리는 다시 기후위기의 실체를 마주했다. 끝없는 폭염과 집중호우, 타들어 간 들판과 멈춘 도시는 더는 예외가 아니다. 누구나 기후위기의 심각성에는 고개를 끄덕이지만, 막상 그 대응에 필요한 비용 이야기가 나오면 사회는 침묵한다.

깨끗한 에너지 확대와 온실가스 감축은 분명 올바른 길이다. 다만 그 길에는 비용이 놓여 있다. 재생에너지를 늘리면 계통을 보강해야 하고, 감축 목표가 강화되면 발전 원가는 올라간다.

그런데도 우리는 오랫동안 전기요금 논의를 미뤄 왔다. 정치적 부담을 이유로 요금이 억제되면서 누적된 적자는 공기업의 장부에 쌓였고, 결국 국민의 부담으로 되돌아온다. 값싼 전기는 환상일 뿐, 숨겨진 비용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기회도 놓쳤다. 낮은 요금은 효율 투자와 산업구조 전환을 지연시켰고,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경제에서 전력 소비는 더 쉽게 늘어났다. 국민은 위기에 둔감해지고, 기업은 효율 개선의 동력을 잃었다. 무더위로 냉방 사용이 급증해 전기요금이 많이 나오면 높아지는 불만은 ‘깨끗한 에너지 확대에는 찬성하면서 비용 분담에는 소극적인’ 사회적 이중성을 드러낸다.

최근 이재명 대통령이 “전기요금 인상은 불가피하다, 국민께 충분히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라”고 주문한 것은 중요한 출발점이다. 그러나 설명에 머물면 논의는 다시 멈춘다. 지금까지처럼 공기업이 적자를 떠안는 방식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이제 정부가 앞장서 비용 구조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언제·어떻게 부담을 나눌지 구체적 로드맵을 제시해야 한다. 예측 가능성을 회복해야 투자도 살아난다. 데이터 공개와 독립적 검증을 병행한다면 설득력은 한층 높아질 것이다. 취약계층 보호와 단계적 조정, 효율 투자 인센티브를 함께 설계하는 것이 핵심이다.

물가에 대한 우려도 이해한다. 다만 비용을 누르기만 하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부담이 커진다. 지연된 조정은 더 큰 충격으로 돌아온다는 것이 에너지 정책의 오랜 경험칙이다. 중요한 것은 시기를 놓치지 않는 결단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인상’ 그 자체가 아니라 ‘공론화’다. 탄소감축 비용, 전력망 투자, 재생에너지 지원은 결국 누군가가 책임져야 할 현실의 비용이다. 고속도로에 통행료가 있듯 에너지에도 정당한 가격 신호가 필요하다. 정부가 원칙을 세우고 국민께 솔직히 설명한다면 전기요금 현실화는 갈등의 출발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사회로 가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명확한 일정과 책임 있는 집행이 길을 현실로 만든다.

정연제 서울과기대 국방융합과학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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