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는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욕망과 가치를 반영합니다. 예측할 수 없는 미래의 모호함을 밝히는 한줄기 단서가 되기도 하고요. 비크닉이 흘러가는 유행 속에서 의미 있는 트렌드를 건져 올립니다. 비즈니스적 관점은 물론, 나아가 삶의 운용에 있어 유의미한 ‘인사이트’를 전합니다.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은 ‘나 홀로 여행’을 꿈꿉니다. 낯선 곳에서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오롯이 나에게만 집중하는 시간, 또 여행 유튜버처럼 우연히 만난 사람과 저녁 한 끼를 나누는 특별한 순간을 기대하기도 하죠. 하지만 막상 혼자 떠나려면 심심할까 걱정되고, 먹거리를 다양하게 맛보지 못하는 아쉬움도 있습니다. 대안이라면 패키지여행인데, 시간을 자유롭게 쓰기 어렵다거나 원치 않는 옵션이 따라붙을까 망설여지곤 합니다. 그런데 최근 이런 고민을 파고든 새로운 여행 방식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2030을 대상으로 한 패키지 여행, 이른바 ‘밍글링 투어’입니다.
‘어울린다’는 뜻의 ‘밍글링(mingling)’과 ‘여행(tour)’이 합쳐진 단어인 ‘밍글링 투어’는 혼자 떠나도 또래와 가볍게 어울리며 여행하는 것을 의미해요. 프리다이빙·미식·로드트립·액티비티 등 여행마다 콘셉트가 정해져 있고, 호스트를 중심으로 취향과 관심사가 비슷한 사람들끼리 함께 여행하는 식입니다. 그동안 패키지여행은 ‘가족 단위’‘중장년층 전용’이라는 고정관념이 강했지만, 자연스럽고 부담 없는 만남을 추구하는 MZ세대에게는 조금 다른 풍경이 펼쳐지고 있는 거죠. 오늘 비크닉에서는 ‘혼자지만 함께하는 여행’이라는 2030의 여행 트렌드와, 그들이 만들어가는 새로운 여행 문화에 대해 자세히 들여다봤습니다.
혼자여도 어색하지 않아…취향으로 연결되는 여행
밍글링 투어가 처음 등장한 건 지난 2024년 2월, 하나투어에서 선보인 필리핀 보홀의 프리다이빙 투어 상품이었어요. 특정 액티비티를 표방했지만 20명 모집 인원이 오픈 7시간 만에 완판되며 화제를 모았습니다. 반짝인기는 아니었어요. 이어 나온 ‘몽골-로드트립’은 단 3분 만에, 추가로 오픈한 2차 상품 역시 5분 만에 마감되며 인원 증원 기록까지 세웠으니까요. 이후 지난 7월까지 인도·보홀·몽골·카자흐스탄·튀르키예 등 매달 3~4개의 다양한 밍글링 투어가 진행됐고, 약 420명이 여기에 동참했습니다.
밍글링 투어의 핵심은 지역과 테마·프로그램을 구체화 하고, 무엇보다 모집부터 ‘잘 어울릴 수 있는’ 참가자들로 한정 짓는다는 겁니다. 앞서 상품의 경우 2030세대인 1987~2006년생만 예약할 수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죠. 하나투어 테마사업 운영지원팀 조병석 팀장은 “2030세대는 또래 간 관계와 경험을 중시한다”며 “여행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네트워킹하고 새로운 친구를 만날 수 있는 니즈를 충족시키고자 밍글링 투어를 기획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혼자 가도 외롭지 않고, 낯선 사람과도 금세 친구가 된다’는 MZ 맞춤 여행답게 관계 맺기부터 남다릅니다. 공항에서 만나 어색한 첫인사를 나누는 일반 패키지와 달리, 여행을 예약하면 오픈 채팅방이 개설되고 참가자들은 출발 전부터 인사를 나누며 분위기를 만들어요. 이후 사전 대면 미팅을 통해 어느 정도 친밀감을 쌓은 뒤 여행을 떠나게 됩니다. 참가자의 70~80%는 1인 예약자로, 대부분 처음 만난 또래와 2인 1실을 쓰게 되지만 덕분에 낯선 곳에서의 만남이 어색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이어져요.
인솔자 역시 깃발 들고 다니며 일정을 관리하는 역할 이상이죠. ‘밍글링 타임’을 운영하며 참가자들이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도록 분위기를 이끕니다. 한희재 하나투어 선임은 “여행 전 개설된 단톡방에서부터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며 분위기를 풀어주고, 여행지에서는 자기소개 시간을 통해 친해지도록 돕는다”며 “억지로 분위기를 띄우기보다는 대화의 물꼬를 트고 흐름을 이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강조합니다.
