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과 전기차 같은 첨단산업의 성장으로 앞으로 전력 수요는 전체 에너지 수요 증가율보다 여섯 배 빠른 속도로 늘어날 겁니다.”
파티 비롤 국제에너지기구(IEA) 사무총장은 “우리는 ‘전기의 시대’로 들어섰다”며 이같이 밝혔다. 25~29일 부산 벡스코 일대에서 열린 ‘에너지 수퍼위크’에서다.
비롤 사무총장은 “AI로 인한 전력 수요 증가는 전력망에 과제를 제기한다”며 “전력망 및 저장시설에 대한 투자는 전력 수요 증가와 재생에너지 보급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짚었다. IEA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13~2024년 세계 전력 사용량 증가율(연도별 평균치)은 2.5%로, 전체 에너지 수요 증가율(1.3%)의 약 2배다. 2035년까지 전기 사용량이 폭증해 이 격차가 6배로 더 벌어질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전 세계적으로 발전 부문에는 매년 약 1조 달러(1400조원)가 투자되는 반면 전력망에는 약 4000억 달러(560조원)만 지출된다”며 “AI 데이터센터를 지으려면 2년 정도가 걸리지만 전력을 생산해 공급하는 데는 8년의 시간이 걸린다”고 지적했다. 늘어나는 전력 수요에 비해 전력망 확충은 더디면서 첨단 산업의 발전 속도가 늦춰지는 부작용이 커질 수 있다는 의미다. 그는 특히 “AI의 발전을 위해선 에너지, 특히 전기가 없으면 안 된다”며 “전력망 투자가 국가 경쟁력의 핵심 요인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부도 대응 의지를 밝혔다. 김민석 국무총리는 개회사에서 “지금 세계는 탄소중립과 안정적 전력 공급을 동시에 이뤄내기 위해 도전 중”이라며 “한국은 AI와 에너지의 융합으로 지속가능한 미래를 열겠다”고 강조했다. 김 총리는 ▶에너지고속도로 구축 ▶전력망 확충 ▶재생에너지 전환 등 정부의 에너지 정책 비전을 공유했다. 마이크로소프트(MS)의 미셸 패트론 에너지정책총괄은 “AI와 경제 성장에 부합하는 청정에너지 확보를 위해 전력구매계약(PPA), 재생에너지 인증 등 제도 유연성이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에너지 수퍼위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에너지장관회의·청정에너지장관회의(CEM)·미션이노베이션장관회의(MI)·2025 기후산업국제박람회(WCE)를 아우르는 행사 명칭이다.
이 가운데 WCE는 ‘에너지 수퍼위크’의 핵심 행사로 역대 최대 규모로 치러졌다. ‘에너지와 AI’를 주제로 41개국 정부 대표와 IEA·WB·아시아개발은행(ADB) 등 국제기구, MS·구글·엔비디아·아마존웹서비스 등 글로벌 기업과 지멘스·슈나이더일렉트릭·블룸에너지 등 글로벌 청정에너지 선도 기업이 대거 참여했다. 아울러 삼성전자·현대차·SK이노베이션·한화큐셀·두산에너빌리티 등 국내 주요 기업을 포함해 총 541개 기업이 참여해 1720개 부스를 차렸다. 오는 10월 경주에서 열리는 APEC 정상회의 성공 개최의 전초전 역할도 제대로 수행했다는 평가다.
전시회에는 차세대 전력망 ‘에너지고속도로관’이 신설돼, 초고압 직류송전(HVDC)·스마트그리드·에너지저장장치(ESS)·초고압 변압기 등 미래집중 기술이 공개됐다. 삼성전자·LG전자·현대차·SK 등은 AI 기반 스마트홈, 전기차 충전 로봇, AI 냉장 시스템 등 첨단 혁신 모델을 선보이며 관람객의 높은 관심을 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