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구 군산세관 본관)과 진주(진주성)를 시작으로 ‘2025년 국가유산 미디어아트’가 전국 8개 지역에서 막을 올렸다. 오랜 역사의 국가유산(옛 문화재)에 디지털 기술을 접목해 색다른 야간 경관과 함께 스토리텔링의 힘을 보여주는 기획이다. 올해는 고령(지산동 고분군), 제주(제주목 관아), 철원(철원 노동당사), 통영(삼도수군통제영), 양산(통도사), 경주(대릉원) 등이 새로운 빛 축제를 예고한다. 국가유산청과 지자체가 머리를 맞댄 사업에 지난해 148만 명이 방문하면서 본격 야간형 문화유산 향유 방식이 되고 있다. 올해 70억원 안팎이던 국비지원이 내년엔 100억원대로 늘어날 예정이다.
국가유산과 디지털 실감 영상의 만남은 꾸준히 확대돼 왔다. 직접 접근이 어려운 유적·유물도 가상 공간에서 실감나게 만날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의 고구려 벽화고분 실감영상을 통해 우리 국경 너머에 있는 고구려 고분을 간접 체험하는 식이다. 지난해 복합문화공간 아르떼뮤지엄에서 선보인 몰입형 전시 ‘더 헤리티지 가든-이음을 위한 공유’는 관객으로 하여금 마치 석굴암 내부에 들어간 듯한 생생함을 줬다. 오는 10월까지 이어지는 오사카·간사이 엑스포의 한국관 미디어파사드는 ‘조선왕실행차’ ‘조선왕실보자기’ 등 실감 영상을 통해 한국 홍보사절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반면에 지자체가 함께하는 국가유산 미디어아트 사업은 해당 지역 관광객 유치가 직접적인 목적이다. 야간 볼거리를 확충해 지역경제를 살리는 데 국가유산이 ‘미끼’가 된다면 누가 탓하겠나. 다만 역사유적이란 게 대체로 도심 외곽에 있다 보니 밤에 굳이 찾아오게 만들려면 일단 시청각적으로 화려해야 한다는 계산이 앞서는 듯하다. 초대형 샤막스크린을 설치해 3D 홀로그램을 투사하고 바닥에도 반응형 영상 조명을 쏴서 ‘인터랙션’을 선사하는 식의 시나리오가 이곳저곳에서 반복된다. 문화유산이 아니라 미디어쇼가 주인공으로 둔갑할 때 관객은 ‘테마파크식 요란함’ 이상의 감흥을 얻지 못할 수 있다. 눈부신 조명과 드론쇼로 분칠했던 성곽·전각이 대낮엔 되레 평범하다 못해 초라해 보이는 역전 현상까지 우려된다.
‘문화유산은 단순한 기념물이나 물체에 그치지 않는다, 전통과 살아 있는 표현을 포함한다.’ 유네스코가 ‘무형문화유산 보호를 위한 협약’(2003년)에서 정의한 바다. 무형문화유산을 아우르기 위한 표현이지만, 오늘날 우리가 문화유산을 전승·향유하는 방식에도 적용될 수 있다. 각기 다른 유적에 고만고만한 미디어쇼를 펼치는 것으론 ‘왜 굳이 그곳까지 가야 하는가’(장소성)에 대한 답이 될 수 없다. “수천 년 유적과 최첨단 디지털 기술을 동시에 가진, 거의 유일한 나라”(국가유산진흥원 관계자)에서 둘을 합친 결과물이 때때로 ‘복붙’(복사해서 붙임)하는 지역축제를 보는 듯해 하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