가이드 그 이상, 호스트와 함께하는 새로운 여행 방식
밍글링 투어에서는 ‘호스트’가 새로운 키맨입니다. 각 테마 별로 전문성을 갖춘 인플루언서·다이버·강사 등이 호스트로 참여해 단순한 가이드가 아니라 참가자들을 연결하는 촉진제가 돼 주죠. 덕분에 참가자들은 단순히 관광지를 둘러보는 데 그치지 않고, 공통의 취향을 매개로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관계를 이어가는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지난 7월 진행된 ‘몽골-로드트립’에는 등산 인플루언서 ‘산타는예삐’가 호스트로 참여했어요. 그는 끝없이 펼쳐진 초원과 사막, 별빛 아래 캠프파이어를 함께하며 참가자들이 대자연 속에서 강렬한 체험을 할 수 있도록 이끌었죠. 그는 “몽골의 아름다운 대자연을 사진과 영상으로 기록하고 SNS로 공유하는 과정에서 금세 가까워졌다”며 “또래끼리 모이다 보니 짧은 시간에도 유대감을 형성하기 좋았고, 그 덕분에 낯선 환경에서도 편안하게 여행을 즐길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최근 업계는 밍글링 투어를 필두로 2030 맞춤형 소규모 테마여행이 새로운 흐름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모두투어는 인플루언서와 전문가가 기획 단계부터 참여하는 공동 개발형 여행 콘텐트 ‘컨셉투어’를 선보이며 MZ세대의 취향을 정조준했습니다. 해외 스포츠 직관 상품이 대표적인데요. 올 9월 오타니와 김혜성이 뛰고 있는 세계적인 인기 구단 LA 다저스의 홈경기를 이현우 야구 해설위원과 도상현 기자와 함께 관람하는 것은 물론, LA의 대표 관광지를 함께 즐길 수 있는 ‘MLB 직관 컨셉투어’가 진행된다고 해요. 노랑풍선은 웰니스 트렌드에 주목해 관광과 건강을 동시에 챙길 수 있는 ‘사이판 마라톤 2025’과 다양한 트래킹 상품 등을 출시했죠. 온라인 여행 플랫폼들 역시 낯선 여행자끼리 그룹을 꾸려 떠나는 2030 맞춤형 상품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밍글링 투어 역시 진화 중이에요. 여행 인플루언서 메리솔비와 함께 유명 레스토랑과 디저트 숍만 방문한다거나(‘홍콩/마카오-미식여행’), 패션크리에이터 김검어와 HAO진환이 호스트로 참여해 프랑스 니치 향수 브랜드의 매장, 루이비통 재단이 운영하는 현대미술관과 함께 다양한 편집숍과 빈티지 숍을 둘러보는 식이죠(‘파리-패션트립’).
2030 세대가 만든 새로운 여행 패러다임
밍글링 투어는 세대별 인식이 어떻게 다른지를 그대로 보여줍니다. 4050 세대에게 패키지여행은 여전히 ‘편리·안전·효율’이 핵심 가치라 할 수 있죠. 항공권·숙박·식사까지 모두 포함된 일괄 관리형 여행에서 얻는 안정감이 가장 큰 매력이니까요. 반면 2030 세대는 패키지 여행에서 ‘취향·경험·어울림’을 더 중시합니다.
실제 밍글링 투어에 참여한 이들은 “혼자 신청했는데도 전혀 외롭지 않았다”“연령대와 공감대가 맞는 사람들과 함께 여행해서 재미있었다”라고 말합니다. 지난 7월 ‘몽골-로트트립’에 참여한 문태훈(30)씨는 처음 보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여행이라 걱정했지만, 오히려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재미가 있었다고 해요. 그는 “공항에서부터 마니또 게임 같은 프로그램이 진행돼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풀렸고, 호스트가 중간에서 어색하지 않게 조율해줘 편안하게 여행을 즐길 수 있었다”며 “다음 기회가 된다면 꼭 다시 밍글링투어를 가고 싶다”고 소감을 밝혔어요. 2030 세대에게는 단순히 어디를 가느냐보다 누구와 어울리느냐가 더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래서 ‘혼자 여행’을 선호하면서도 완전한 고립이 아닌 ‘느슨한 연대’를 추구합니다. 밍글링 투어가 바로 이 지점을 공략한 셈이죠. 참가자들은 여행에서 맺은 인연을 한국에 돌아와서도 이어가며, 여행을 단순한 소비가 아닌 관계와 자기 성장의 장으로 확장하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흐름을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변화로 진단합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MZ세대는 순간적 경험 공유와 가볍지만 의미 있는 연결을 선호한다”며 “여행에서 다양한 사람과 세대의 감성에 맞는 경험을 하고 싶다는 니즈와 SNS 인증 문화가 맞물리면서 앞으로 더 퍼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습니다.
혼자이면서도 함께하는 여행, 밍글링 투어가 보여준 풍경은 여행이 단순한 소비를 넘어 관계와 경험을 확장하는 과정임을 잘 보여줍니다. 낯선 이와의 만남이 친구로 이어지고, 여행지의 추억이 일상의 모임으로 연결되는 모습 속에서 2030세대가 만들어가는 새로운 여행 문화를 엿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변화가 국내 여행업계에 어떤 바람을 일으킬지 기대해 봅니다.